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강양의 서울나들이' 그 세 번째 장소로 동대문을 선택한 이유는 시장 때문이었다. 센스 없이 일바지(배기팬츠)를 코엑스에서 샀다는 이유로 시작된 '김양강양'인 만큼 서울에서 시장은 한 번 제대로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동대문에는 옷 파는 시장만 있는 게 아니더라. 동대문운동장기념관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청계천 고서점, 전태일 광장 등 가볼 곳도 생각할 것도 많은 곳이 바로 동대문이었다. 우선 동대문 그 첫 이야기로 '동대문운동장기념관'부터 시작한다.

▲ 동대문(흥인지문)에서 바라본 길거리 모습. 왼쪽으로는 공사가 한창이고 오른쪽으로는 쇼핑몰이 즐비하다.
내가 아는 동대문은 이런 모습이다. 한쪽으로는 고층 쇼핑몰이 줄지어 으스대고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공사가 한창인 모습. 한 번도 동대문운동장을 본 적이 없다. TV로 본 적이야 있겠지만 어디 그것이 동대문운동장인지 잠실운동장인지 어찌 기억하겠는가. 아쉽지만 그만큼 개념이 있는 강양이 아니라서 말이다.
301번 버스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정류장에서 내렸다. 한껏 멋부린 묘한 형태의 시멘트 건물을 굽이굽이 지나가다 보니 오늘의 첫 번째 장소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이 나타났다. 버스를 타고 오든 지하철을 타고 오든 오묘한 시멘트 건물에 현혹되어 미로를 제대로 통과 못 할 수도 있으니 정신 '단디' 챙기고 목적지를 찾아가도록.
관람 시작시간인 10시 '땡'하고 기념관에 입장하자마자 미모의 안내원이 설명을 시작한다. 첫 관객으로서 성심성의껏 미인의 설명을 경청한 뒤 본격적인 기념관 투어에 들어갔다.
▲ 동대문운동장기념관에서 특별전으로 진행하고 있는 '시대를 담은 그곳, 동대문운동장'. 서울역사박물관이 주최하는 이번 특별전은 오는 12월 30일까지 추석당일을 빼고 연중무휴로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1925년 일제에 의해 지어진 뒤 2007년까지 동대문운동장의 83년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은 '시대를 담은 그곳, 동대문운동장' 특별전이 한창이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소장한 광복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사진 자료 30여 점이 공개되었다. 사진 속 동대문운동장은 운동 경기는 물론 각종 집회와 공연이 열렸던 당대 최고의 복합문화공간이었다.
동대문운동장은 1925년 건립 당시 일본의 고시엔(甲子園)에 이어 동양에서 두 번째로 큰 종합경기장이었다. 야구장과 축구장을 합하면 10,000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덕분에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강화하려고 세운 운동장에서 우리는 각종 집회를 열며 애국심을 키워왔다.
▲ 한국전쟁 9주년 기념행사 (1959년 6월 25일)한국전쟁 아홉 돌을 맞아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동대문운동장에서 기념행사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사진은 기념식이 끝난 후 학생들이 시가행진 준비를 위해 사열해 있는 모습이다.
운동장으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했다. 야구장 축구장 실외배구장 수영장 연식정구장 등을 갖춘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경기장으로 1976년 잠실종합운동장이 건립되기 전까지 각종 체육대회 및 국제대회 등을 치러왔다.
동대문운동장은 지난 2000년 10월 22일 수원 삼성과 성남 일화의 프로축구 경기를 마지막으로 폐쇄되었다. 이후 2003년 축구장은 주차장이 되었고 야구장 역시 2007년 서울시 고교야구 가을리그 결승전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각종 설비를 갖춘 운동장에 밀려 수명을 다한 동대문운동장의 인생 2막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철거가 한창이던 지난 2008년 동대문운동장 아래 땅속에서 조선 초기의 유물과 유적이 발굴된 것이다. 그해 5월 공사장에서 각종 자기와 기와, 동전 등이 출토되었다. 태조 5년에 만들어진 아치형 수문 시설인 이간수문(二間水門)도 발견되었고 일부이기는 하나 서울성곽도 그 뼈대가 남아있었다.
▲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조선 태조 5년에 만들어진 이간수문 유적지와 동대문운동장을 밝혔던 2개의 조명탑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 함께 하고 있다.
그래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는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 2개가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의 흔적을 간직한 유물과 유적을, 그리고 20세기의 흔적인 동대문운동장의 조명탑을 남김으로써 과거 현재 미래를 한 공간에서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는 역사를 과거로 치부하지 않고 오늘, 그리고 내일로 이어간다는 모토 때문이기도 하다.
첫발을 내디뎠을 때 동대문운동장기념관은 나같이 데면데면한 사이보다는 좀 더 친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 같았다. '동대문운동장을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대문운동장과 그 주변의 삶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회상해 볼 수 있게 하는 공간'으로 기획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조금만 더 찬찬히 뜯어보면, 이간수문과 조명탑을 보고 나면, 내가 직접 보지 않았고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을 뿐 이 모든 흔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과거와 미래는 내 안에서 모두 함께 공존한다는 것도 함께 말이다.
▲ 동대문운동장기념관 찾아가는 길 (제공=동대문역사문화공원)
글∙사진. 강천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