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

그림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

Body & Brain

브레인 28호
2011년 06월 11일 (토)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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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새 직접 그림을 그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보는 것으로서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만나고 싶은 무의식이 만들어낸 욕구가 아닐까. 하지만 낙서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이다.

낙서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나를 보다
무엇인가 끼적이고 싶어 펜을 들어보지만 아무것도 그리지 못할 때가 있다. 자신의 형편없는 그림실력 문제를 떠나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낙서 하나 제대로 못할까라는 고민을 하던 어느 날.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진행 중인 ‘낙서 잘하기(낙서로 상상력과 손의 자유 찾기)’ 강좌가 눈에 들어왔다.

“허~ 낙서도 돈 주고 배워야 하나”라고 혀를 차는 사람도 있겠다. 하지만 막상 멍석을 깔아놓고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토요일 한낮,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있다. 처음엔 강좌 이름에 끌려, 자신의 그림실력을 더 쌓기 위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등등 다양한 이유로 강좌를 신청했지만 수업을 들으면서 그들이 발견한 것은 자기 자신의 모습이었다.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인정하기 싫었던 자신의 모습을 강렬하게 확인하게 됐다는 사람, 자신을 인정하고 나니 잘 그리고 못 그리고를 떠나서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는 사람, 말이나 글 이외에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았다는 사람, 마음이 자유로워짐을 느꼈다는 사람, 그림으로 자신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람 등 결국 그들이 그리고 있는 건 자기 자신이었다.



무의식을 드러내는 그림
우리는 어떤 행위를 통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을 드러내게 된다.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때에도 작품 속에 자신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또 어느 정도는 자신을 숨길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림은 좀 다르다. 그림 속에는 온전히 그린 사람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래서 우리는 그림 그리는 것을 불편해하거나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낙서 잘하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이준구 강사는 “우리가 그림을 자연스럽게 그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동안 형성된 손의 관성과 시각적 관념(틀), 이성적 사고 같은 것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림은 내가 살아있다는 걸 가장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는 행위이며 시각, 사고, 손, 감성의 집합체로서 인간이 갖고 있는 가장 많은 감각을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리는 행위에는 세상과 자신이 세운 잣대에서 벗어나 본연의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 오감을 깨우는 과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림은 직관적이고 본능적이다. 아기들은 말과 글을 알기 전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손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낙서를 하면서 논다.

우리는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매력을 느끼고 그와 교감한다.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보자. 먹고사는 문제가 걸려있다고 하지만 그들은 정작 다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린 게 아니라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결국 사람들이 그들의 그림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가령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이 그림이자 그녀의 전기인 것처럼 그림 속에는 그린 이의 삶이 녹아있게 마련이다. 화가들은 이상할 만큼 자화상을 즐겨 그린다. 왜 일까? 한 지인의 경우 그림을 처음 그렸을 때 무엇을 그릴까 망설이다가 주변에 있는 사물부터 하나 둘씩 그렸다고 한다.

때론 그림을 완성하고 자신의 그림에 만족할 수 없어 꾸준히 그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 고비를 넘기며 계속 그리다 보니 결국에는 자화상을 그리게 되더라고 한다. 꼭 자신의 얼굴을 그렸기 때문에 자화상이 아니라 자신이 이루고 싶은 희망이나 바람이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에 투사돼 있었다고.


그래서 그림은 직관적이다. 그리면서 무의식의 가지가 뻗어나가고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내면의 마음이 종이 위에 드러난다. 자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보자.

도움이 필요하다면 요즘에는 그림 그리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도 나와 있고 스마트폰의 앱을 통해서도 간단한 낙서와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스스로 자신에 대한 경계를 푸는 것이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사진·이윤환 stopnloo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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