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폐스펙트럼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이미지_게티이미지 코리아)
TV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자폐스펙트럼 캐릭터
최근 자폐스펙트럼 증상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이 증상을 가진 주인공이 대형 로펌의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자폐스펙트럼에 대한 친근한 접근을 시도했고, EBS TV의 ‘딩동댕 유치원’에서는 국내 최초로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캐릭터 ‘별이’를 등장시켜 아이들도 이를 좀 더 이해할 수 있게 했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자폐스펙트럼장애는 88명 중 한 명꼴로 발생하며, 국내외 모두 증가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발생 비율이 더 높다. 하지만 자폐스펙트럼장애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는 상당히 낮은 편이고, 편견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이 장애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하지만, 이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고 사회적 처우가 개선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미국의 경우, 1950년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자폐아를 둔 부모들이 아이의 증상을 숨기는 데 급급했고, 아이를 가둬 두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1987년에는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한 ‘레인맨’이라는 영화가 자폐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은 기억력이나 연산능력 등 특정 분야에서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높은 재능을 가진 것처럼 묘사하면서 또 다른 편견을 갖게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자폐에 대한 여러 편견을 토대로 많은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전보다는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아직도 자신의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해 함께하는 것을 꺼린다든지, 이들을 위한 특수학교 설립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관계에서의 예의와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적 특성 때문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을 예의가 없다거나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편견은 자폐스펙트럼 아동이나 가족에게 큰 상처를 준다.
자폐 증상의 증가와 함께 문제 상황 발생도 더 빈번해져
최근 유명 웹툰 작가가 자폐스펙트럼 증상을 가진 자신의 아들이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판단으로 대중의 분노를 산 일이 있었다.
분명 그는 너무도 안이한 생각으로 섣부르게 행동했고 질타 받아 마땅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이에 연루된 당사자들 모두 이 일로 인해 더 큰 상처와 고통을 겪게 되었다는 점에서 몹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폐스펙트럼 아동을 키우는 부모는 아이의 행동과 이로 인한 주변의 인식 때문에 모든 일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자기 아이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특히 부모로서는 아이의 돌발행동이 그 아이가 악한 의도를 갖고 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과보호가 일어나기 쉽다.
아주 심각한 중증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보통의 자폐스펙트럼 아동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고 이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사람들의 편견으로 인해 상처받는 일이 지속되어 추가로 우울증이나 무기력증 같은 심리 불안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사회적 단절로 이어지면 이후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자폐증이 증가하면서 이와 관련된 이슈들이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 자폐 판정을 받지 않더라도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아이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제는 누구도 자신과 관계없는 이슈로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자폐 증상을 가진 이들이 사회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대중의 이해를 높이고 더 나은 사회적 처우의 개선 방안을 찾는 노력이 절실하다.
자폐는 신경발달 상태를 나타내는 증상이지 질병이 아니다
자폐증이 어떠한 이유로 증가하고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자폐 증상이 환경적인 영향보다 유전적인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또한 중증이 아닌 자폐는 치료나 완화는 어려워도 꾸준한 학습과 훈련을 통해 사회성을 기르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게 생활할 수 있다.
어떠한 면에서 자폐는 운동신경과 흡사한 면이 있다.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 축구 같은 운동을 하게 하면 도대체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움직임이 미숙할 것이다.
운동신경이 뛰어난 아이라면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바로 터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겨우 비슷하게라도 하게 될 것이다.
자폐도 거의 모든 일을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치고 훈련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친다. 꾸준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처음부터 잘한 아이보다 더 뛰어나게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중요한 것은 자폐는 신경발달 상태를 나타내는 증상이지 질병이 아니며, 주변의 관심과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폐는 인류 발전에 유전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였을지도
지적장애를 동반하지 않는 고기능 자폐증이나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지고 있으면서 사회적인 활동을 성공적으로 해나가는 사람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의 경우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하지만 그가 가진 장점은 첨단 과학기술의 상용화에 많은 기여를 했다.
위대한 배우로 평가받는 앤서니 홉킨스나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도 젊었을 때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알버트 아인슈타인이나 빌 게이츠 같은 이들도 아스퍼거가 의심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한 전문가는 아주 오래전 구석기 시대에 모두가 모닥불가에서 춤추며 어울릴 때 혼자 동굴 구석에서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던 이들이 인류 문명을 발전시켰을 것이라며, 자폐는 인류 발전에 유전적으로 필수적인 요소였을 것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둔 웹툰 작가의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분노가 자폐 아동들을 좀 더 이해하고 수용하는 환경을 만드는 계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번 사례에서 보듯 부모와 교사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자폐스펙트럼 증상이 있는 아이들도 자신의 재능을 키울 수 있도록 그에 맞는 교육법과 교육환경을 연구해 뛰어난 자폐 아동 교육 시스템을 갖추길 기대한다.
글_이정한 IBREA Foundation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