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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의 다양한 이슈를 ‘뇌’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브레인셀럽.
경제학자 박진도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사단법인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가 경제 성장과 행복 지수가 비례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짚고, 삶의 만족도를 올리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을 중시하는 나라, 부탄
한때 부탄이 행복 지수 1위 국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근거가 명확치 않았습니다. 유럽의 신경제재단에서 매년 행복한 지구 지수를 측정하는데, 이는 생태 발자국이나 삶의 만족도, 기대 수명 등을 중심으로 조사하기 때문에 UN과는 조사 기준이 다릅니다.
이 조사에서 부탄이 1위를 한 적은 없고, 2009년에 17위였습니다. 부탄이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계기 중 하나는 2011년 부탄 자체 조사에서 국민의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응답한 것입니다.
97퍼센트는 ‘아주 행복하다, 행복한 편이다, 보통이다, 좀 덜 행복하다, 아주 안 행복하다’ 중에서 선택하는 오지 선다형을 통해 나온 수치고, 부탄 자체 조사이지 다른 나라와 비교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국민의 97퍼센트가 행복하다고 답한 것은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탄은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국정 철학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부탄의 국민총행복은 교육, 건강, 생태 다양성 및 복원력, 공동체 활력, 문화 다양성 및 복원력, 생활 수준, 시간 사용, 심리적 웰빙, 좋은 민주주의 등 아홉 개 영역의 균형 있는 발전을 추구합니다.
개인과 사회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요인 이외에 정신적, 사회문화적, 생태적 요인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죠.
▲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행복을 중시하는 나라, 부탄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부탄은 첫눈이 오는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첫눈을 가족, 이웃과 함께 즐기면서 공동체적 유대를 강화하는 것입니다. 또한 삶과 일의 균형을 매우 중시합니다.
부탄 정부는 국민에게 하루 8시간은 일하고, 8시간은 자고, 8시간은 자기 계발과 공동체에 공헌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기를 권장합니다. 8시간 이상 일하면 돈을 조금 더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부탄에는 ‘남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회적 유대가 강하죠. 의료와 교육은 오래전부터 무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친구들과 부탄에 갔을 때 한 사람이 아파서 밤에 급하게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1박 2일 치료하고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모든 공교육은 국가가 책임지고요.
부탄의 1인당 국민 소득은 약 3천 달러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합니다. 의료의 질이나 교육의 질은 우리나라보다 떨어지겠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아파도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학비가 없어서 진학을 못 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는 지금 힘들어도 미래에는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행복에 대한 이 같은 태도는 티베트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참다운 행복을 위해서는 물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정신적·정서적 행복을 추구할 것을 가르칩니다.
정신과 물질의 조화를 중시하는 태도는 사람에게 바른 의지, 바른 사고, 바른 행동을 추구하게 하고, 물질적 욕구를 넘어 내적 충족에서 행복을 찾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부탄 법전에는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필요 없다’고 명시되어 있어 정부는 모든 정책을 국민 행복에 맞춰 시행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토지 등의 국유 재산을 나누어 주기 때문에 부탄에는 거지가 없습니다.
‘국민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정부는 필요 없다’
사람들에게 부탄 얘기를 하면 이렇게 되묻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부탄 사는 게 행복하냐, 우리나라에 사는 게 행복하냐?” 물질적인 면에서는 우리나라가 부탄보다 훨씬 풍요롭지만, 과연 우리나라 국민이 그만큼 더 행복할까 하는 점에 대해 저는 의문이 있습니다.
부탄에 인터넷이 들어온 이후 행복 지수가 뚝 떨어졌다는 이야기들도 많이 합니다. 옛날에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다가 이제 남들 잘 사는 걸 알고서 불행해진 것 아니냐 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탄에 인터넷이 들어간 지 20년이 넘었고, 90년대에 벌써 방송 채널이 50개쯤 됐습니다. 부탄 사람들도 나라 밖의 세상을 다 알고 있습니다. 부탄 사람들도 좋은 휴대폰을 가진 사람을 보면 부러워합니다.
그러면 그런 모습을 본 사람이 “아니, 행복한 사람들이 왜 이런 걸 부러워하지?” 이렇게 얘기합니다. 좋은 휴대폰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그걸 가지고 있지 않아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죠.
UN 행복보고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1인당 GDP(국내총생산)입니다. 그런데 부탄은 GDP가 낮은 나라죠. 기대수명도 평균 73세 정도밖에 안 됩니다. 50여 년 전에는 40살 정도였으니 의료와 생활 수준이 많이 나아졌다는 얘기죠. 5년 주기로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조사하면 행복 지수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부탄에서는 행복을 얘기할 때 4개 분야(지속가능하고 공평한 사회경제적 발전, 환경 보전, 문화의 보전과 발전, 좋은 정부)와 9개 영역(교육, 건강, 생태 다양성 및 복원력, 공동체 활력, 문화 다양성 및 복원력, 생활 수준, 시간 사용, 심리적 웰빙, 좋은 민주주의)을 기준으로 삼는데, 이는 다른 나라에도 모두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탄은 여전히 가난한 나라이나, 경제가 성장한다고 국민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실 행복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행복의 정도를 객관적으로 측정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에서는 개인의 주관적인 만족도를 측정하기 위해 ‘현재의 삶에 얼마나 만족하는가’를 묻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자유가 있다고 느낍니까?’, ‘건강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의지할 사람이 있습니까?’ 같은 질문도 포함합니다.
