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남긴 창세가創世歌의 비밀

우리 민족이 남긴 창세가創世歌의 비밀

박성수 명예교수의 역사에세이



8월은 광복의 달이다. 광복이란 말도 어려운 단어지만 실지로 광복을 이루기란 더 어려운 일이다. 1945년을 광복의 해라면 올해로 69년이 된다. 그러니 나이만 들었지 철이 안 든 상태에 있는 것이다.

인생도 70이라면 고희인데 우리는 광복이 개천인지 개국인지 아니면 개벽인지 모르고 고희가 되었다. 그냥 나이만 들고 철이 안 든 사람을 노인이라 한다. 노인이 되기는 쉽다. 나라도 노인국이 되기 쉬우나 신인神人의 나라는 되기 어렵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비가 와야 하는데 올해처럼 사고가 많고 비가 안 와서야 어디 가을에 수확할 것이 있겠는가. 이처럼 철이 안 든다는 것은 비극이다.

사람이 철이 들려면 시작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시작을 모르고 살았다. 그러니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턱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에게도『창세가創世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 철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철이 들어야 한다. 대다수 한국인은 기독교 성경에 창세기가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나 우리의 창세기는 천부경天符經 말고 아는 사람이 드물다.

천부경은 그 해독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이 드물다. 이제야 우리『창세가』를 발견하였으니 늦었으나 매우 다행한 일이다.

▲ 무당내력


『창세가』는 이 세상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를 노래하면서 이 세상의 끝이 어딘가를 알려 준 신가神歌였다. 신가는 우리 민족 고유의 신교에서 부르던 찬송가다.

우리나라에 불교와 유교 그리고 도교가 들어온 것은 일설에 4,000년 전이요 다른 일설에 2,000년 전이라고도 한다. 그러면 9,000년이나 되는 우리 역사 속에서 5,000년 7,000년 되는 이전의 시대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고 먹지 않고 살았단 말인가. 우리말과 우리글이 있었고 우리 신이 있었고 문화가 있었으니 바로 신교다.

글이란 우리말 자체가 부지깽이로 땅을 긁어 글을 썼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때 우리는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늘을 <한울>이라 했다. 땅을 <따>라 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람>이라 했다. 얼마나 사실에 맞는 말들인가. 천자문에 보면 하늘 천天 따 지地 감을 현玄, 누루 황黃이라 했는데 바로 현황은 한울을 말하는 것이다.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리고 신이 있고 나서야 사람이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창세가』는 민속학자 남창 손진태南倉 孫晉泰(1900- 납북)선생이 1923년에 함경남도 함흥에 살던 대무大巫 김쌍석이金雙石伊 (당년 68세)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녹취한 것이다.

김쌍석이란 대무大巫가 기억하고 있던 『창세가』는 태곳적부터 불러 온 신가의 한 가락이었다. 그 뒤 불교와 불교가(歌) 들어온 뒤에도 무당들이 불러서 아주 쉽게 천지가 갈라진 전후의 일을 쉽게 설명하여 주었다.

신을 불러 내린다. 즉 강신한다는 사람이 신관神官이요 그 후손이 무당이었다. 무당은 성직자였는데 신을 설명하지 못하면 신관으로서 자격이 없었다. 그래서 『창세가』를 부르지 못하고서는 무당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런 귀중한 신가神歌를 한 번 불러보기로 하는데 독자를 위해 필자가 원문을 현대어로 바꾸었다. 

창세가 (1) - 미륵님 시대가 좋았다 -

하늘과 땅이 생길 적에 미륵이 탄생하셨다. 그때 하늘과 땅이 서로 붙어있어 떨어지지 않았소.

하늘은 가마 솥뚜껑 꼭지처럼 돋아나 있었고 땅에는 네 귀퉁이에 구리 기둥이 서 있었다네.

그때는 해도 둘이요 달도 둘이어서 별 하나 떼어서 북두칠성 남두칠성을 마련하고 해 하나를 떼어서 큰 별을 마련하고 잔별은 백성들의 별을 마련하고 큰 별은 대신大臣별을 마련하였다.

미륵님은 옷이 없어 하늘 아래 베틀(織機) 놓고 구름 속에 잉아(=베틀의 낱실을 끌어올리도록 맨 굵은 줄) 걸고 이산 넘어 저 산 넘어 뻗어 가는 칡넝쿨로 아래위 바지저고리를 짓고 나머지 두자 세치를 떼어 머리고깔을 지어냈다.

미륵님 탄생하여 미륵님세월에는 생화식生火食을 잡수시어
불 아니 넣고 생 낱알을 잡수시어 미륵님은 섬 들이로 잡수시고 말들이로 잡수시어
내 이렇게 탄생하여 물의 근본 불의 근본 찾아낼 이가 나밖에 없어라.
미륵님 세월에는 사람들도 섬들이 말들이 잘 먹고
남녀가 부부되고 인간세월 모두 태평하였다.

이상의 글을 요약하면 미륵님이 다스릴 때는 태평 성대하여 사람들이 입고 마시고 먹는데 부족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모두가 섬들이 말들이로 먹을 수 있었고 남녀가 서로 화합하여 가정을 이루어 잘 살았다.

특히 신도 둘 세 있지 않고 한 분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신이 나밖에 없다. 나 말고는 믿지 말라고 했는데 어느 날 석가라는 외방신이 나타나더니 나를 믿으라 소리쳐 세상이 돌변하였다.

▲ 대무大巫 김쌍석이金雙石伊


창세가 (2) - 석가모니의 도전 -

그랬는데 석가모니가 내려와서 이 세상을 빼앗고자 하니 미륵님이 말씀하시기를 아직은 내 세월이라 너 세월은 못된다.

그러나 석가님은 말씀하시기를 미륵님 세월은 다 갔다. 인제는 내 세월을 만들겠다. 이에 미륵님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의 세월을 빼앗으려거든 너와 내가 내기를 하자.
 
창세가의 1편은 이렇게 해서 미륵이 물러가는데 그냥 물러 간 것이 아니라 내기를 걸었다. 무슨 신들이 점잖지 않게 노름을 하시는가. 생각하겠지만 신화란 그런 것이다.

아무튼 제2편 석가모니의 시대로 넘어가 외래종교 불교가 들어와서 신교와 싸우게 되는 데 전쟁하는 것보다 내기하여 승패를 결정하였으니 다행한 일이었다.

이 내기에서 석가모니가 비겁하게도 속임수를 쓴다. 엄청난 속임수라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잘한 것이 없다는 창세가의 속내가 드러난다. 분명 『창세가』의 작사 작곡가는 불교를 반대하고 신교에 편들어 노래를 한 분이었다.

“축축하고 더러운 석가야 지금 너의 세상이 되면 집집마다 솟대가 서고 너의 세월이 된다면 집집마다 기생이 나고 집집마다 과부 나고 집집마다 무당 나고 집집마다 역적 나고 집집마다 백정 나고 너의 세상이 된다면 삼천 중에 일천 거사居士가 나느니라.”

이렇게 해서 미륵님이 산속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단군이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는『삼국유사』의 이야기와 비슷하다.『삼국유사』를 지은 이가 일연 스님이라 절에 대웅전 미륵전 그리고 산신각 칠성각 등을 지어 불교가 아닌 신교의 신을 모신 까닭을 암시하고 있다. 즉 석가가 미륵에게 완승한 것이 아니라 그냥 타협한 것이었다. 창세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으나 끝이 애매모호하다. 아무튼『창세가』는 우리 조상들이 알고 있던 역사관이요 세계관이요 우주관이니 아무렇게나 버릴 일이 아니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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