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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자본의 경제논리가 동네 골목까지 잠식한 지 오래다. 그곳에 공생의 길은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새로운 길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작은 곳이지만 서로가 서로를 믿고 거래하고, 내가 사는 마을에 기여하면서 착한 이윤을 얻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마을기업’의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동네목수’ 덕분에 장수마을이 회춘하고 있어요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던 임진년 새해 초에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을 찾았다. 추위에도 아랑곳 않고 마을 안의 빈집을 개조해 카페를 만들고 있는 ‘동네목수’의 직원이자 마을 주민인 김길남(62세) 씨와 배정학(46세) 씨의 손길이 바쁘다. 장수마을에서 25년간 살고 있는 김길남 씨는 “이제는 고향 같은 이곳을 떠나기 싫다”며 “빈집 없는 깨끗한 동네, 사람이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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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작업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 목조공방으로 발걸음을 돌리자 문짝을 재단 중인 김금춘(76세) 씨가 보인다. 그는 55년 이상 장수마을에서 살고 있는 동네의 산 증인이자 목공 경력자로, 십수 년 전 고관절 수술을 한 뒤로 일을 하지 못했지만 ‘동네목수’ 덕분에 다시 일을 시작했다.
고령인데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일을 더 이상 못 할 줄 알았는데, 이 나이에도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돼서 즐거워요. 젊은 사람들의 발걸음도 잦아지면서 마을이 달라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니까 힘이 절로 나네요”라고 답한다.
장수마을은 2004(4337)년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주변에 서울성곽을 비롯한 문화재와 지형적인 요소 등의 이유로 사업이 무기한 보류되면서 나날이 활기를 잃어갔다.
대부분 세입자인 주민들은 사업이 재개되면 언제 헐릴지 모를 낡은 집에서 불안 속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2008(4341)년부터 주민들은 기약 없는 재개발 대신 대안적 마을 개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작년 여름에 마을기업인 ‘동네목수’를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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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목수’의 손길이 닿은 집에는 다시 온기가 돌고, 낡은 집 담벼락에는 올망졸망 아름다운 벽화가 그려졌다. 지붕에도 베란다에도 곳곳에 채소와 꽃을 심은 화분들이 놓이면서 마을 안에서 도시농업이 시도됐다. 전체 250가구 주민의 60% 이상이 60~70대 연령인 이 마을이 활짝 피기 시작한 것이다.
‘동네목수’ 대표를 맡고 있는 박학룡 씨는 “마을은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며 부딪히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하나 둘 실현되는 것을 보며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목공 기술 등 건설 경력을 가진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마을의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는 ‘동네목수’는 빈집 수리 등 마을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사업과 맞춤가구 제작, 중고가구 수리 등을 계획하고 있다.
50년 가까이 장수마을에서 살고 있는 우순자(73세) 씨는 “빈집들이 고쳐지고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이사 오면서 마을이 활력을 찾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며 “앞으로 마을에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꽃 피는 봄을 눈앞에 바라볼 때쯤이면 동장군의 한파를 참아내며 ‘동네목수’의 손길들이 공들여 만든 마을 카페가 주민들에게는 사랑방이요, 장수마을 근처 서울성곽과 낙산공원을 찾은 외부인들에게는 차 한 잔 마시며 쉬어가는 쉼터가 되어 있을 것이다.
마을, 공생하는 법을 배우다
‘동네목수’ 사례에서 보듯 마을 기업은 지역 공동체의 자원을 활용해 주민이 주도하는 사업을 벌이고 그곳에서 안정된 소득을 얻고 일자리도 만드는 마을 단위 기업이다.
2011(4344)년 기준으로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마을기업은 69개에 달한다. 정부에서도 마을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현재 전국적으로 5백여 개에 이르는 마을기업이 지역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각박한 세상살이에서 마을기업은 서로 보살피며 공생하는 법을 배우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첫발을 내딛고 있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 사진·김성용 pangod@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