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왜 스스로 복제하지않고 섹스를 만들었을까

자연은 왜 스스로 복제하지않고 섹스를 만들었을까

김종성 울산의대 서울 아산병원 신경과교수

뇌2003년2-3월호
2010년 12월 23일 (목)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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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다니는 한 중년 남자는 직장 일이 너무 바빠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매일 같이 아침부터 저녁 늦게 까지 일을 해야 한다. 게다가 중요한 회식도 잦다. 이럴 때는 집안에 남아 청소, 빨래를 하고 아이도 봐 주는 아내가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아내는 자기도 바깥에 나가 일을 해야겠다고 한다. 이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난감해진 그는 때마침 알게 된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복제하는데 성공한다. 이제 자신이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복제 인간은 집에서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 것이다”마이클 키튼이 주연한 영화 <멀티플리시티>에 나오는 이야기다.


 


인간복제,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


지난 1월, 복제인간이 탄생했다고 야단들이었다. 사건의 주인공은 미국의 다국적 종교집단 라엘리언, 그리고 이의 자회사 ‘클로네이드’였다. 아직 태어난 아이의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아 이것이 정말 복제 아이인지 혹은 종교집단의 선전용 허구인지는 확실히 밝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복제 인간이 태어났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체세포를 이용해 복제를 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선 핵을 제거한 난자에 성인의 체세포를 집어 넣고 전기 자극을 가하여 이 둘을 융합시킨다. 그리고 이 세포를 대리모의 자궁에 착상 시켜 임신하면 되는 것이다.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지만 여러 번 시도를 해 보면 못할 것도 없는 기술이다. 1996년 스코틀랜드의 로슬린 연구소에서는 이런 식으로 유방세포를 이용해 복제양 돌리를 최초로 만들었다. 그리고 1998년 일본에서 복제 소, 미국에서 복제 쥐가 태어났다.

1999년에는 복제 염소가, 2000년에는 복제 돼지가, 그리고 2002년에는 복제 고양이와 토끼가 각각 태어났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복제 젖소, 2002년 복제 돼지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이제 복제 인간이 나와도 별로 놀랄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복제인간이 내 아내와 함께 누워있다면…


그런데 클로네이드 회사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궁극적으로 뇌 복제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 즉 똑같은 인간을 여럿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만일 복제인간의 뇌가 그 유전자를 공여한 자의 것과 동일하다면 어떻게 될까? 서두에 말한 영화를 다시 생각해 보자. 영화 속에서 복제된 인간은 자신이 진짜 마이클 키튼이라고 주장한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과학자는 오리지널 마이클 키튼의 몸에 표시를 해 두었지만 복제 인간의 정체성 혼돈은 계속된다. 게다가 뇌가 동일한 복제인간은 마이클 키튼과 똑같이 아내를 사랑한다. 복제인간이 아내와 함께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들 간의 갈등은 시작된다. 아마도 복사기를 사용해 책을 복사하듯 인간을 복사할 수 있다면 이런 일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이야기다.


클로네이드 회사가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기술로 똑 같은 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복제된 인간은 물론 그 유전자의 주인과 똑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하지만 그 모습은 조금 다르다. 그리고 그들의 뇌는 더욱 다르다. 이것은 일란성 쌍둥이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된다.

복제인간은 말하자면 그 유전자의 주인과 일란성 쌍둥이의 관계이다. 어른이 갓난 아기를 보고 형제라 생각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정확한 쌍둥이 형제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유전자는 동일하지만 그들의 성격이나 지능이 같은 것은 아니다. 뇌의 발달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라나면서 세상을 경험하는 동안 뇌의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해가면서 새로운 네트워크를 생성해 간다. 이로써 우리들의 성격이 형성되어 간다. 즉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뇌인 것이다.


결국 클로네이드 회사가 아무리 복제를 잘 해도 두개골 속에 있는 뇌의 기능조차 똑같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복제인간은 일란성 쌍둥이 보다도 닮지 않았다.

일란성 쌍둥이 경우와는 달리 복제인간과 그 유전자의 공여자는 자궁 내 환경이 각각 다른 상태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자궁 내 환경은 인간의 뇌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궁 내에서 어머니의 호르몬의 불균형은 태아가 자란 후 동성연애자가 되는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뇌복제는 현재 기술로는 불가능


뇌 복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뇌 신경세포 이식은 의학계에서 많이 연구되고 있다. 이런 기술을 응용하면 불치의 뇌 질환을 치료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미 태아의 중뇌 조직은 파킨슨병 환자의 치료에 사용된 바가 있다.

