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TV 드라마는 시청자를 웃기고 울리며 감동을 선사한다. 최근 인기를 모은 <베토벤 바이러스>도 그랬다. 클래식이라는 색다른 소재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은 대중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바이올린 연주자인 주인공 두루미(이지아 분)는 청신경 종양으로 청각을 상실해간다. 하지만 청력을 잃은 베토벤이 작곡을 했듯,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연주를 계속한다. 또한 청각 장애인 스포츠 댄서 김보람 씨는 무대의 진동만으로 음악을 느끼며 춤춘다. 듣지 못해도 이런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뇌에 있다. 우리의 뇌는 알면 알수록 신비한 보물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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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을 상실하면 뇌의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 두루미는 갑작스러운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껴서 병원에 갔다가 청신경 종양이라는 판정을 받는다. 의사는 뇌의 종양이 청신경을 압박하면서 생기는 이 병에 대해서, 종양은 제거할 수 있지만 듣지는 못할 거라고 말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두루미가 지휘자와 눈빛으로 교감을 나누며 바이올린을 켜는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함께 과연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주었다.
들리지 않는데 어떻게 연주가 가능할까? 하버드의대 신경학과 교수인 앨바로 패스큐얼 박사의 연구에 그 힌트가 있다. 연구진은 일반인 피험자의 눈을 가린 상태에서 5일 동안 점자 교육을 시킨 다음, 뇌 영상 촬영 장치를 이용해 점자를 읽는 동안 피험자의 뇌를 촬영했다. 그 결과, 손끝으로 점자를 읽을 때 뇌의 시각피질이 활발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시각이 차단된 상태에서 뇌가 촉각 정보를 시각 정보로 전환해서 인식한 것이다. 뇌는 하나의 감각이 차단되면 그 기능을 대신하거나 보완할 다른 감각을 더 예민하게 발달시킨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바뀐 신체의 반응에 대해 뇌가 스스로 재편성하는 기능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을 ‘뇌 보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청각을 잃은 연주자도 뇌 보상 원리에 의해 뇌의 감각 기능이 재편성되면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을 속삭일 때 반응하는 귀가 따로 있다?
짚고 넘어가자면 사실 소리는 귀가 아니라 뇌로 듣는다. 물론 귀가 없으면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진동으로 귀 속의 고막이 떨리고 고막 안의 청소골에 의해 소리가 증폭된다. 이 진동에 의해 달팽이관 내의 림프액이 진동하고, 이어서 흥분된 청세포가 청신경을 통해 이를 대뇌로 전달함으로써 소리를 인식하게 된다.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재미있는 연구를 끊임없이 시도하게 한다. 미국 텍사스의 샘 휴스턴 주립대학 연구진은 연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양쪽 귀 중에서 더 잘 반응하는 귀가 어느 쪽인지 밝혀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라고 예상하는가?
연구진은 사랑에 빠진 남녀가 서로 주고받는 감성적인 밀어를 녹음해서 피험자 1백 명에게 한 번은 오른쪽 귀에, 한 번은 왼쪽 귀에 들려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받아 적게 했다. 이때 왼쪽 귀로 들은 경우에는 70명이 밀어를 제대로 적었지만, 오른쪽 귀로 들은 경우에는 밀어를 그대로 적은 사람이 58명에 불과했다. 12%의 차이이긴 하지만 연구팀은 이를 통해서 사랑의 밀어는 왼쪽 귀에 대고 속삭여야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진은 이 결과에 대해서 왼쪽 귀가 감정 조절에 관여하는 우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연인들은 사랑을 고백할 때 먼저 자신이 연인의 어느 쪽 방향에 있는지 따져봐야 할 듯하다.
일 잘하는 사람은 오른쪽 귀를 잘 쓴다
왼쪽 귀가 감성에 잘 반응한다면 오른쪽 귀는 어떨까? 《청각뇌》의 저자 시노하라 요시토시 박사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오른쪽 귀를 많이 쓴다고 말한다. 뇌는 말을 들을 때 그것이 언어 정보이면 좌뇌를 이용해서 의미를 분석하는데, 좌뇌는 우반신과 이어져 오른쪽 귀와 연결되어 있다. 즉 오른쪽 귀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좌뇌의 언어 처리에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오른손잡이, 왼손잡이가 있듯이 사람마다 특별히 자신이 잘 쓰는 귀가 있다. 전화 수화기를 어느 쪽 귀에 대는지, 대화 중에 어느 쪽 귀가 더 잘 들리는지를 스스로 관찰해보면 자신이 주로 사용하는 귀가 어느 쪽인지 알 수 있다.
시노하라 요시토시 박사는 비즈니스를 할 때는 오른쪽 귀를 기울이라고 제안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객관적으로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 귀가 오른쪽인 사람이 비즈니스에서 유리하다고 해서 오른쪽 귀만 쓰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좌우의 뇌가 역할을 분담하면서 균형 잡힌 기능을 하는 것이 삶의 질을 높이듯이 귀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와 연결된 왼쪽 귀도 쫑긋 세워야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할 수 있다.
글·김보희 kakai@brainmedia.co.kr | 일러스트레이션·이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