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재앙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지구 바꿀 수 있다

기후변화를 재앙으로 인식할 때 비로소 지구 바꿀 수 있다

웹툰 노루 '안성호 작가와 함께하는 책거리 토크


▲ 웹툰 '노루' 안성호 작가

"제가 웹툰 노루를 그리기 위해 기후변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느낀 것은 지구의 시간이 굉장히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사람들이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고 해도 이미 배출된 탄소량만으로도 기후변화가 안 좋은 쪽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지금은 기후변화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의미이다. 이미 우리는 환경문제에 관한 예방의 단계를 넘어선 것이다."

웹툰 노루 '안성호 작가와 함께하는 책거리 토크'가 지난 달 28일 오후 6시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회는 '웹툰'이라는 독특한 장르와 '기후변화'라는 특정한 주제가 접목된 것으로, 웹툰이라는 인기 예술분야를 통해 환경문제라는 사회적 이슈를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자 마련됐다.


▲ '안성호 작가와 함께하는 책거리 토크'가 28일 주한영국문화원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김영주 프로젝트 매니저, 질문 김지석 기후변화 담당관, 안성호 작가.

웹툰 노루는 지난해 3월부터 8월까지 미디어다음에 인기리에 연재된 작품이다. 기후변화로 모래에 파묻혀버린 지구의 모습을 영상에 담기 위해 200광년을 건너온 외계인이 지구인에게 최소한의 식량과 물을 나눠주며 살아가는 노루라는 청년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의 절박한 모습을 통해 기후변화가 일으킨 물 부족, 자원 고갈, 수질 오염, 삶의 질 하락 등 다양한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냈다.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을 작가 특유의 담담한 분위기로 풀어내 호평을 받았다.

이날 강연회는 주한영국문화원 블로그를 통해 받은 사전 질문, 강연회에 참석한 청중의 즉석 질문 등 질의응답 형식으로 치러졌다. 영국문화원 김영주 프로젝트 매니저의 사회와 김지석 기후변화 담당관의 질문 및 맞토크로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 노루 작품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기후변화라는 주제가 어렵거나 낯설지는 않았나.

전작으로 숲에 관한 웹툰 키스우드(Kiss Wood)와 환경 학습만화를 만들었다. 마땅히 준비 중인 작품이 없어 차기작으로 어떤 것을 할까 고민하던 중 환경 관련 작품 '노루' 제의가 들어왔다. 환경에 관한 만화를 그린 적이 있기에 한 번 더 해보는 것도 의미 있겠다 싶어 하게 됐다.

특히 환경운동가에 관한 한 권짜리 학습만화를 그리면서 그분들이 평생을 바쳐 환경운동을 하는 것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어려운 것은 없었던 것 같다.

- 웹툰 만들 때 스토리 작업은 어떻게 하나.

제일 좋은 것은 다 짜놓고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완벽하게 짜놓는다는 건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한 번 짜보고 서너 번 정도 퇴고해본 후 연재에 들어갔을 때 처음부터 완결까지 바뀌지 않고 연재될 수 있을 정도이다. 적어도 초고 정도는 짜놓고 들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노루 같은 경우는 준비기간이 굉장히 짧았다. 작품 제안받고서 연재에 들어가기까지 두 달 정도의 시간밖에 없었는데, 그 시간에 책 보고 자료 찾고 캐릭터 만드느라 사실 초고도 못 짜고 시작했다.

- 전작 키스우드는 굉장히 극적인 느낌인데, 노루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그렸다. 그래서인지 훨씬 더 묵직하게 마음에 남는다.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떠나서 제가 좀 변한 것 같다. 옛날에는 독자에게 연출로서 단발적인 감동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보는 순간에는 감동적인데 과연 기억에 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최대한 담백하게 그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얄팍한 감동만을 주려 하지 말고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보자는 게 컨셉이었다.


▲ 노루가 지구인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는 장면. [자료제공=주한영국문화원]

- 이야기 초반 노루와 후반 노루의 캐릭터가 다르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식량을 나눠주다가 후에는 식량을 지키기 위해 사람에게 돌을 던지고 사람을 죽인다.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하지는 않겠지만, 많은 분이 노루와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일관성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이 일관성을 잃어버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외계인이 냉혹하리만큼 노루를 끝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특별히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는가.

이야기를 위한 극적 장치 같은 거였다. 처음에 외계인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다. 다큐멘터리 찍을 때 제작자는 현장 상황에 개입하지 않는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무엇인가를 찍는다면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것을 담기 위해서 온 것일 텐데, 노루와 사람들을 도와줬다면 이야기가 안 되지 않았을까.

- 캐릭터를 만들 때 친구 같은 주변인물을 대상을 잡기도 하는데, 노루 캐릭터는 특별한 대상이 있었나.

캐릭터를 창조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한다. 노루 준비기간이 짧아서 노루를 어떻게 행동하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어떤 말을 했을까?' 나의 입장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보통 작가분들은 캐릭터를 만들고 본의 아니게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는데, 저는 노골적으로 제 모습을 투영시킨 것 같다.

- 델타행성(외계인이 사는 행성)은 뛰어난 문명을 가진 행성인데, 기후변화를 알리기 위해 지구까지 와서 굳이 사진과 영상을 찍을 할 필요가 있나.

지구도 델타처럼 굉장히 문명이 발달한 행성이다. 기후변화를 해결하는데 충분한 과학적 지식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델타인뿐 아니라 지구인도 기후변화를 재앙으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문명 안에 살고 있다 해도 사람들이 기후변화를 문제로 인식하지 않으면 지구환경을 바꾸기 힘든 것이 아닌가. 독자분이 볼 때 '델타 사람들이 우리구나' 라고 느끼게 하려는 의도였다.

- 노루 작품을 끝낸 후 소감은.

노루는 기후변화에 관한 홍보만화이다. 저도 노루를 그리면서 환경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다. 제 만화를 보고 환경에 관심 없던 많은 분이 환경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 다음 작품으로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가.

현재 작품 두 개를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모바일 쪽에서 제의 받은 3편짜리 짧은 만화이다. 또 하나는 올해 포탈연재를 목표로 하는 50편 분량의 만화이다. 영향력 있는 한 사람의 창작자 때문에 사회가 얼마나 안 좋게 변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다. 포털사이트는 아직 미정이다.


▲ 주한영국문화원에 전시된 원화와 베스트 이미지 작품.

책거리 토크 후에는 김지석 담당관의 환경문제 영상브리핑, 작가와의 사진 촬영 및 사인회가 열렸다. 당시 주한영국문화원에서는 '웹툰 노루 작품 전시회'가 2월 15일부터 3월 3일까지 열렸다. 안성호 작가가 직접 선정한 베스트 이미지 22컷과 원화 32점, 콘티 9장이 전시되었다.

웹툰 '노루'는 영국 외무성의 지원을 받아 영문판으로 출간되었으며, 인도네시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싱가포르 영국대사관에서도 기후변화 홍보에 활용키로 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IEA(국제에너지기구), 한국 EU 대표부 브뤼셀 본부에서도 '노루'를 기후변화 홍보 및 교육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 웹툰 '노루' 전편 웹툰 페이지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roedeer)

글. 이효선 기자 sunnim03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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