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 이후 확산하고 있는 ‘번아웃 증후군’
2019년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전 세계에 많은 혼란을 준 코로나바이러스도 이제는 엔데믹으로 전환되어 종식되지는 않았지만 관리될 수 있는 질병이 되었다. 이제 많은 것들이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 시기의 급격한 변화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기도 했다. 일례로, 사회적 거리두기는 원격근무라는 새로운 업무환경을 만들었다.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하이브리드 워크가 생겼고, 단지 업무환경만이 아니라 학업환경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새로운 기준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직원들에게 강제로 사무실 복귀를 지시한 것이 이슈가 된 것처럼 사회가 체계를 다시 정비하면서 이전 근무환경으로의 복귀가 강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 인해 ‘번아웃 증후군’이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정신적 탈진이나 소진을 의미하는 번아웃 증후군은 2019년 세계보건기구에서 직업과 관련된 문제 현상으로 분류되었다. 아직 정신질환으로 분류된 것은 아니지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번아웃 증후군 관련 의료비용은 약 163조~ 247조 원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잠재적 생산성 저하는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추정치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새로운 해법과 대응책을 찾아야
미래포럼에서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전 세계 노동인구 중 40퍼센트 이상이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끝을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심리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했지만, 그 후의 환경변화도 번아웃 증후군의 유병률과 강도의 증가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멘탈헬스의 새로운 팬데믹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뇌과학은 번아웃에 대한 새로운 해법과 대응책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번아웃의 주요 원인인 만성 스트레스는 기억, 감정, 스트레스의 조절을 담당하는 해마, 전전두피질, 편도체와 같은 영역에서 뇌의 구조적, 기능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뇌영상 촬영기법을 통해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감정, 특히 두려움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과잉 활성화되고 의사결정과 충동 조절을 포함한 실행 기능에 관여하는 전전두피질의 활성이 저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러한 뇌 기능의 변화는 번아웃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지속적으로 높은 각성 상태와 인지 통제력 저하 상태를 설명한다.
뇌과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해법
과거에 번아웃 증후군은 개인이 처한 환경에 대한 심리적인 반사작용, 혹은 반응으로만 인식되어 업무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언급하는 데 그쳤다. 대부분의 경우 이는 조직문화의 개선을 요구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개인이 여가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거나 여행을 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업무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뇌과학의 발전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업무환경에서의 스트레스가 뇌의 생리적 작용에 실질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경과학적 이해가 번아웃 신드롬 극복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만성 스트레스 및 번아웃에 대한 뇌과학 기반의 치료법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인이 자신의 뇌파를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인 뉴로피드백은 스트레스에 대한 뇌의 반응을 변화시키는 데 사용된다. 또한 마음챙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명상법을 활용하여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방법 역시 번아웃과 관련된 뇌 기능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새롭게 도입된 신경조절 기법, 특히 경두개 자기 자극 (TMS,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도 번아웃 증상 완화에 사용되고 있다. 자기장을 활용해 번아웃에 영향을 받는 부위의 뉴런을 자극하여 뇌 기능을 회복하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준 사례가 보고되었다.
해외에서는 기업 차원의 업무환경도 뇌과학적 정보를 기반으로 개선하려는 사례가 늘고 있다. 번아웃 증후군이 단순히 감정문제가 아닌 뇌의 상태나 기능에 악영향이 발생한 결과임을 인식하고 그에 필요한 대처법을 마련하고자 하며, 기존의 방법에서 벗어나 더 근본적인 해법을 찾고 있다. 또한 뇌 관련 연구의 발전으로 뇌와 신경전달물질, 호르몬 등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이를 토대로 한 다양한 전문가들이 양성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인력개발 차원의 접근뿐만이 아닌 뇌 전문 분야와의 협업을 통한 더 효율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는 위에 언급한 명상이나 뉴로피드백뿐 아니라 뇌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사무공간 인테리어 활용이나 인지 과부하를 일으키는 환경 개선, 업무시간 조율 같은 여러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번아웃은 개인의 약점이 아니라 뇌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중대한 건강문제이다
한국의 경우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번아웃 증후군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2019년 취업포털인 ‘잡코리아’에서 조사한 결과 직장인의 95퍼센트가 번아웃 증후군을 경험하고, 비슷한 시기에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서도 66퍼센트가 이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오랫동안 지속된 무한경쟁의 환경 속에서 한국은 이미 과도한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었고, 세계적 트렌드로 인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이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이 우리 상황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국제적으로 번아웃이 삶의 질을 크게 저하시키며 개인을 넘어 사회에도 많은 악영향을 주는 증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작 더 심각한 상황에 놓여있는 한국은 이에 대한 인식과 대처가 아쉬운 수준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 뇌과학이 지금까지 간과해온 사회적 위기에 대한 희망의 등불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번아웃은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약점이거나 시간관리를 잘못해서 온 증상이 아니라, 포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중대한 건강문제이자 사회문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뇌과학의 지식을 활용하여 멘탈헬스를 증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통해 번아웃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관리하는 지혜를 키워야 할 것이다.
글_이정한 IBREA Foundation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