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년 전에 발견한 옛 한글, ‘뇌'(腦)였다!

3천 년 전에 발견한 옛 한글, ‘뇌'(腦)였다!

이찬구 박사, 고죽국 유물 ‘첨수도’서 옛 한글 발견

최근 이찬구 박사는 신간 ‘돈’을 통해 단군조선의 제후국 고죽국의 유물인 첨수도(尖首刀)에서 한글로 보이는 두 글자인 '돈'과 '노'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중국 학계는 법제만보, 환구시보 등 현지 매체를 통해 이 박사가 발견한 유물은 연명도이고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다며 반박을 했다.

이 박사는 지난 9일 서울 중구 신당동 한 사무실에서 만난 자리에서, 중국 학계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을 했고 언제든 토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책에서 옛 한글 ‘노’자의 어원은 ‘뇌’라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 이찬구 박사가 첨수도(尖首刀)에서 한글의 옛 문자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 박사와의 일문일답.

- 쑹전하오(宋鎭豪) 중국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주임은 한글이 발견된 화폐가 한눈에 봐도 ‘연명도(燕明刀)’라고 반박했다.

화폐에 대해 무지한 사람이다. 연명도와 첨수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학자라면 이 책을 보기 전까지는 논평할 수 없다고 해야 맞다. 뉴스를 보고 즉흥적으로 답변해서 오도한 책임은 쑹전하오(宋鎭豪) 씨에게 있다.

-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그것은 쑹전하오 씨가 잘못 해석한 것이다. 처음 국내 기자에게 전화로 첨수도 사용연대가 2500년에서 3000년 사이라고 말했고 그것을 사용한 고죽국 건국연대가 3600년 전이라고 말했다. 고죽국의 건국연대를 첨수도의 사용대로 쑹전하오 씨가 착각해서 한글 첨수도의 사용연대가 3600년 전이라고 오보가 나온 것이다. 국내 독자들도 이점을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다.

- (중국 학계는) 고죽국에 대해서도 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나의 학설이 아니다. 중국의 학자 맹고탁력(孟古托力)이 3600년 전에 고죽국이 처음 세워졌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중국 역사학계는 고죽국을 은나라의 제후국이라고 말했다. 맹고탁력은 화하족(華夏族)이 아니라 동북이(東北夷=동이족 계열)이라고 말했다. 이학근(李學勤)도 요서 지방에 고죽, 영지(令支), 산융(山戎)은 고대 토착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로 보면 모두 고죽국의 후예다.

- 2일 발표하고 3일부터 나흘간 세미나 일정으로 중국을 다녀온 것으로 안다. 중국 현지의 반응은 어땠나?

(중국 인터넷 매체 상위 10위권 기사로 소개된 자료를 보여주며) ‘중국 고대 화폐에 정말 한글이 있었느냐’라는 기사로 인터넷에 올랐는데, 7월 6일 하루 동안 350만명이 조회했다.

▲ 이찬구 박사는 지도를 그리면서 연나라와 제나라가 단군조선의 서부전선을 지킨 고죽국을 공격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 왜 이렇게 관심이 높은가?

한자의 역사는 3500년 전인데, 한글이 3000년이나 3600년 전으로 보도되니깐 ‘한글이 우리 한자보다 더 오래되었나?’라며 위기의식으로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 연속 선상에서 아리랑, 단오절, 만리장성 문제까지 중국이 역사왜곡을 하고 있으니깐 자기를 방어해야 한다는 위기의식도 작용하지 않았겠나 생각된다.

- 고죽국과 한글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은 고죽국을 멸망시켰기 때문에 자기들의 역사라고 말한다. 그런데 땅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화적인 배경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한 것 중의 하나가 ‘말(언어)’이다. 다른 것은 유사하더라도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것이 우리말이다. 갑골문자는 점치는 문자이고, 화폐문자는 경제단위다. 화페문자는 화폐를 주조한 정치체가 있었다. 화폐문자를 통해 고죽국의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3년간 화폐문자를 연구해서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 상하이 푸단대 한국연구센터 스웬화(石源華) 주임은 세종대왕 이전의 한글은 모두 한자라며, 믿을만한 증거를 더 내놓으라고 했는데?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겠다. 더 노력하겠다. 올해 출간될 예정인 (또 다른) 책에선 완벽한 한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스웬화 주임은 화폐문자의 가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내가 발견한 ‘돈’자와 ‘노’자는 동굴벽화나 암벽에서 누가 쓴 그런 글자와는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화폐문자는 청동기로 주조한 정치집단의 공식문자다. 특별한 가치를 부여해 평가해야 한다. 한 글자만 있어도 중요한 것이다. 우연히 누가 쓴 문자가 아니다.

- 첨수도에서 발견한 한글은 직접 봤는가?

문헌으로만 찾은 것이다. 이좌현(李佐賢)은 ‘돈’자를 읽지 못했다. 그의 책에 알 수 없는 글자라는 뜻으로 불가식(不可識) 문자라고 적었다. 중국 요녕성 박물관에 보관된 실물을 찾기 위해 다녀왔지만 전시되어 있지 않았다.

