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꿈, 백두(白頭)의 여신을 만나다!

한여름의 꿈, 백두(白頭)의 여신을 만나다!

[여행] 역사의 바다로 떠난 백두산 명상여행, 그 속에서 만난 이야기들

최근 송일국, 김장훈 등 유명 연예인들이 대학생과 함께 떠나는 ‘역사여행’이 주목을 받고 있다. 2003년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 백두산공정 등 역사왜곡이 노골화되면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이유도 있다.

필자는 6년 전에 명상과 역사가 결합한 ‘백두산 명상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2006년 8월 3일부터 6일까지 3박 4일간 충남국학원 회원 30여 명과 함께 한민족의 역사를 다녀왔다.



가슴으로 맞이한 백두의 여신

 

▲ 백두산과 들꽃

 

중국 연길공항에서 버스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백두산 근처 호텔이었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장백폭포를 만났다. 마치 용이라도 승천할 것처럼 장엄한 소리를 내는 폭포 앞에 선조들이 백두산을 입산(入山) 하기 전에 목욕재계한 성소(聖所)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일행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계단을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 백두산에 도착했다. “이곳이구나! 정말 내가 이곳에 왔구나!” 달력에서나 봤던 백두산의 장엄한 풍경이 나의 심장을 고동치게 했다.

한민족의 후손들의 정성 어린 마음에 감동했는지 백두의 여신 또한 청명한 하늘 아래 천지(天池)의 가슴을 온전히 드러냈다. 여행단은 가지고 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오후 늦도록 백두산에 머물렀다. 태길자 가이드는 “백두산 안내는 오랫동안 해봤지만, 이처럼 오랫동안 백두산에 있는 사람들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백두산 온천에서 맛볼 수 있는 옥수수


천지에 두 발을 담그니 얼음물에 들어간 것처럼 머릿골까지 짜릿했다. 너도나도 백두산에 핀 이름모를 꽃들에 둘러싸여 한 폭의 풍경을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모두 내려갔지만, 우리는 본격적인 백두산과의 만남에 들어갔다. 산들거리는 바람 앞에 몸을 맡긴 채 조용히 자리에 앉아 호흡하기 시작했다. 최전일 명상 트레이너의 지도로 진행된 운기조식(運氣調息)은 천지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아랫배 단전(丹田)에서 축기(蓄氣: 기를 쌓게 한다)가 되어 가슴을 열게 하고 머리가 텅 비어지는 무아(無我)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정이현(45세, 가명) 씨는 “백두산이 다르긴 다른 것 같다. 온몸이 강렬하게 진동이 올만큼 큰 기운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명국(52세, 가명) 씨는 “여기와본 것 같다. 백두산에서 말타고 활쏘는 장수의 모습이 비춰진 것 같다”라며 믿거나 말거나 식의 전생체험을 전해 좌중을 웃기게 했다.

역사의 현장 앞에 발걸음을 멈추다.

“일송정 푸른 물은 늙어 늙어 갔어도~♪♬”

선구자 노래가 서린 일송정에서 바라본 해란강은 용이 지나가듯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일송정에 서 있는 소나무는 1991년 한국 각계의 후원으로 다시 심어 복원된 것이다. 일제가 소나무에 구멍을 뚫고 약품을 주입해 1938년 고사시켰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의 현장, 일송정

 

다음으로 찾아간 대성중학교는 윤동주 시인의 모교로 유명한 곳이다. 실제로는 당시 6개 학교 중에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은 곳이기 때문으로 더욱 알려졌다. 학교 안에는 당시 선조의 치열한 독립운동 현장을 오롯이 전시해둔 유품과 사진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봉오동ㆍ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김좌진 장군, 홍범도장군, 서일장군, 이범석 장군들의 사진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근대 국학의 선각, 홍암 나철 대종사를 중심으로 무장투쟁의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던 선조들의 영혼 앞에 고개 숙여 묵념했다.

여름 휴가철이 다가오면 산과 계곡, 바다 등이 떠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패턴의 여행을 벗어나 가족과 지인, 홀로 백두산의 정기를 받는 여행을 통해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글. 사진 윤관동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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