[뇌교육 칼럼] 한국병의 근원이 된 ‘학습된 무기력’

[뇌교육 칼럼] 한국병의 근원이 된 ‘학습된 무기력’

뇌교육 칼럼

브레인 110호
2025년 04월 15일 (화)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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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병’은 언제 시작됐나 [이미지=게티이미지 코리아]



‘한국병’은 언제 시작됐나 

요즘의 대중매체들을 보면 긍정적인 뉴스를 찾기 힘들다. 여러 가지 사회적 갈등이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 등 희망을 주는 소식보다는 불안을 가중시키는 소식들을 더 쉽게 접한다. 물론 언론의 상업적 특성으로 인해 대중이 더 관심을 가질만한 충격적인 기사들이 양산되고, 그로 인해 현실을 더 나쁘게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한국이 지닌 근본적인 사회 문제로 인해 언젠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병‘이라는 말이 1990년대 초반에 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꾸준히 발전해 왔다.

최근에 가장 심각한 한국병으로 거론되는 현상은 ‘N포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의 사회에 대한 절망과 불신, 매년 OECD 1위를 기록하는 자살률, 이에 더해 최근 역대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는 10대 자살률, 전쟁이라도 나야 발생할 수 있다는 합계출생률 0.75명 등일 것이다. 

보통은 이러한 현상을 우울증으로 일반화하는 경우가 많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자금지원이나 상담 등 1차원적인 정책에 머무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하지만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러한 방식은 어느 정도의 사태 완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몰라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학습된 무기력에 매우 취약한 한국 사회 

1960년대에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과 스티븐 마이어Steven Maier는 현대인의 시각에서 보면 잔인하다고 할 수 있는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개들을 우리에 가둬놓고 지속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해 고통을 주며 개들의 반응을 관찰한 것이다. 처음에는 개들이 어떻게든 우리에서 탈출하거나 고통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지만, 이러한 일들이 지속되니 나중에는 전기충격을 받아도 크게 반응하지 않고 슬피 울기만 했다. 

이 실험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나중에 일부러 우리를 열어 놓아 쉽게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개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계속 전기충격을 받고 있기만 할 뿐이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러한 현상은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으로 명명되었고, 이는 동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나타나는 심리 현상임이 밝혀졌다.

학습된 무기력은 개인이 자신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게 되어 변화의 기회가 있음에도 수동적인 행동과 체념을 보이는 심리적 상태라고 정의된다. 이러한 상태가 우울증, 불안, 기타 정신건강 장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이미 오랫동안 알려져 왔지만, 아직 우리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실상 우리 사회는 너무도 이 증세에 취약하다. 인구밀도가 높고 집단주의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는 태어났을 때부터 거의 모든 것이 통제되며, 개인의 행동 대부분이 평가되거나 비교된다. 자신이 의지를 내서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능력이 있다는 것을 학습할 기회가 상당히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업이나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에서 지속적으로 실패를 경험하면 스스로 어려움을 딛고 일어설 용기를 내기 어려울 것이다.
 

핀란드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만든 ‘실패의 날’ 

학습된 무기력에 관한 연구는 이미 1960년대에 시작되었고, 1970-80년대부터는 대중적으로 이 개념이 알려지면서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이를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포함한 정신건강 장애의 주요 요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WHO는 조기 개입, 상담 서비스 접근성 확대,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전략을 포함한 정신건강 증진 계획을 권장하고, 인지행동치료(CBT)를 효과적인 치료법으로 제안한다. 

또한 심리학계에서는 학습된 무기력을 우울증과 불안 장애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간주하며, 각 세부 분야에서 증상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인지 심리학에서는 이를 부정적인 사고 패턴으로 규정하고, 치료와 행동 개입을 통해 교정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사회 심리학에서는 직장 같은 사회적 환경에서 학습된 무기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연구하고, 억압적이거나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수동적으로 반응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학습된 무기력 증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경우, 이 증세가 단지 하나의 전문용어가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할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사회적 이슈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못할 경우, 우리가 처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정책이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한때 유럽에서 높은 자살률로 악명이 높았던 핀란드는 범국가적 차원에서 자살 예방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무엇이 가장 효과적으로 자살률을 낮췄는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한 가지 인상 깊은 것은 이때를 계기로 핀란드가 ‘실패의 날’을 만든 것이다. 

매년 10월 13일, 학생·창업자·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실패 경험을 이야기하며 서로의 실패를 축하해 준다. 이날의 가장 큰 의미는 핀란드 국민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동참하면서 의지를 나타낸 것에 있다고 본다.


한국병은 난치병이 아니다 

한국이 그 어떤​ 국가보다 단기간에 최빈국에서 경제·문화 강국으로 발전한 데는 무수히 경쟁에 노출되면서 완벽함을 강요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풍토는 이제는 우리에게 양날의 검이 되어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세계적으로 연구된 해법들과 우리가 실험한 방식들을 잘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 다가온 가장 큰 사회적 위기가 우리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한국에서 시작된 ‘뇌교육’이 이미 학습된 무기력 증상을 개선하는 데 효과가 있는 훈련법을 개발해 왔다는 것이다. 습관에서 벗어나도록 이끄는 신체 훈련과 인지 훈련을 병행하는 이 방법은 해외의 개발도상국에서부터 선진국까지 여러 국가에서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어쩌면 현대의 한국병은 난치병이 아니라 처방하면 고칠 수 있는, 단지 방치해서 곪은 염증 정도의 병일지도 모른다.|
 

글_이정한 미국 IBE 지구경영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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