중뇌는 도파민을 생성하는 뇌 부위이기 때문에 뇌에 도파민이 부족한 파킨슨병 환자에게 사용되는 것이다. 다만 한 환자의 치료에 많은 태아의 뇌 조직을 필요로 하므로 실제로 이런 치료가 행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반면 아직 분화되지 않은 줄기 세포를 사용해 뇌에 이식할 수는 있다. 최근 의학자들은 줄기세포 혹은 태아의 뇌 세포를 뇌졸중을 일으킨 쥐의 뇌에 주입해 보니 그곳에서 가지를 치며 살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런 이식 세포들이 제대로 기능을 할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살아 기능을 할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런 뇌 세포 이식술이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 혹은 뇌졸중 같은 뇌 질환의 치료에 사용될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 이내에 우리는 그 해답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 “복제자들 중벌해야”

우리는 복제인간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복제인간이 탄생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자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사람들은 “이래선 안된다”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제레미 리프킨은 “인간 복제자들은 강간범보다도 더 오랜 기간 징역살이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부정적인 이유에는 근거가 있는 것들도 있고 근거 없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유래한 것도 있다. 

첫째로 복제인간 시행은 실패할 확률이 높은 위험한 시술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세포를 자궁에 이식한 산모는 유산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진다. 게다가 아기가 태어났다고 해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기술적 장애로 인해 태어난 아기에게 신체 기형, 발달 장애 같은 문제가 생길 확률이 높다. 예컨대 복제양 돌리는 벌써 관절염에 시달리고 있으며 나이에 비해 빨리 늙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나중에 극복될 가능성이 많다.

둘째로 악당들이 범죄자의 유전자를 사용한 복제인간을 대량 생산해서 지구 정복을 꿈꾼다는 걱정이다. 이런 걱정이 생긴 이유는 우리가 <제 5 원소>나 <포트리스>같은 SF 영화를 지나치게 많이 봤기 때문이다. <멀티플리시티> 영화와는 달리 복제인간은 자궁 내 착상되어야 하고 그 이후 오랫 동안 자라나야 한다. 즉 어떤 악당이 복제인간을 사용해 지구를 정복하려면 적어도 2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게다가 20년 이상 자라난 복제 인간들이 그 악당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는 인간을 복제 할 수 있지만 그 마음을 복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복제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의문이다. 유전자가 동일한 두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복제인간은 정체성이 없는 잉여 인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란성 쌍둥이 역시 서로에 대한 복제 인간이다. 즉 똑같은 두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두 명 존재하는 사실은 복제인간 탄생 훨씬 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일어났던 일이다. 그렇다고 일란성 쌍둥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해야 할까? 뿐만 아니다. 복제인간의 유전자가 유전자 공여자와 아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핵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세포질 안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도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복제인간의 경우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난자를 제공한 여자의 것이다. 이 유전자는 전체 유전자의 1%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이런 점에서 복제인간은 일란성 쌍둥이 보다는 오히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다 모른다


내가 보기에 복제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자연의 지혜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데 따른 위험이다. 자연은 왜 스스로 자신을 복제하지 않고 섹스를 만들었나를 이해해야 한다. 학자들은 이 방법이 유전적 다양성을 생산하고 질병과 같은 위험에 맞서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그 이유에 관한 확실한 해답을 모른다.

인간의 지식이 더욱 깊어진다면 섹스가 존재하는 이유를 완전히 알아낼 수 있을까? 만일 이를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유전적 지식을 가지고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것 이상의 이득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왜 암세포가 발생하는지, 왜 우리가 늙는지, 그리고 왜 알츠하이머 같은 퇴행성 질환이 생기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복제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아직도 우리가 그 재앙을 확실히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복제인간 소란은 어떻게 결말이 날 것인가? 아마 복제 인간을 몇 명 낳아본 후 흥미를 잃어 그대로 끝나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계속 복제인간이 태어날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사랑하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엄마가 그 아들의 피부조직을 잘라 아들을 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명이 인간보다 짧은 애완동물에서는 더욱 많이 사용될 것이다. 복제인간이 점점 늘어난다면 ‘자궁 빌려 주기’가 요즘 파출부처럼 신종 직업이 될 것이다. 아마도 필리핀이나 말레이지아 같은 가난한 나라의 여인들이 대리모 직업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의사들은 여성의 자궁대신 돼지 암컷의 자궁을 빌릴 가능성도 많다. 돼지 자궁에서 출산한 아이도 인간임에는 틀림없기 때문이다. 아마 돈이 있는 사람은 인간 자궁을, 없는 사람들은 돼지 자궁을 이용할 것 같다.


남녀의 역할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1932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가 <멋진 신세계>에서 이미 이야기 했듯 인간은 섹스를 하지만 아이를 낳는 것은 동물적 행동으로 경멸될 지도 모른다. 헉슬리도 미처 생각치 못했지만 사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섹스는 아예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뇌>에서 썼듯이 변연계의 쾌락 중추에 자극을 가하는 방법이 개발된다면 지금처럼 귀찮게 옷 벗고 침대에 누울 필요없이 간단한 뇌 자극으로 섹스의 쾌락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성적 진화의 상징인 여성의 유방은 줄어 들 것이고 남자의 페니스는 작아질 것이다.


복제 인간의 세계는 멋진 신세계일까? 아니면 대재앙일까? 2003 년, 우리는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그 결과가 어떤 쪽인지 판단할 만한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인간은 수 십만년 동안 진화해 왔지만 지금이야말로 인간의 지혜가 그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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