우리나라의 행복 지수를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있는 자료가 두 개 있습니다. 그 하나인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순위는 2013년 41위에서 2023년 57위로 떨어졌고, OECD 더 나은 삶 지수는 2011년 24위에서 2022년에 32위로 하락했습니다.
세계행복보고서를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8위로 143개국 중 상위 그룹에 속하죠. 그런데 삶의 만족도가 매우 낮고 사회적인 지원, 삶을 선택할 자유, 부패 인식 등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빚어진 것은 결국 극심한 경쟁 속에서 각자도생의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동체 정신이 약화하고,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획일적 사회가 됐습니다. 공부 잘하면 모두 법대나 의대에 가려고 하는 것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죠.
성장주의에서 국민총행복으로
경제 성장을 하면서 오히려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 심해졌습니다.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한 자산의 비중을 보면 2022년도에 24퍼센트입니다. 반면에 하위 50퍼센트의 비중은 5.6퍼센트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별·학력별·계층별 격차도 매우 심합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성평등을 측정하는 유리천장 지수가 10년째 꼴찌입니다. 학력별로 보면, 고졸 임금은 대졸의 63퍼센트 수준이고,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은 대기업의 절반 수준입니다.
세대 갈등도 심각하고,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빈곤의 되물림 현상입니다. 자기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지 못하니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가정을 이룰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죠.
우리 상황은 이런데,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어느 나라가 행복할까요? 따져보기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자료를 보면 핀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노르딕 국가가 행복 수준이 높습니다.
특히 핀란드가 최근 6년 연속 1등을 차지해서 주목을 받고 있죠. 핀란드 사람이 왜 행복한지 그 이유를 살펴보면, 우선 교육이나 의료 같은 사회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습니다. 그런 강력한 복지 시스템이 기본적인 생활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죠.
그다음, 소득 격차가 적고 남녀 간 또는 소수자들을 포함해 대단히 평등한 사회입니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시민 간의 사회적 신뢰도 높습니다. 특히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내적 만족과 소박함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를 ‘시수sisu’라고 하는데 극기심, 용기, 회복탄력성, 강인함을 포함한 국민적 기질을 표현한 개념입니다. 이 같은 문화를 바탕으로 한 여러 가지 조건이 세계행복보고서 조사 항목에 부합한 덕분에 높은 점수가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급속히 확대된 것은 IMF 이후입니다. IMF 이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1인당 소득이 4배나 늘어났습니다. 그럼 잘살게 된 만큼 더 행복해졌는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더 행복해지려면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경제 성장에서 국민총행복으로 바꿔야 합니다. 박정희 시대부터 이어온 성장 신화에서 이제는 깨어나야 합니다. 고도성장의 단맛을 본 세대가 지금 우리 사회 지도층이 되어 여전히 성장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 선진국들의 성장률은 대부분 1~2퍼센트 수준입니다. 마이너스 성장도 많고요. 이제 경제 성장을 통해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틀린 말이고, 앞으로는 경제 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같은 인식 전환을 위해 경제는 행복을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성장주의에서 국민총행복으로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이란 인간답게 잘 지내는 것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그리츠 교수는 “GDP를 가장 중요한 지표로 간주하고 성공의 척도로 인식해서 경제가 성장하면 무조건 좋은 일로 받아들이고, 경제가 위축되면 사회 전반에 불안과 공포가 확산된다”며 이런 현상을 GDP 페티시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GDP를 맹목적으로 숭배한다고 하는 것이죠.
GDP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 해도, 심지어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라 해도 시장에서 거래가 된다면 이를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오염 될수록, 무기를 많이 생산할수록 GDP가 올라갑니다.
가사 노동과 돌봄 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음에도 이는 GDP에 포함되지 않아요. 실제로 우리 삶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중 시장에서 거래되는 건 빙산의 일각이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빙산의 일각을 가지고 우리가 행복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겠죠.
미국의 정치가 로버트 케네디는 “GNP(국민총생산)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우리가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을 제외하고 말해줄 뿐이다”라고 연설한 적이 있습니다. 굉장히 과격한 말이죠. 이 말에 따르면, GNP가 올라갈수록 우리는 불행해지는 겁니다.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는 “한 사회 내에서 부유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보다 행복한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 사회가 부유해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교육, 환경, 건강, 문화, 여가, 사회적 관계, 심리적 웰빙, 좋은 민주주의 같은 다양한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내 이웃이 불행한 데 나 혼자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은 더불어 사는 삶 속에서 작동합니다. 더불어 행복하려면 사회의 약한 고리인 약자들의 삶을 보호해야 합니다. 국민이 소외된 경제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물질 추구만으로는 행복할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서 ‘국민총행복전환포럼’이란 걸 만들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을 경제 성장 지상주의에서 국민총행복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매월 정기 포럼을 하고, 분기마다 심포지움을 엽니다.
국민 행복 증진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중앙정부보다 지방정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지방정부 모임도 만들었습니다. 모임을 통해 주민 맞춤형 정책을 마련하고, 행복 지표를 개발해 행복도 조사를 시행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이자 최고의 선이라고 했습니다. 행복은 단순한 쾌락이나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고, 덕 있는 삶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완전한 인간다움의 실현을 의미한다는 것이죠. 저는 이를 ‘인간답게 사는 게 행복이다’라고 해석합니다.
행복이라는 건 잘 지내는 것, 웰빙입니다. 잘 지내기 위해서는 우선 물질적인 혹은 사회적 지위라는 욕심을 가능한 한 버리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몰입한다면 더욱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_《브레인》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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