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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은 아침저녁으로 선릉·정릉을 둘러싼 담장을 지난다. ‘이제 봄이구나’, ‘단풍이 들었네’, ‘선릉이 그렇게 좋다던데’ 라며 매번 담장 안쪽을 궁금해하기만 했을 뿐, 제대로 둘러본 적은 없었다. 이번 김양의 가을 산책을 기회로 드디어 조선의 왕릉, 선릉과 정릉을 제대로 둘러보고 왔다.

▲ 노란색 은행잎이 잔뜩 떨어져 있는 선릉 초입
선릉으로 취재 간 날은 지난 16일 금요일, 일기예보에서는 이날 오후부터 주말까지 비가 온다 하였다. 혹시나 가을 단풍 다 떨어질까 싶어 서둘러 길을 나서야 했다. 그리고 비 오기 전에 최대한 돌아보아야 해서 종일 부지런히도 걸었다. 비는 저녁 무렵, 5시쯤부터 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쨍한 느낌은 아니지만 가을 단풍 특유의 색감은 담아올 수 있었다.

▲ ‘조선왕릉’ 선릉·정릉의 입구.
선릉과 정릉은 조선 제9대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이 있는 선릉과 제11대 중종의 정릉이 함께 있다. 세계유네스코에도 등재된 선릉·정릉은 ‘공원’이 아닌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경내에는 쓰레기통이 없고 가지고 간 쓰레기는 다시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 외에도 배드민턴 같은 놀이나 체육 활동 등이나 취사, 흡연, 음주, 사행성 행위, 고성방가나 악기연주, 애완동물 출입 등이 금지된다.

▲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어머니의 모습. 아주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때 겪은 일은 훗날 정서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 이날 어머니와 함께 한 산책은 아이의 기억에는 남지 않을수도 있지만, 성격 형성에 한몫할 것이다.
선릉·정릉은 말 그대로 조선 시대 왕의 ‘무덤’이지만 유해는 없는 상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이 도굴하면서 훼손되었기 때문. 특히 정릉은 임진왜란 후, 광중(壙中)에 옷이 없는 시신이 남아 있었지만, 왕의 유해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기도 했다.

▲ 동네에서 사간 맥 머핀. 날씨가 추워 금세 식었다.

▲ 해를 가리던 구름이 잠깐 비켜나갔을 때, 햇빛 가득한 선릉 경내.
어쨌거나, 선릉에 들어서니 날이 꽤 춥다. 남산에 갔을 때의 실패(관련 기사: 남산에서 케이블카 타고 내려와 돈까스 먹기)를 참고해 이날은 동네에서 미리 아침 겸 간식으로 맥 머핀을 사서 갔다. 만약 도시락을 준비할 생각이라면 선릉역 인근에도 분식점이 있다. 하지만 쓰레기를 챙겨 올 비닐봉지 등도 꼭 챙겨가야 한다. 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선릉은 공원이 아닌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경내에 쓰레기통이 없다.

▲ 혼자 가만히 가을 단풍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한 남자의 뒷모습
선릉을 돌아보며 느낀 점은 점심시간 전후로 유난히 직장인이 많다는 점이다. 특히 남자들이 많았다. 가을이라 그런지 혼자서 자리에 앉아 생각에 빠진 사람도 몇 보였다.
가을에는 일조량이 줄기 시작하면서 비타민D 합성이 줄어들고 멜라토닌 분비는 오히려 늘어난다. 세로토닌과 엔도르핀 분비량도 적어지므로 기분이 가라앉기 쉽다. 특히 남자는 고환에서 남성호르몬 분비 조절 역할을 하는 비타민D가 저하되면서 남성 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분비도 덩달아 줄어든다. 그래서 ‘남성적’인 면모가 줄어들면서 가을에는 외로움과 쓸쓸함, 우울함에 사무치는 ‘가을 남자’가 많아진다.

▲ 도심 속에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나무로 꽉 찬 선릉·정릉
가을 남자들을 지나쳐 잠시 의자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멍하니 경내 풍경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기 직전 날씨가 잔뜩 흐린 금요일 낮. 알록달록한 나무를 보니 역시 가을이니, 가을이어서, 가을이구나! 싶었다.
(계속)
글, 사진. 김효정 기자 manacula@brain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