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뇌 활용과 공익적 삶이 장생의 지름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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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리더에게서 듣는다

브레인 10호
2013년 01월 11일 (금)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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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식 범은장학재단 이사장
(전 단국대 이사장,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지난 2월 16일 서울사이버대학교 졸업식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최연소 졸업자(1985년생, 24세)와 최고령 졸업자(1935년생, 77세) 사이에 무려 50년 이상 차이가 났던 것. 당시 최고령 졸업자로 관심을 모았던 주인공은 장충식 범은장학재단 이사장.

그는 30대 못지않은 건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바이올린·피아노· 플루트 등의 악기 연주 실력, 영어·일본어·중국어·스페인어 등 5개 국어에 능통한 끊임없는 자기 개발 그리고 사회를 위한 나눔의 공적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 장생의 대표 인물로 손색이 없어 인터뷰를 청했다. 1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인터뷰 내내 꼿꼿한 자세와 우렁찬 목소리로 마치 책을 쓰듯 막힘없이 답변을 해 77세란 나이를 잊을 정도였다. (실제 장충식 이사장은 직접 자전적 대하소설을 집필한 문학가이기도 하다.)

이사장님께서는 항상 젊음과 에너지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5개 국어를 하고, 악기 연주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의욕적으로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의욕이 있으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이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오랜 기간 몸담았던 단국대 총장, 이사장을 그만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했습니다. 주변을 보니 우리 사회에 많은 노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었고 그런 것에 관심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죠.

사회복지에 관심을 두니 열악한 환경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습니다. 실질적인 복지모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사이버대학 사회복지과에 등록을 했지요. 뭔가 해보려면 우선 공부를 해야 하니까요. 직원들도 함께 등록을 시켰어요. 사이버대학이라 컴퓨터 작업이 많고 나이도 많다 보니 젊은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습니다.

학문적으로 복지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스웨덴어도 새롭게 익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실질적인 복지문화를 누리는 ‘복지관’을 세우는 것이 하나의 목표입니다. 범은장학재단을 최고의 장학재단으로 만드는 것과도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음악과 언어구사에 있어 탁월하신데요, 특별한 두뇌관리 비결이 있으신지 그리고 악기와 언어를 계속해서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뇌는 자꾸 쓰다 보면 좋아집니다. 제가 생각하는 뇌를 좋게 하는 것으로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악기’와 ‘언어’입니다. 모든 악기는 섬세한 손의 감각을 필요로 하지요. 그래서 악기를 다루다 보면 자연스럽게 뇌가 발달하게 됩니다. 저는 매일 악기를 다룹니다.

옛날에는 바이올린을 했는데 오십견이 좀 오고 나서 다소 무리가 있기에 플루트를 시작했습니다. 딸아이에게서 배웠죠. 그리고 아코디언도 하고 파이프오르간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악기를 배울 때 기본적으로는 음악을 즐기는 입장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을 수준까지 무척 열심히 합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과정에서 하나의 교류가 일어납니다. 음악만큼 타인과 감성적 교류를 깊게 만들어내는 것은 없으니까요.

뇌를 좋게 하려면 언어 활동도 적극 추천 드립니다. 언어는 단지 두뇌 발달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사람과의 소통을 깊게 만드는 무엇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과 교류할 때 가장 훌륭한 도구가 바로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말하면 듣는 사람은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죠. 또 언어를 익히다 보면 그 나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언어를 배우고 말하다 보면 그 나라 민족의 애환이 느껴집니다.

전 영어, 중국어, 일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잘하는 편입니다. 현재는 스페인어와 스웨덴어를 추가로 익히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일제 치하에서 중국에서 살면서 중국어와 일본어를 익혔고, 장성한 후에는 스포츠 분야 국제 활동을 하면서 언어에 대한 남다른 인식과 필요성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서 북한을 거쳐 현재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관통하시다시피 살아오셨는데 그러한 시간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께서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셔서 어릴 적에 자기 보호의 본능이 강했습니다(선친인 장형張炯 선생은 만주에서 활동했던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단국대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장충식 이사장은 중국 톈진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눈치도 많이 살피게 되었고 주변을 항상 주시해야 했죠.

남에게 지는 것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남들 모르게 형에게서 무술을 익혔는데 제가 체구도 크고 해서 싸움을 하면 지는 일이 없었지요. 그때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지키는 법을 익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적응력이 남달랐죠. 환경이 급박하게 바뀌는 곳에 살다 보니 빠른 시간에 환경에 나를 맞추는 습관이 배인 거죠. 중국에서, 북한에서 그리고 한국에서의 학창시절에도 저는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어디서나 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제 체구가 큰데다 무술까지 잘하고 힘도 세니 당해낼 사람이 없었겠지요.

