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금이의 맛을 그려내는 능력의 비밀

장금이의 맛을 그려내는 능력의 비밀

TV 속 과학 이야기

뇌2003년12월호
2010년 12월 24일 (금)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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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분과 성의 굴레를 넘어 궁중 최고 요리사로, 또 왕의 주치의로 성공한 조선조 중종 때의 실존 인물 서장금의 일대기를 그린 MBC 사극 〈대장금〉이 인기다.

방송 두 달도 채 안 돼 시청률 50% 대를 돌파한 것은 물론 서점가에는 동명 소설과 만화, 동화까지 출시되었고, 때  아닌 궁중 요리가 각광을 받을 정도다.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어떤 역경에서도 당차게 삶을 개척해 나가는 억척녀 장금이의 모습에서 위안과 활력소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의 드라마 속 에피소드 하나. 임금님이 애지중지하는 원자가 오리백숙을 먹고 사지가 마비돼 쓰러진다. 아무도 원인을 알지 못하자 호기심과 모험심 충천한 장금, 한약재가 과도하게 들어간 음식을 먹고 드디어 병의 원인을 찾아내지만 아뿔싸, 혀의 미세한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미각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감각. 더구나 수랏간 최고 상궁을 뽑는 경합을 치루기 위해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상황. 실의에 빠진 장금에게 한 상궁은 ‘너에게는 맛을 그려내는 능력이 있다’고 격려한다. 맛을 그려내는 능력이라.

한 상궁은 음식의 맛을 보지 않고도 식재료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알아내는 천부적인 재능이 장금에게 있다고 믿고 그것을 일깨우기 위해 스스로를 믿으라고 조언한 것이다. 결국 장금은 한번도 맛보지 못한 고래 고기를 이용해 최고의 산적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는데.

베토벤은 청력을 잃고도 전원교향곡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지만, 과연 맛을 보지 않고도 제대로 된 음식 맛을 낼 수 있을까.

악보를 보고 있는 음악가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하면 머리 속으로 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뇌의 청각 중추에 해당하는 부위가 반응한다. 따라서 베토벤의 경우 평생 작곡을 해왔던 기억을 떠올려 음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불후의 명작을 남기는 것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맛을 그려내는 장금이의 첫번째 무기는 바로 뇌의 ‘기억’에 있는 것이다.

드라마의 요리 감수를 맡고 있는 궁중음식연구원 한복려 원장은 “오랫동안 음식을 해온 사람들은 양념의 양이나 조리 방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간을 보지 않고도 음식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손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 음식을 하면 제대로 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어머니 손맛의 비밀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장금이가 만든 요리는 이전에 한 번도 맛보지 못한 고래 고기를 이용한 음식이 아니던가. 기억과 경험에 의존한다 하더라도 맛을 알지 못하는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텐데. 처음 하는 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 그들의 재능의 절반은 자신을 능력을 믿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어찌되었건 최근에는 사람의 혀를 대신해 포도주 맛을 감별하는 전자혀가 개발되기에 이르렀고, 미국 농학연구청에서는 먹어보지 않고도 맛있는 사과를 골라내는 카메라를 개발했다고 하니, 장금이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굳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까지 벌침을 맞지 않아도(실제로 한의사들은 벌침을 이용해 마비된 혀를 푸는 과정이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한다) 당대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데 장애는 없었으렷다.


글│전채연 missing010@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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