- 한글 이전에는 이두문자를 쓰지 않았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한글 창제라는 위대한 순간을 단 55자로 기록해놓았다. 마지막 구절이 자방고전(字倣古篆)이다. 이 글자는 옛 글자를 모방했다는 것이다. 세종 당대부터 제기된 문제였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연구했다. 우리 조상은 3천 년 전에도 한글을 썼다. 한자문화권에 가려졌다가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은 것이다. 이두문자를 쓰더라도 우리가 옛 글자가 있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

- 한글 창제와 기원설은 구분해야 하는 이유는?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한글기원은 별개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글창제 이전에 우리는 문맹의 민족이었나? 아니다. 500년~600년밖에 안된 신생문자국가인가? 우리 말은 수만 년 전부터 내려왔다. 당시에 학자 최만리도 옛 글자가 있는데 왜 한글을 창제했냐고 상소문을 올릴 정도였다. 지금 봐서는 왕권에 도전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 배경은 사대주의 한자문화권이었기 때문에 최만리가 왕을 도전할 수 있었다. 세종은 수세적 위치에 있었다.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보라. 옛 한글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세종도 위대하지만 우리 조상의 위대한 문화유산을 가릴 수 없다.

- 재야학계에서 제기한 한글의 원형으로 ‘가림토 문자’와 어떻게 다른가?

<단군세기>에 전하는 가림토 38문자는 낱글자다. 기억과 니은만 있지 가나다는 없다. 강단사학계에서 가림토 문자를 부정하는 이유는 실제 글자를 내놓으라고 말한다. ㄱ ㄴ 은 훈민정음을 보고 누가 만들지 못하냐고 한다. 그 사람들이 야속하지만 타당성도 있다. 내가 찾은 문자는 실제 글자를 쓴 용례를 찾은 것이다.

- 우리 조상은 받침을 발견한 위대한 민족이라고 말한 이유는?

‘노’ 자는 받침없는 글자이고 ‘돈’ 자는 받침 있는 글자다. 엄청난 차이다. 받침이 없으면 글자가 단순하다. 일본 사람들은 ‘김치’라고 말을 못해요. ‘기무치’라고 말하지. 택시라고도 못한다. ‘돈’ 자는 고죽국의 유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은 받침을 발견한 위대한 조상이다. (왜냐하면) 받침이 없으면 초성과 중성만 조합해야 한다. 399자밖에 안 나온다. 받침이 있으면 11,172자가 나온다. 글자가 얼마나 진화했나? 30배가 진화한 것이다. 현재 <단군세기>에 있는 가림토 문자는 추측건대 받침이 없을 때의 문자일 확률이 높다. 세종은 받침의 위대성을 깨달은 분이다.

▲ 이찬구 박사는 최만리 상소문과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자방고전을 토대로 한글의 원형을 찾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 이번에 발견한 ‘노’자의 어원을 ‘뇌’라고 주장한 근거는?

"신라 향가의 이름은 사뇌가(詞腦歌)이다. 삼국유사에 동천사가 사뇌의 들 북쪽에 있다고 했다. 사는 동쪽을 말하는 ‘새’이니 동풍을 샛바람이라고 하며, 뇌는 검은 머리에서 검은 물로 이어지니 신성한 샘물을 의미한다. 사뇌가의 본뜻은 동쪽 사람들의 신성한 노래라는 뜻에서도 알 수가 있다. 노래의 ‘노(腦뇌)’가 곧 뇌(雷)인 것이다. 노래는 노에서 나와 뇌처럼 울리기 때문이다. 우리말 울다, 웃다, 울리다는 다 뿌리가 같다. 강희자전에도 뇌는 혹 노라고 쓴다고 했다."

- 한류에 대한 관심은 드라마, 음악을 너머 ‘한글’로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또 다른 ‘홍익’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아프리카에 가서 한글을 전파하고 싶다. 한글은 무한한 영성이 담긴 스피릿(spirit) 문자다. 일본어나 영어도 모음 수가 많지 않다. 인류문명이 발전할수록 더 고급 언어를 찾게 된다. 한글은 통해 영(靈)을 전하는 것이다. 그것이 홍익의 ‘얼’이다. ‘너희는 착해라’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한글은 가르치면서 우리의 아름다운 영성을 전해주는 것이 21세기 홍익운동이며, 한류라고 본다.”

- 마지막으로 전할 말은?

 “중국 한자의 역사도 100년 전에 한 농부의 손에 의해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에는 아무도 몰랐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와 한글기원 문제는 별개다. 한글의 기원을 증명할 수 있는 문자가 발견되면 갑골문자 3500년 못지않은 역사로 소급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찬구 박사
: 1956년 충남 논산 출생. 1985년부터 주역의 대가 대산(大山) 김석진 선생 문하에서 9년 동안 주역,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천부경 등을 공부했다. 동학(東學)연구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석사학위(2002년)를 대전대학교에서 박사학위(2005년)를 받았다.

글·사진 윤관동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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