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미에 집착할까? 멋진 그림 한 점을 보고 오면 그 그림이 머릿속에 전세 놓은 듯 머릿속의 방과 방을 떠돌며 떠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멋진 이성의 잘록한 허리, 탄탄한 근육은 상상만으로도 배시시 미소를 떠올리게 한다. 왜, 우리는 그런 것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가. 미를 인식하는 뇌의 정보에는 아름다운 얼굴이나 육체의 구조적인 특징들, 예를 들면 좌우 대칭, 균형, 조화 같은 특징들이 포함되어 있다. 호감이 가는 상대를 인식하는 것은 종족번식과 생존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 감상에서도 이와 동일한 반응들이 나타난다. 예술을 인식하는 뇌는 예술만을 위해 따로 진화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의 오랜 미 인식 정보처리의 부대 효과로 추정된다.
미 인식과 관련된 뇌의 부위는 측좌핵(nuclues accumbens)으로 보고 있다. 측좌핵은 보상 시스템의 핵심 부위로 알려진 곳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멋진 이성을 보았을 때 반응하는 부위가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약을 복용했을 때 흥분하는 부위와 같은 곳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뇌의 흥분은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도 관여한다. 작품을 감상할 때 경험하는 각성은 예술작품이 주는 즐거움의 비밀을 유추하게 한다. 골똘히 예술의 수수께끼를 풀던 뇌가 각성의 쾌감을 통해 도파민을 분비시켜 행복감을 주기 때문이다.
감상에 영향을 끼치는 눈
망막에는 빛을 감지하는 많은 감광세포들이 분포해 있다. 이들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정보를 많이 얻을수록 대뇌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광세포의 밀도는 안구의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진다. 이곳에 맺힌 상만을 우리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망막의 이러한 특성은 감상자의 시선에 큰 영향을 끼친다. 그 요인들 중에 대표적인 것만 뽑아도 여섯 가지 정도가 된다. 그것들은 바로 그려진 대상, 그림 속의 밝기 대비 정도, 그림의 깊이 단서, 기하학적 패턴의 특징, 그림의 서술적 맥락에 따른 중요도, 시선의 방향 등이다.
그려진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눈의 운동 방향은 달라진다. 예를 들어, 대상이 얼굴일 경우 우뇌가 활성화되어 시선은 얼굴의 왼쪽에 머문다. 좌뇌가 활성화되면 시선이 오른쪽으로, 우뇌가 활성화되면 시선이 왼쪽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림의 서술적 맥락에 따라 작품의 내용이나 제목 등이 감상자의 시선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방 안의 모서리 등 소실점을 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시선을 유도하기도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물의 시선이 유도하는 감상자의 시선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시선은 감상자의 시선을 교묘하게 유도한다. 때문에 이러한 특성이 광고 같은 상업적인 이미지에 이용되곤 한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다른 존재의 시선을 파악하는 것은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지각심리학자 지상현 교수의 말대로 인간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단지 눈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머무는 곳일 것이다.
고흐와 쇠라, 그리고 마티스
망막세포는 빛이 어느 부위에 떨어지느냐에 따라 상이하게 색을 지각한다. 만약 색이 차지하는 부분이 작으면 색채혼합이 일어나고 크면 색채 대비 현상을 지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쇠라의 그림을 보자. 쇠라의 그림을 충분한 거리에서 보면 색채혼합이 일어나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색채의 동화가 발생한다. 색채의 동화란 파란색과 노란색이 인접해 있는 경우 파란색은 노란색으로 노란색은 파란색으로 서로 유사하게 지각되는 것을 말한다. 고흐의 그림에서도 색채혼합을 경험할 수 있다.
색채혼합을 경험할 만큼 작은 색 면은 많지 않지만 칠해진 붓 자국의 갈라진 올들에 의해 형성된 색 면들 때문에 이러한 경험이 가능하다. 고흐는 의도적으로 붓질을 거칠게 해 이런 작은 색 면들을 만들었다. 이처럼 여러 색의 작은 색 면들이 함께 있으면 그 부분에서 색의 혼합을 경험하게 된다. 다시 말해 파란색와 노란색이 합쳐져 녹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색의 혼합은 보색의 충돌을 완화해주어 자유롭게 보색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고흐의 그림이 활기차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러한 색의 조화 때문이다. 마티스의 그림은 색채 혼합이나, 색채 동화보다 색체 대비가 크게 느껴지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은 색 면이 크면서도 과감하고 청결한 보색 대비를 보여준다. 이런 배색의 과감성은 쉬운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
예술가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예술과 과학은 맞닿아 있다. 대뇌 시각피질의 통로에 있는 뉴런의 특징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그 특징을 이용해서 색면을 구성한다. 실험적인 예술가와 과학자, 그들은 알고 보면 참 많이 닮은 사람들이다. 물리학자 아르망 투르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최악의 과학자는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이며, 최악의 예술가는 과학자가 아닌 예술가이다.”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
도움 받은 책 《뇌, 아름다움을 말하다》지상현 저, 해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