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승자의 편이라고 하였던가. 우리 역사는 그 동안 많은 왜곡이 있었다. 잘 못 알려진 대표적인 사례를 보고 올바른 역사를 알아보자
# 단군은 신화일까요? 역사일까요?
단군은 역사이다.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쑥과 마늘을 주고 21일을 동굴에서 참으라 하였더니 호랑이는 도망가고 곰은 참고 이겨내어 사람이 되었고, 이에 환웅은 사람으로 변한 곰을 맞아들여 자식을 낳았더니 단군이더라는 단군신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과서에는 우리 민족의 건국을 ‘신화’로 소개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군은 엄연히 47대에 걸친 역사이다. 그리고 이는 2007년 정식으로 교과서에 등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신화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진행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35%에 달하는 참가자들이 단군은 신화라고 투표를 하였는데, 특히 10대는 전체 설문참여자의 60%가 신화라고 답하여 올바른 청소년 역사교육이 필요함을 절감케 하였다.
# 내시는 모두 거세한 남자이다?
내시가 성 불구자라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맞는 말이지만, 고려시대 내시들에게는 다른 말 이었다. 고려시대의 내시들은 문벌 집안의 아들이거나 전쟁에서 공을 세운 사람, 학식이 뛰어난 사람들 중 선발하여 왕의 최측근에 둔 엘리트 집단이었다. 이들은 부귀영화와 미래를 보장 받았으니 이는 거세한 성불구자와는 전혀 거리가 멀었던 것.
고려시대 보통 알고 있는 거세한 남자인 내시의 역할을 한 사람들은 ‘환관’ 혹은 ‘환자’라고 하여 궁중의 잡역을 담당하였었다. 고려 말 무신집권기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내시와 환관을 혼동하여 사용하였고, 점점 내시는 거세한 남자를 뜻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다.
# 바보 온달은 평강공주와 결혼 한 덕에 출세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온달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바보였는데 울보였던 평강공주가 말을 듣지 않자 바보온달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이야기를 하였고, 실제로 온달과 결혼을 하여 온달을 가르쳐서 무공을 세우게 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온달과 평강공주가 살았던 6세기에는 엄격한 신분제가 있었던 사회였다. 이런 사회에서 바보가 공주와 결혼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학자들은 온달은 왕권을 다지고 지지기반을 확보하기 위하여 평원왕이 새롭게 등용한 신진세력 이었을 것이라고 본다. 온달은 무장으로서 공을 세운 후 평원왕이 왕권강화를 위하여 등용, 평강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것이다. 물론 온달이 상급 명문가 자제가 아니었기에 두 사람의 결혼은 당시 강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점점 소설적 요인이 붙어 바보에, 거렁뱅이로 만들어 진 것이다.
글. 조채영 chaengi@brainworld.com
도움. 『한국사 상식 바로알기』 박은봉 지음, 책과함께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