(웃음) 지금도 젊은 사람들하고 팔씨름을 하면 지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중국, 북한, 남한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빠르게 하나가 되는 법을 알려준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선친이신 범정 장형 선생님은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단국’이란 이름으로 대학을 설립하신 것도 그 뜻을 이어가고자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총장과 이사장을 맡아오셨는데 단국대가 향후에 어떠한 대학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시는지….

아버지께서는 기본적으로 백범 선생님과 같은 노선에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하고 해방이 된 뒤 백범 선생님은 상하이를 통해 비행기로 귀국하셨고, 저희 집은 북한에 있다가 1946년에 월남을 했습니다. 남한에서 여러 분들이 모여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도 가졌던 것으로 압니다. 그때 제 나이가 15세 정도였습니다. 그 후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 모여서 학교 이름을 ‘단국’이라고 지었던 것으로 압니다.

학교는 떠났지만 저는 단국대가 안으로는 홍익인간이란 민족의 이념을 갖고, 밖으로는 ‘지구’를 생각하는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홍익인간은 평화철학이고 세계적인 정신이니 그것을 근간으로 하면서 세계의 흐름과 방향에 맞게 변화하고 도약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남북이 합쳐질 수 있는 근간은 ‘뿌리’에 있다고 봅니다. 하나가 될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뿌리는 바로 ‘단군’이고 ‘홍익인간’의 정신입니다. ‘단군’은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국조거든요. 저같이 일제 하에서 하나 된 조국으로 있었던 사람들은 통일에 대해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선친이 있었으니 더한 셈이죠.

그것이 남북한 스포츠 교류나 이산가족 상봉,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 남북 교류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남북한이 만나 스포츠 경기를 할 때면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몰라서 가슴이 저며옵니다. 그건 느껴보질 못하면 알 수가 없을 겁니다. 왜 이렇게 우리가 서로 다른 팀으로 만나 싸워야 하는지…. 눈물 겨운 장면이지요.

장충식 이사장님을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제자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장충식 이사장님의 제자 사랑이 각별하다고 들었습니다. 자녀 교육은 어떠신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정신적 유대관계’를 중시합니다. 혈통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단국대 총장 시절 데모하다가 퇴학을 맞았던 타 대학 운동권 학생들을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정부의 시선이 부드럽지 않은 것이야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었고 그렇게 연결된 제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학생회장의 대표성을 그대로 인정해줬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격렬한 데모를 했던 것은 시대가 그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었지요. 데모를 이끌더라도 말 그대로 학생회장은 학생들의 대표자니까 서로 대화하고 존중해주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립대 총장과 이사장을 했으니 재산도 많겠다고 하지만 저는 자식들에게 남겨줄 재산도 없습니다. 자식들에게 힘들이지 않고도 남보다 잘살라고 재산을 물려주면, 사회 지도층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승헌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총장께서 주최한 ‘100세 시대 두뇌건강과 뇌교육’ 세미나에서 이사장님께서 직접 축사도 하시고 두 분이 특별한 인연을 갖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이승헌 총장께서 최근 100세 시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지표로 ‘장수’ 보다 꿈과 희망을 갖고 노년을 건강하게 사는 ‘장생長生’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사장님은 바로 그 장생의 대표적인 분 같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단국대 총장시절 학생이었는데 지금은 총장으로 만났습니다. 이승헌 총장의 저서들을 읽으며 ‘뇌’의 가치를 알게 되었죠. 《뇌 안의 위대한 혁명 BOS》, 《걸음아 날 살려라》를 아주 잘 읽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부터 ‘걸음을 똑바로 걷지 않는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딱 그 내용이었습니다. (웃음) 최근에는 《뇌파진동》을 읽었는데 직접 50권을 사서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습니다.

장생은 모두의 희망이겠죠. 하지만 그 방법을 대부분 모르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구체적인 것을 모르는데 이승헌 총장이 얘기하는 장생에는 그 방법이 있어 특별합니다. 저 역시 ‘100세’란 단어를 듣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나도 100세를 살 수 있겠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동안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사람이 욕심을 부리면 건강을 해칩니다. 분수에 맞게 생활해야죠. 무엇보다 저는 100세를 유지하려면 정신적으로 수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정신적 수양 없이 건강은 찾아오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신 건강을 강조하는 교육이 절실합니다. 정신 건강과 신체적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거든요.

그래서 이승헌 총장이 얘기하는 ‘100세 장생’은 단순한 건강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정신 교육 운동의 근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시작한 하나의 운동이 세계와 공감할 수 있는 운동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많이 알려지고 보급되기를 바랍니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김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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