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 삶은 요리

삶은 계란, 삶은 요리

뇌야 놀자

브레인 12호
2010년 12월 22일 (수)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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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엇일까?’ 진지한 물음을 안고 오른 기차 안에서 ‘삶은 계란’이라는 짧고도 명확한 답을 얻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삶은 계란은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계란을 통째로 익히는 아주 간단한 요리다. 초간단 요리인 삶은 계란을 포함하여, 요리는 인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요리하는 행위는 인간이 진화하게 된 원동력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또한 오감을 총체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두뇌 발달에 좋은 행위다. 인간의 삶을 요리로 짚어본다면 ‘삶은 계란’이라는 정의가 싱거운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요리하는 당신의 뇌를 점검하라

세상에는 살기 위해 먹는 사람이 있고,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 있다. 한편, 먹고 살기 위해 요리하는 사람이 있고, 단지 먹기 위해 요리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먹어야 하는 인간의 숙명은 이렇게 음식과 요리에 대한 여러 단상을 낳았다. 하지만 먹고 살기 위해서든, 먹기 위해서든 우리 뇌에게 요리란 즐거움 그 자체다. 요리하는 뇌에서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기에 뇌는 그렇게 즐거운 걸까?

요리는 감각을 관장하는 뇌의 모든 부분을 자극한다. 제일 먼저 요리에 들어갈 재료를 다듬으면서 촉각이 발휘된다. 또한 재료를 손질하며 냄새, 색깔 등으로 재료의 상태도 확인한다. 다듬어진 재료들이 하나의 그릇에 담기고 조리가 시작된다. 각각 고유한 향기를 자랑했던 재료는 조리를 통해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 요리만의 독특한 향기를 풍긴다. 간을 보고, 보글보글 익는 소리와 맛으로 재료가 익었는지 확인한다. 조리한 음식은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은 떡’이 되도록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담는다. 이렇게 오감을 총동원해 만든 요리는 오감을 음미하며 먹는 마지막 관문을 통과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오감을 자극하는 맛있는 요리를 먹을 때, 우리 뇌는 쾌감 중추가 자극되면서 만족과 쾌감을 느낀다.

요리는 오감을 통해 뇌를 자극하는 것 외에, 다양한 조리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주의 집중력도 향상시킨다. 손을 많이 쓰고, 섬세하게 사용하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손은 뇌의 많은 부위와 연결되어 있다. 요리 도구와 음식 재료를 다루는 복잡하고 정교한 손놀림은 대뇌를 골고루 자극하는 효과가 있다. 게다가 요리를 하려면 논리적 사고도 필요하다. 조리의 순서를 기억하고 다음에 할 일을 미리 생각하면서 요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뇌에게 요리는 올림픽이라 할 정도로 뇌의 총체적인 영역이 사용된다.

요리, 인간의 삶을 요리하다


요리를 못하는 사람 또는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요리를 잘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우리의 조상은 불을 피우는 방법을 터득하고 그것을 이용해 음식을 만든 영장류 최초의 요리사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경계선의 하나인 요리는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이기도 하다.

요리와 인류 진화의 관계에 대해서는 학계의 다양한 가설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밀튼Milton에 따르면 요리는 진화 역사상 아주 최근에 일어난 변화로, 진화론적 관점에서 너무 급격히 일어난 일이라 인간이 변화에 적응할 만한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는 요리가 치아의 크기를 축소시킨 것 이외에는 인류 진화에 아주 미미한 영향만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불을 사용해왔다. 과연 그동안 어떤 요리도 하지 않았을까? 또한 요리로 인해 음식의 질에 변화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인간의 진화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이러한 의문들은 위의 주장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가설임을 보여준다. 

요리와 진화의 상반된 주장들 속에서도 모두가 동의하는 한 가지는 요리가 음식의 질을 높여준다는 점이다. 요리는 조리 과정을 통해 음식의 독소를 제거하고 분자 구조에 변화를 일으켜, 씹어 먹기 좋고 맛있고 안전하게 소화되도록 한다. 그중 독소를 없애는 요리는 인간이 식물의 방어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방법이다.

한 예로, 아메리카의 원주민은 카사바라는 식물의 뿌리를 먹는데, 카사바는 시안화물(cyanide)이라는 독성물질을 분비하여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식물이다. 요리를 통해 카사바의 시안화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터득한 원주민은 카사바를 독차지하고 풍부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다. 또한 요리는 소화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해준다.

뱀은 에너지 섭취량의 43%를 소화에 소비한다. 그에 비해 인간은 전체 에너지 소비량 중 5~15%만 소화에 사용한다. 요리 과정을 거치면서 부드럽고 연해진 고기와 채소가 소화 흡수율을 높여주고 소화 과정을 촉진시킨 결과다.

