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영재] 교사가 되어 만나는 그 시절의 나 같은 아이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졸업생의 이야기

브레인 99호
2023년 07월 19일 (수)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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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졸업생의 이야기_게티이미지


두려움에 갇혀있던 학교생활

제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두려움’입니다. 학 생 때 저는 친구들과의 관계나 학업 성적에 대해 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도 중학생 때도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방법을 몰라서 또래들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에게 학교는 어떤 위로나 조언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소외감을 혼자서 감내해야 했고, 학교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오히려 경계하며 두려워했습니다. 특히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이 놀리거나 협박하거나 때리려고 할 때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때 저는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되었고, 학교 가는 것 자체가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또래 관계에 늘 두려움을 느끼며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지나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고등학교는 지역에서 알아주는 인문계 학교였습니다. 같은 학교 친구들은 대부분 공부하는 모범생들이어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래 관계에서 스트레스 받는 일이 현저히 줄었고, 친구도 조금씩 사귀면서 관계가 원활해졌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한민국 인문계 고등학생의 숙명인 공부가 저를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업 스트레스로 질식할 것 같던 순간, 부모님이 건넨 뜻밖의 제안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친구 문제로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저는 공부로 인정을 받고 싶어서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평일에 밤 10시까지 하는 야간자율학습은 기본이고, 토요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공부하고 저녁에는 도서관이나 독서실에 가서 쉼 없이 공부를 이어나갔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다시는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렇게 공부하니 성적이 조금씩 올라 학교에서 엘리트들만 들어간다는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기숙사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워 공부를 더 열심히 하면서 고등학교 생활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에 들어서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성적이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문과와 이과가 나뉘면서 등급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 데다가 공부를 안 하던 친구들도 더 열심히 하면서 상위 등급 받기가 하늘의 별따기 같이 느껴졌습니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목표한 성적이 나오지 않자 스트레스는 극으로 치달았습니다. 급기야 2학년 말 즈음에는 몸이 쓰러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정신도 이상해져 갔습니다.

어머니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하시면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습니다. 2014년 당시만 해도 대안학교는 학교생활에 뭔가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 가는 학교라는 인식이 강했고, 성적이 괜찮으면 쳐다도 보지 않는 학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마저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대해 설명해주시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고 필요한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설득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3학년에 올라가기 직전에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

벤자민학교에 입학하기 한 달 전까지도 저는 고등학교에서 방학 기간에 자율학습을 할 정도로 공부에 진심이었습니다. 당시 자율학습을 담당하셨던 선생님은 “자퇴를 한 달 남기고 공부하는 애는 네가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공부를 놓고 대안학교에서 생활한다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를 완전히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벤자민학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역시 학기 초반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두려움이 무색할 정도로 저는 학교생활에 큰 만족을 느꼈습니다. 
 

벤자민학교 친구들과도 잘 맞았고, 수업도 주 1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이뤄

져서 수월했습니다. 또 친구들과 수업에서 만나 얘기 나누며 웃는 그 시간이 제게는 너무나 큰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항상 두려움 속에서 친구들을 대하던 제가 아무런 긴장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지낼 수 있다는 건 참으로 큰 행복이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수업을 하고 친구들과 만나는 게 벤자민학교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벤자민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 기획해서 실행하는 프로젝트 과정이 주를 이룹니다. 프로젝트는 봉사활동, 댄스, 노래, 뮤지컬, 국토 종주 등 그 어떤 주제라도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기획해 실행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많은 프로젝트를 실시했습니다. 해외봉사 프로젝트, 공연 프로젝트, 사회참여 프로젝트 등 10개가 넘습니다. 그중에서 사회참여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주어진 것 안에서만 방법을 찾던 제가 그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였기 때문입니다.

사회참여 프로젝트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점을 찾아 이를 해결 할 방안을 발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저는 친구 2명과 함께 학교에서 보내는 가정통신문 종이를 절약하는 방법으로 ‘가정통신문 스마트폰 앱’ 개발이 필요하다고 발표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중에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했습니다. 이미 가정통신문 스마트폰 앱이 개발되어 나와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개발하자고 제안하려 했는 데 개발이 이미 되어있으니 프로젝트를 발표하는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

저와 친구들은 선택해야 했습니다. 프로젝트를 포기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 향으로 돌릴 것인지를 말입니다. 저희는 의논 끝에 프로젝트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로 했습니다. 앱이 이미 나와 있었는데 왜 우리가 알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결과 해당 앱의 홍보와 접근성이 부족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를 바탕으로 새롭게 발표 준비를 했습니다.

발표 결과는 예선 탈락이었습니다. 탈락이라는 결과가 씁쓸했지만, 그때 저는 중요한걸 하나 배웠습니다. 그것은 일을 진행하다가 벽에 맞닥뜨렸을 때 섣불리 벽을 원망하고 좌절하지 말고 벽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입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고 전문상담교사가 되다

이 깨우침은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쉽게 좌절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이라는 걸 알고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벤자민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인문계 고등학교로 돌아갈 때 이과에서 문과로 바꿔 복학했습니다. 대입 시험에서는 벤자민학교에서의 경험을 자기소개서에 적은 덕분인지 성적보다 더 높은 대학의 심리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에서도 벤자민학교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많은 대회에 참여하고, 조별 과제에서도 솔선수범하여 3학년, 4학년을 전액 장학금으로 다녔습니다.

4학년 때부터는 임용고시를 준비했습니다. 준비하면서 여러 고비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벤자민학교 때 익힌 내면의 힘을 사용했고, 마침내 임용고시를 한 번에 붙었습니다.

현재는 청주교육지원청 소속의 전문상담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학창 시절을 힘들게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길을 찾는 일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의 길을 찾아 꿈을 펼치는 데 힘을 보태겠습니다.

글_서진웅 청주교육지원청 전문상담교사, 벤자민인성영재학교 2기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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