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물건을 사놓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쇼핑몰을 기웃거리다가 파격 할인이라는 문구에 필요도 없는 물건의 구매 버튼을 덜컥 클릭하거나, 홈쇼핑에서 보너스 상품이 좋아 보여 주문 전화를 했던 경험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또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던 주식 전문가도 정작 자신이 투자를 할 땐 손해를 보기 일쑤다. 저명한 경제 전문가가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던 경기 예측조차 당장 다음달에 정반대로 나타날 때도 많다. 이처럼 인간이 자신의 소비 생활과 경제 활동의 예측에 약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원인을 인간 인지의 특성과 최근 발전하고 있는 인지경제학을 통해 알아보자.
뇌 속 구매 버튼
올해 초, 구매를 결정할 때 뇌의 변화를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으로 분석한 논문이 <뉴런Neuron>지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인간은 ‘구매의 즐거움’이 ‘돈을 지불해야 하는 고통’보다 큰 경우에 물건을 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와 미래의 이득을 비교해서 구매가 결정된다는 경제학 이론을 뒤흔드는 결과다. 물건이 마음에 들 경우 우리 뇌의 쾌락중추 중 하나인 측좌핵(neucleus accumbens)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된다. 반면 비싸다고 생각되면 인슐라insula의 활동은 증가하고 내측 전전두엽 피질(medial prefrontal cortex)의 활동은 줄어든다. 이렇게 쾌락과 고통, 비교의 뇌회로들에 의해 최종적인 구매가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뇌의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는 원인은 다양하다. 객관적 필요성만이 아니라 허영심, 광고모델의 매력, 덤으로 주는 상품, 할부조건 등 다양한 감정적 동기들이 구매의 쾌락과 고통을 형성하게 된다. 특히 카드를 사용할 때 금전 감각이 무뎌진다고 느끼는 것도 지불의 고통이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 구매를 결정할 때 여러 가지 감정적인 동기들의 영향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합리적인 판단의 방법
그렇다면 구매를 결정하는 여러 가지 감정적인 요인들만 없애면 우리는 합리적으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감정의 개입이 없어도 인간의 이성은 비합리적인 특성을 보인다. 가령 8×7×6×5×4×3×2×1과 1×2×3×4×5×6×7×8은 답이 같지만 빨리 답하라고 했을 때 응답의 평균값은 서로 다르다. 또 총 600명 중 200명만 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표현했을 때와 400명이 죽는 방법이라고 표현했을 때 논리적으로는 둘 다 같은 결과지만 각각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달라진다. 이처럼 인간의 이성은 조건에 영향을 받고 어림짐작에 의한 ‘제한된 합리성’을 가진다. 게다가 ‘시어머니의 눈에는 며느리의 나쁜 면만 보인다’는 말처럼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믿음에 따라 관찰과 추론에서도 비합리적이다.
인간 진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원시 채집사회 때는 빠른 판단을 위한 이러한 특성이 조상의 생존율을 높이는 훌륭한 도구였다. 그러나 좋은 짝을 만나고, 효과적으로 식량을 얻고, 협동을 하면서도 속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춘 효율적인 전략들이 현대의 복잡한 일상과 학문에서는 오히려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게 할 수 있다. 결국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판단이 한계를 가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개인의 경제 활동에서도 쇼핑 전에 구입할 필요가 있는 것들의 목록을 미리 작성한다거나, 한 바구니에 계란을 모두 담지 않는다는 식의 분산투자, 전문가의 객관적인 조언을 참고하는 것은 이성의 한계를 고려한 경험적인 해결책들이다. 또한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조건을 판단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에 핵심적인 한두 가지 조건들로만 판단을 최소화하는 것도 해결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지심리학과 경제학의 결합
개인의 경제 활동을 넘어서 한 사회나 세계의 경제를 제대로 운영하고 예측하는 데도 인간 이성의 제한된 합리성과 인지 과정의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교과서를 통해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고 희소가치와 필요성, 상품의 질과 같은 합리적인 이유에 의해 소비자가 움직인다고 배웠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광고와 마케팅이 매출을 좌우하고 투자자들의 심리에 의해 요동치는 주식시장을 볼 수 있다.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으로도 불리는 인지경제학(cognitive economics)은 수학 위주의 주류 경제학에 맞서 ‘합리적 소비자와 공급자’라는 기본원칙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프린스턴대학의 심리학 교수 카네만 박사는 “미래의 결과가 불확실할 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사고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이론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의 이론은 고전경제학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주식투자 행동을 예측하는 데에 쓰이며 인지경제학의 기초가 되었다. 인간이 감정과 각종 신념체계와 문화의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불완전한 판단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그의 이론은 현재 모든 학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인과 사회의 경제 활동의 비밀이 인지경제학에 의해 완전히 밝혀질 날을 기대해본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