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에서 지아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와 연구원들은 짧은꼬리 원숭이의 뇌에 직접 전극을 꽂고 운동과 관련된 뇌기능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들은 음식을 집는 것 같은 여러 동작마다 각각의 뉴런에서 일어나는 활동을 기록하며 하나의 동작에 대응하는 하나의 뉴런을 찾아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다른 원숭이나 사람이 동작하는 것을 보기만 해도 해당 동작 뉴런이 반응했다. 다른 사람의 동작을 거울에 비추듯, 마치 자신이 하는 것처럼 뇌세포가 반응한다는 이 사실이 1997년에 알려진 이후, 난리법석이라고 할 만큼 미러 뉴런에 대한 온갖 연구들과 추측들이 발표되었다.
인간의 미러 뉴런 시스템
머릿속에 상대방의 동작을 비추는 가상의 거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왜 이토록 중요할까? 다른 동물들과 비교해서도, 가까운 영장류들과 비교해서도 확연히 다른 학습 능력을 포함한 인간 고유 능력들의 기본적인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미러 뉴런은 우리의 뇌가 직접 실행을 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의 동작을 재현하는 전문적인 회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뇌는 컴퓨터와 달리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인간이 어떤 생각과 동작을 할 수 있으려면 그에 맞는 뇌의 구조가 필요하고 그 구조가 바로 하드웨어이자 소프트웨어가 된다.
최초의 발견 이후 원숭이처럼 두뇌에 직접 전극을 꽂아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에게도 이와 비슷한 두뇌의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 뇌영상과 뇌파연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대뇌의 다른 부분과 함께 협력해서, 단지 보는 것만으로 다른 사람의 동작을 머릿속에서 재현하고 의도를 추측해내는 인간의 이러한 회로를 미러 뉴런 시스템Mirror Neuron System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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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
미러 뉴런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까? 아기를 보고 웃으면 아기도 따라 웃는다. 다른 사람이 하품할 때면 옆 사람도 곧 따라 한다. 비보이와 스포츠를 보며 열광하고, 이영표가 헛다리를 짚으며 드리블하는 모습을 보고 그 동작을 흉내낸다.
이 모든 것은 미러 뉴런이 없었다면 일어날 수 없다. 우리에겐 당연한 듯 보이는 일상의 작은 학습들을 다른 동물들은 할 수 없고 영장류들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가 많다. ‘학습의 동물’ 인간은 최고급 사양의 미러 뉴런이란 부품 덕분에 지구상에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말을 하는 것도 인간만의 발성기관과 뇌구조가 없다면 불가능한 동작이다. 미러 뉴런이 없다면 아기가 우리의 입술 모양과 소리를 따라 말을 익힐 수 없다.
미러 뉴런의 또 다른 기능은 다른 사람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 한 동작을 보면 대충 다음에 어떤 동작이 이어질지 알 수 있다. 더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사소한 동작과 표정, 소리를 듣고도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파악할 수 있다. 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다고 불평하면서도 우리는 타고난 독심술가다. 이런 역할에 미러 뉴런이 깊숙하게 개입해 있다. 만약 미러 뉴런이 없었다면 인간이 지금과 같은 사회와 문화를 만드는 것이 가능했을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미러 뉴런 덕분이다. 동물들처럼 단순히 생존을 위해 무리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계들을 맺을 수 있는 바탕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 연인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힘든 사람을 보면 그 처지가 이해되고 도와주고 싶다. 공포영화에서 쫓기는 사람을 보면 마치 내가 도망가고 있는 듯 느껴진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것, 공감이야말로 우주가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물이자 미러 뉴런의 신비한 기능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여성은 남성에 비해 미러 뉴런 시스템에서 강한 활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이다. 남성보다 발달한 언어기능과 함께 여성의 미러 뉴런 시스템은 섬세한 감정표현과 공감을 가능하게 한다.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할 드라마 중독도 알고 보면 여성의 이러한 능력에서 기인한다. 목석 같은 남자와 자폐증 역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기능을 하는 미러 뉴런 시스템의 차이와 결함 때문이라는 연구도 나오고 있다.
인류 진화의 신비를 열다
영국 BBC 방송 초청 강연으로 이름난 뇌과학자 라마찬드란 박사는 미러 뉴런의 발견을 두고 ‘DNA 이후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했다. 인간은 250만 년 전부터 지금의 두뇌용량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 즉 뛰어난 도구와 언어와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은 고작 4만 년 전이라고 추측된다. 인류 진화에서 일어난 위대한 도약, 인류의 빅뱅의 비밀이 인간만의 미러 뉴런 시스템에 숨겨져 있다고 그는 말했다.
아직은 미러 뉴런의 여러 기능들이 추측과 가설에 지나지 않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인류 진화와 뇌의 신비 역시 함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이영실 miso@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