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여의도에서 사람을 무차별 공격하는 ‘여의도 칼부림’ 사건으로 4명이 부상당했다. 지난 22일에 일어난 이 사건 외에도 경기 의정부(18일, 8 명 부상), 경기 수원(21일, 1명 사망, 4명 부상)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의견을 내어놓고 있다.
다중 살인(Mass Murder),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하다.
세 사건은 모두 분노의 대상과 상관없는 사람까지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는 점에서 미국 등 서구에서 종종 일어나는 다중살인(Mass Murder)과 비슷하다.
미 법무부 사법통계국의 정의에 따르면, 다중살인은 한 장소, 한 사건에서 희생자가 4명 이상 발생하는 살인을 말한다. 다중살인의 피의자 95%가 남자다. 이들은 대부분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하고 외톨이로 지낸다. 미국 비밀검찰국은 다중살인을 촉발하는 원인으로 해고, 실연, 이혼 등을 꼽았다. 노스이스턴대의 제임스 앨런 폭스 교수와 잭 레빈 교수는 다중살인 대부분은 해고된 직원이 옛 직장에 나타나 상관과 동료를 사살하거나, 붕괴된 가정의 아버지나 남편이 가족 전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중살인 범죄연구 권위자인 엘리어트 레이튼 박사는 2007년 캐나다 일간지 글로브 앤드 메일에서 “다중살인자는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오랜 기간 분노를 품고 지내며, 복수를 꿈꾼다고 설명했다.
복수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사회 전체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범행을 저지르기 전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
‘절망’이 범죄의 원인이다.
여의도 사건의 피의자 김씨의 경우 2년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실적 부진으로 실직한 뒤 생활고에 줄곧 시달렸다. 경찰 조사에서 김씨는 고시원에서 살면서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고 지냈다고 진술했다. 18일 의정부시 피의자 유씨 역시 일용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렸으며,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고, 친구가 없다”고 진술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생활고에 소통 대상도 없이 혼자 사회에 대한 분노를 곱씹은 두 피의자를 ‘절망형 은둔자’로 설명한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의 이수정 교수는 25일 서울신문에서 “묻지마식 범죄 피의자들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데다 직장, 가족 구성원들과도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경제적 소외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소외된 ‘외톨이’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공격성을 완충시켜줄 수 있는 게 관계와 소통인데 외톨이형은 이런 완충작용을 해주는 관계가 없어 문제”라고 진단했다.
경찰대의 이웅혁 범죄심리학 교수는 같은 날 한국일보에서 이 범인들에게는 친구나 가족, 애인 등 의미 있는 타인이 없어 분노 제어를 할 기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위 사회통제의 끈이 없기 때문에 충동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며 “자신의 분노를 표출하는 과정에서 주변인이 방해되거나 자신을 잡으려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무차별로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축에 속한다. 전문가들은 이전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분노와 절망을 자책하며 자살했지만, 이제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오는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이를 택한다고 지적했다.
※ 분노를 느낄 때 뇌에서 어떤 반응을 하는가.
길가다가 누군가가 어깨를 치고 지나갈 때, 즉각적으로 느끼는 분노는 뇌의 가장 원초적인 부분(대뇌 반구의 밑부분인 후뇌, 전신의 운동을 담당하는 소뇌와 연수로 이루어졌다)에서 짧은 경로를 따라 거의 반사적으로 일어난다. 평소 소심하고 조용하다가도 갑작스레 분노가 폭발해 폭력적으로 변하는 사람들(헐크성 장애)은 핵자기공명 검사에서 소뇌 이상과 뇌파 교란 징후가 나타나곤 한다.
반대로 분노와 충동을 조절하는 부위는 뇌에서 가장 나중에 진화한 전전두피질 부위다. 연인끼리 오래된 일에 대해 거론하며 싸울 때도 전전두피질이 관련 있다.
글.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
도움. 《내 감정 사용법》, 프랑수아 를로르·크리스토프 앙드레 지음, 와이즈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