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섬너스 박사는 신경생리학자로 현재 런던 중심가에 위치한 퍼트니Putney 뇌호흡 센터의 원장을 맡고 있는 ‘뇌호흡트레이너’다. 10월 초 그는 영국의 단월드에서 수련 중인 15명의 회원을 이끌고 수련과 관광을 겸한 ‘한국명상여행’을 왔다. 한국인에게도 아직은 생소한 뇌호흡트레이너라는 직함을 지닌 그의 삶과 꿈 이야기.
‘고향에 온 것 같다’고 폴 섬너스 박사는 한국을 처음 방문한 소감을 말했다. 그는 스코트랜드인 특유의 어투를 지닌, 만화영화 ‘캔디’의 주인공 안소니가 입던 스코트랜드 전통 퀼트치마와 백파이프가 잘 어울릴 법한 인상을 가졌다. 영국의 뇌호흡센터 이야기로 그는 첫 말을 연다.
“영국에는 현재 세 개의 뇌호흡센터가 있는데 뇌호흡은 특히 머리를 많이 써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인기입니다. 이번 한국 명상 여행팀에도 변호사나 회계사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섬너스 박사 역시 신경생리학자로 뇌호흡 수련에 매료되어 트레이너로 나선 사례다. 촉망받는 신경생리학자로서 ‘진동(vibration)’을 집중연구하여 특허출원을 두 개나 낸 그는 현재 대학에서 리서치 컨설턴트 역할을 하면서, 퍼트니 뇌호흡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섬너스 박사는 신경생리학자로서 꽤 인정받는 삶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늘 불만에 차 있고 모가 난 사람이었다고 털어놓는다. 급기야 우울증 증세까지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 그는 뇌호흡수련을 접하게 된다.
“육체와 에너지, 그리고 뇌의 정보를 정화하는 뇌호흡을 통해 서서히 제 한계를 극복해가면서 가득 찼던 불평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긍정적이고 좀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었죠. 휠씬 더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수 대신 뇌호흡트레이너라는 직함을 선택했다. “영국의 뇌호흡 센터에서 한국의 지도자를 돕는 T.A(조교)로서 첫 수업을 가르치고 나서 저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한 일들 중 가장 중대한 일을 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확연히 알게 되었죠.”
뇌신경 네트워크 변화시키는 뇌호흡
섬너스 박사에 의하면 뇌호흡은 자신의 뇌 속 정보를 보다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평화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두뇌훈련법으로 뇌감각깨우기, 뇌유연화 과정, 뇌정화, 뇌통합과정에 이어 뇌주인되기 과정, 총 다섯 단계 수련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신경생리학적으로 뇌호흡은 뇌신경회로의 네트워크에 변화를 가져오는 수련법”이라고 설명한다.
“5단계 중 2단계 뇌유연화 과정은 뇌회로에 변화를 주어서 오래된 습관을 새로운 습관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정보는 시냅스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뉴런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죠. 한번 형성된 뇌회로는 금새 굳어져서 습관이나 정보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지만 노력하면 뇌회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TV나 책 등을 통해 정보를 더 많이 얻는다고 해서 뇌회로에 변화가 오는 것은 아니고, 실제 몸으로 부딪치고 경험해야만 그 정보가 자기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행동을 통해, 몸을 통해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정보를 긍정적인 정보로 바꾸어 갈 때만이 인생의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르치지 않는’ 트레이너
섬너스 박사는 1년 여간 런던 퍼트니 뇌호흡 센터에서 트레이너로 활동하였고 현재 역시 계속하고 있지만 자신을 ‘선생 아닌 수련자(Practitioner)’라고 표현한다. 트레이너는 ‘당신이 가고 싶은 곳이 이 곳이지요. 저는 이러이러한 방법으로 거기를 갔습니다. 당신도 한 번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하며 안내해 주는 사람일 뿐 가르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란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트레이너는 단지 ‘그 마음이 잘 자라나 열매를 거두도록 보호막을 쳐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트레이너로서의 어려움에 대해 그는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텔레비전이나 책, 술집이나 잠 속에 숨을 수 없습니다. 자신의 습관과 기억, 감정 이런 것들로부터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유일한 어려움이죠.”
스스로의 뇌를 트레이닝하는 특별한 비법이 있느냐고 물으니 매순간 깨어있기 위한 노력자체가 두뇌 트레이닝라고 말한다. “매일 제게는 충분치 않은 5시간을 자고 일어나면서 아침에 일어나야 할 ‘행복한’ 이유를 찾습니다. 이것 또한 제 뇌를 변화시키는 훈련이죠. 육체적인 운동, 가령 1시간 정도의 스트레칭이나 푸시업, 기수련 등 손쉬운 운동법도 뇌를 훈련시키는 방법들입니다.”
아침식사는 ‘김치 샌드위치’로
한국방문 내내 섬너스 박사에게서는 영국신사다운 진중한 면모와 함께 서양인 특유의 가벼움이 서린 장난과 농담이 끊이지 않았다. 3분에 한 번 이상 박장대소를 터뜨리게 하는 유머감각은 그와의 동행을 시종일관 유쾌하게 했다. 같이 여행 온 수련자들은 그의 이런 모습에 익숙한 듯 덩달아 장난을 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같이 “김치 브레인!” 하며 그를 웃기기도 했다.
이유인 즉 그가 아침식사로 다소 엽기적인(?) ‘김치 샌드위치’ 또는 김치 볶음밥을 즐겨먹는 ‘김치홀릭(!)’이기 때문이라는 것. 앞으로 ‘김치 와인’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진지한 어투로 말하는 그는 김치뿐 아닌 한국음식을 전부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음식을 물으니 떡볶이, 김밥, 비빔밥, 라면, 불고기, 해물파전…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런던에서 가장 자주 가는 식당역시 한국음식점 일만큼 한국음식을 즐긴다. 한국에서 건너와 그의 삶을 바꿔놓은 뇌호흡에 대한 열정이 어느새 한국음식과 문화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두뇌에 날개다는 꿈과 비전
인터뷰 도중 그는 ‘비전’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그의 비전은 2004년까지 영국에 10개의 뇌호흡 센터를 만들겠다는 ‘단기비전’에서부터 원대한 장기비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비전과 꿈이 뇌개발에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비전이 없으면 변화도 없습니다. 비전은 마음을 움직이고, 마음이 몸이 움직여 변화를 창출하지요. 가치 있는 비전과 그 비전을 이루겠다는 굳은 책임감 없이 뇌를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뇌호흡에서 비전이 중요한 이유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는 영국과 유럽에 360개 뇌호흡 센터를 개설하여 전 유럽인들에게 뇌호흡의 효과를 전해주겠다는 장기비전을 피력했는데, 한국에서 개발된 뇌호흡이 더 이상 한국인의 전유물이 아님을 직감케 했다.
소설가 박경리 씨는 ‘꿈꾸는 자가 창조한다’고 말했다. 많은 꿈을 꾸는 섬너스 박사는 그만큼 많은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밑천을 가진 것이 아닐까. 꿈은 창조의 어머니일 뿐 아니라, 두뇌개발의 열쇠라고 강조하는 섬너스 박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확신을 보여줬다. 아마 지금 이순간도 그는 두뇌에 날개를 다는 비전을 뇌 속에 생생히 아로새기고 있을 터이다.
글│정호진 hojin@powerbrain.co.kr
사진│김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