영재가 된 인류, 비밀은 ‘식객’에 있었다

음식의 질에 따르는 작은 변화는 진화생물학적 측면에 있어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되새류의 경우, 짧은 기간이라도 먹이에 변화를 일으키는 생태적 압력을 받으면 부리가 커지거나 작아지는 급격한 진화가 나타난다고 한다. 인류학자들은 요리 또한 인류의 진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최근에는 사람의 인지 능력이 급격하게 발달한 시점이 조리된 음식을 먹기 시작한 15만 년 전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 있는 파트너 컴퓨터생물학연구소의 연구진은 게놈 바이올로지 최신호에 실린 연구 보고서에서 인간의 두뇌가 오늘날과 같은 수준으로 발달하기까지 두 차례의 폭발적 성장이 있었다고 밝혔다. 약 2백만 년 전의 첫 번째 성장에서 인간의 두뇌는 다른 영장류에 비해 두 배로 커졌지만 인지 능력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5만 년 전, 인지 능력에 매우 큰 향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똑똑해진 머리로 인류는 바늘과 같은 여러 도구를 발명하고, 추상적 사고가 담긴 예술 작품도 발표하고 나름의 종교까지도 만들게 되었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열량 섭취가 증가하면서 나타났다고 한다. 그 열량의 증가는 더 많은 음식을 먹어서가 아니라, 약 20만 년 전에 등장한 화덕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한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에게 요리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음식의 부위를 늘려주고, 소화에 쓰는 에너지를 줄여주었다. 요리를 이용하기 전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가 몸에 남아돌게 되자 잉여 에너지는 모두 뇌로 가게 되었다. 그러자 이미 엄마 뱃속에서 나오기조차 버겁게 커진 뇌는 내부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데 그 열량을 사용하게 됐을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비교적 작은 소화기를 가지고 있으며 열량의 20~25%를 두뇌 활동에 사용한다. 그에 반해, 다른 척추동물은 섭취 열량의 2%만을 두뇌에서 소비한다.

요리의 기다리는 아픔이 만들어낸 사회관계

요리로 인한 음식의 질적 향상은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와 범위를 확장시키고, 새로운 구역으로의 진출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식량이 부족한 시기에도 식량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요리로 인한 커다란 변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음식의 분배가 그 시작점이다.

요리를 하기 전의 인간은 변화되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면서 먹이를 먹는 것이 쉬웠다. 그러나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화덕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먹을거리를 모아놓았다. 따라서 요리를 하는 동안 화덕 주변에 모여 음식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새로운 상황이 발생했다.

만약 그 상황에 대해 ‘모두들 요리가 다 될 때까지 행복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했다면 세상을 너무 쉽게 본 게다. 음식을 모아둔다는 것은 집단 내 구성원들이 먹이를 뺏고 뺏기는 경쟁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공격과 속임수가 등장하는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음식의 분배나 지배 구조 같은 사회적 관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요리를 둘러싼 암투를 그린 드라마 <대장금> 또한 음식이 익기를 기다려야 했다 인류의 오랜 역사가 있었기에 탄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마음과 뇌를 흐뭇하게 하는 요리의 즐거움을 모른다면 인생의 큰 즐거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거창한 요리로 시작도 하기 전에 겁을 먹거나 미각을 잃지는 말자. 모두가 요리사가 될 필요는 없다. 내가 즐기는 요리를 나도 즐기면 된다. 삶은 계란에서 계란찜으로, 그리고 계란말이로 이어지는 새로운 요리로도 뇌는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왜냐고? 삶은 계란이니까!

Tip_ 엄마와 함께 하는 요리, 아이 뇌도 즐겁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요리를 하는 경우 자녀의 뇌 기능이 향상될 뿐 아니라, 부모의 두뇌도 단련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본의 오사카 가스는 토호쿠 대학 의학연구소와 공동 연구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요리 강습에 참가하고, 가정에서 주 3회 정도 요리를 하게 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 전과 후에 추측 능력, 공간 조작력, 도형 인지력 등 여덟 가지의 뇌 기능 테스트를 실시하여 비교한 결과, 실험 후가 실험 전보다 자녀는 네 가지, 부모는 두 가지의 테스트에서 점수가 향상되었다.

또한 근적외선 뇌 영상 장치를 이용하여 요리를 하고 있는 부모와 자녀의 뇌활동을 측정했더니, 부모와 자녀 모두 뇌가 활발하게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되었다. 대화를 하거나 혼자 요리를 하는 경우와 다르게, 서로 음식을 만들면서 나누는 교감이 부모와 자녀 모두의 뇌 기능을 활성화한다고 한다.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
도움 받은 책 《무엇이 우리를 인간이게 하는가》(찰스 파스테르나크, 말·글빛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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