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

[김양강양의 서울에서 여름나기] 못다 한 이야기 1 - 성북동

여름에는 쳐다도 안 봤던 하늘인데 어느새 저만치 높아졌다. 허리춤이 묵직하게(?) 잡히는 것을 보니 하늘은 높아지고 강양은 살찐다는 가을이 오긴 왔나 보다.

2012년 여름 '서울생활 9년 차 길치' 김양과 '서울생활 2년 차 무개념' 강양의 서울탐방기를 기사로 전했다. 7월 4일 성북동 취재를 시작으로 7월 20일 이태원, 8월 14일 동대문을 다녀왔다.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 돌아다니며 마감을 맞추느라 미처 못 썼던 기사들을 '창고 대방출'한다. 9월 7일부터 매주 금요일 4주간 김양과 강양이 번갈아 가며 '못다 한' 이야기를 전한다.



▲ 성북천이 있었다. 쌍다리는 지금도 남아 있다. 발음도 정직한 '덕수슈퍼마켓'이 자리한 곳이 바로 쌍다리 위다.


못다 한 이야기, 그 첫 번째 주인공은 바로 성북천, 그리고 쌍다리이다.

요즘에야 성북동에서 쌍다리 이야기를 하면 흔히 '맛집'을 떠올린다. 성북동에 자리한 '쌍다리 기사식당'에서 파는 돼지불고기와 부추의 하모니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와 따뜻한 성질의 부추가 만나니 이는 음과 양이 만난 환상의 조합이다. 게다가 맛집만 골라 다닌다는 '기사님'들의 식당 아닌가. 성북동에 가면 꼭 들러볼 맛집이다. 쩝.

강양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성북동 쌍다리'는 돼지고기와 부추의 콤비네이션(combination)이 아니다. 지금은 사라져 식당 간판 속 이름으로만 남은 '쌍다리'와 '성북천'의 추억을 말하고자 한다.

성북동의 옛 이름은 북저동(
北渚洞)이었다. 복숭아꽃이 만개한다 하여 도화동(桃花洞), 복사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요즘 서울사람들이 꽃구경하러 봄에 여의도를 찾듯이, 조선 시대 한양사람들은 복숭아꽃을 구경하기 위해 북저동을 찾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북저동은 북적동(北笛洞)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한다. 조선 초기부터 복숭아나무가 많았던 도화동에 복사꽃이 만개하면 도성 사람들이 앞다투어 꽃 구경, 성북천 물 구경을 하다 보니 동네가 '북적북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 후기 문신이었던 서형수(1749~1824)는
《명고전집(臯全集)》에서 북적동에서 노닐고 (遊北笛洞記)을 통해 복사꽃 피는 봄이 지난 뒤 적막해지는 도화동을 보며 인간사의 성쇠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겠다 싶다. 200여 년이 지난 2012년의 성북동에는 분홍빛 복숭아꽃도 없고 성북천 물줄기도 사라졌다. 인간사의 성쇠에 대한 한탄은 조선 후기가 아니라 지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 성북천이 사라진 성북동에서 '쌍다리'는 음식점 간판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성북동에서 성북천의 흔적은 '쌍다리' 뿐이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성북천이 흘렀던 자리에는 다리 두 개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쌍다리'다. 북악산 구준봉 기슭에서 시작한 성북천이 흘러내려 와 성북동 길을 따라 흘렀던 시절이 있었다. 봄이 되면 복사꽃이 성북천 물줄기를 타고 쌍다리 아래를 지나가곤 했단다. 그랬던 성북천이 사라지니 복사꽃도, 물 긷는 청년도, 빨래하던 아낙네도, 미역을 감던 아이들도 모두 함께 사라졌다.

성북천이 사라진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성북천의 상류에 속하는 성북동은 비만 내리면 물난리를 겪어야 했다고 한다. 수시로 성북천 정비를 했지만 피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늘어나는 사람과 그만큼 늘어나는 집을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복개되어 현재 10여 채의 집들이 성북천의 옛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취재를 모두 마치고 한참 뒤에 알게 된 것인데, 성북천 옆으로 놓인 길 어디쯤 벽화에 이런 문구가 있다고 한다.

'성북동 길로 복개되기 전에는 물이 맑아 물고기도 살았고 큰 다리도 있었음.'
 

성북동에서 성북천도, 복사꽃도, 그 사람들도 사라졌지만 이렇게 기억해주는 이들이 있다면 사라져도 사라진 것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사진. 강천금 sierra_leon@li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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