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오랜만에 대하소설을 읽었다. 대일항쟁기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와 더불어 조선 3대 천재 중 한 명이라 불리었던 벽초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이다. ‘임꺽정’이라 하면 대부분 들어봤거나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 역시 이번에 벽초 선생의 원전을 읽어보기 전에는 임꺽정이 조선 중엽 홍길동 같은 의적이라고만 알고 있었고, 실제 인물이라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 소설 《임꺽정》
어린 시절 TV에서 임꺽정에 대한 드라마를 본 기억도 있고, 짧게 각색된 임꺽정 소설을 읽어본 기억도 있지만 총 10권으로 출판된 원전을 읽기는 처음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수도 없이 감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근현대 한국문학작품 중 대표적인 대하소설이랄 수 있는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아리랑》,《한강》, 최명희의 《혼불》, 황석영의 《장길산》, 최인호의 《상도》 등을 전부 읽어보았는데, 이 훌륭한 작가들이 벽초 선생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스케일이 그렇고,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것도 그렇고, 장면에 따라서는 후대에 약간의 패러디를 한 것 같은 장면도 얼핏 떠오르기도 했다. 소설 《임꺽정》은 연산군 시대부터 중종, 인종, 명종 시대에 걸쳐 임꺽정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도적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당시 민초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당시 정치, 경제, 사회 상황 등도 알 수 있는 스토리로 되어 있다. ‘임꺽정’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수차례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당시 정권 차원에서는 골칫거리였던 모양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놀랐다고 했는데 처음으로 놀란 것은 우리말의 품격이었다. 당대 쓰던 말을 어떻게 재생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은 전혀 쓰지 않거나 어쩌다가 쓰게 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이 뜻을 모를 순 우리말이나 한자어 등이 수도 없이 나온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단어의 뜻을 해설하는 주가 붙어 있을 정도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반복적으로 단어가 쓰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뜻을 파악하게 되지만 처음에는 단어 해석을 공부해가면서 읽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말에 존대어와 반말 사이에 여러 등급이 있어 ‘하오’체, ‘하게’체, ‘해라’체 등이 상대방에 맞게 쓰여 졌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두 번째는 ‘임꺽정’을 의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의적이라면 홍길동 같이 탐관오리에게 빼앗은 재물을 힘없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준다든지 등의 행동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것과는 거리가 있는 행동이 많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지만 가장 놀라웠던 것은 소설 《임꺽정》이 미완의 대작이라는 것이다. 책이 끝나갈수록 ‘아직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을 손에 놓고는 알게 되었다. 너무 아쉬운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벽초 홍명희 선생은 작가로서의 천재성과는 별개로 본인의 신념에 따라 공산주의자의 길을 선택해서 6·25전쟁 전에 이북으로 건너가 뿌리를 내린 뒤 북한에서 고위 간부까지 지내다 돌아가셨다. 그런 이유로 《임꺽정》이 대한민국에서는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다가 80년대 중반에 처음 원전이 출판된 이래 이번에 새롭게 손을 봐서 다시 세상에 소개되었다. 저자의 사상이야 차치하고 작품만 가지고 말할 때 《임꺽정》은 언제 읽어도 후회 없을 대작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사람을 작품 속에 빨려 들게 할 수 있는 능력자들이 정말 부럽고도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가외로 역사 상식도 많이 알 수 있는 작품이므로 대작에 도전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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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우종무 (주)HSP컨설팅 유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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