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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의 힘은 바로 출산과 수유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옥시토신은 진통을 자극하여 분만을 유도하고 출산 후 젖의 분비를 돕는다.
엄마의 젖을 따라 아기에게도 흡수되는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의 관계 형성에 믿음이라는 기반이 되어주기도 한다. 이처럼 개인의 위대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옥시토신은 이외에도 많은 일들에 관여하며 인간의 몸과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축구 감독들은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한 포상으로 섹스 허용이라는 당근책을 제시하곤 한다. 그 말은 곧 경기 전엔 한동안 섹스를 금한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섹스와 축구,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속도가 관건인 축구 같은 운동의 경우 오르가슴 직전에 최고치에 오르는 옥시토신은 섹스 후 사람을 졸리고 피곤하게 해 선수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게 만든다. 섹스 후에 남자가 쉽게 깊은 잠에 빠지는 이유도 천연 수면제인 옥시토신과 프로락틴 덕분이다.
물론 경기 전 섹스가 모든 스포츠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양궁과 골프 같은 집중력을 요하는 경기인 경우에는 오히려 경기 전 긴장을 풀어주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돕는다.
오르가슴과 옥시토신
성행위를 하는 동안 남녀의 혈중 옥시토신 농도는 최대치에 이른다. 옥시토신이 많아지면 생식기 근육이나 골반 또는 항문의 괄약근이 규칙적으로 수축하게 된다. 때문에 절정에 이른 남녀는 혈중 옥시토신 농도가 높을수록 오르가슴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이때 옥시토신 농도는 정상치에 비해 세 배가량 높아지고 호흡 도 증가해서 1분에 60회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다. 맥박은 분당 180회로 뛰고 혈압은 220까지 올라간다. 절정에 달하면 천연 환각제인 도파민과 엔도르핀도 최고조에 오르게 된다.
여성의 옥시토신 수용체는 남성보다 다섯 배나 민감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훨씬 더 옥시토신을 잘 즐길 수 있다. 유념해야 할 것은 남성은 성기를 자극하고 2~4분 후 면 오르가슴에 도달하지만 여성은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는 것이다. 물론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데 옥시토신만이 관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황홀감에 관여하는 전달물질은 50여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옥시토신을 만드는 스킨십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민망할 때가 있다. 그들의 끊이지 않는 스킨십 때문이다. 도파민과 함께 ‘사랑’하면 떠오르는 옥시토신은 신체 접촉에 매우 민감하다. 연인들의 스킨십은 서로에게 옥시토신을 분비시키며 상대를 중독시킨다. 특히 분당 40회 정도 쓰다듬을 때 옥시토신이 다량으로 분비되어 기분이 매우 좋아진다는 사실을 학자들은 발견했다. 우리는 직관적으로 아이나 동물을 그와 같은 주기로 쓰다듬는다.
여성은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아 옥시토신의 작용도 더 활발하게 나타난다. 갓난아이를 안고 있거나 수유하는 산모의 냄새를 맡으면 옥시토신이 높아지면서 성욕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여성의 경우 옥시토신 농도가 올라가면 평소보다 성적인 접근을 허락하는 데 너그러워진다. 옥시토신은 정서적 안정감과 친밀감도 가져다준다.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는 상대에게 간단한 마사지 등 부드러운 신체 접촉을 통해 옥시토신 농도를 올려주면 상대의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상승폭이 줄어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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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를 안겨주는 옥시토신
신뢰는 사랑에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호르몬인 옥시토신도 신뢰와 연관성이 있을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스위스 학자들은 128명의 남성들을 실험했다. 실험은 흥미롭게도 주식게임의 방식으로 이뤄졌다. 실험자들은 투자자와 수탁자로 나뉘었고, 각 부분의 절반만 옥시토신을 흡입했다.
그 이후 이뤄진 주식게임의 결과는 옥시토신을 투여 받은 투자자들이 수탁자를 더 많이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투자하려는 순간 옥시토신 농도가 평소보다 높다면 당신은 펀드매니저에게 필요 이상의 돈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주식의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이 실험을 통해 주의해야 할 점은 우리가 옥시토신의 변화에 따라 남을 쉽게 믿을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배신감이 느껴지는 부분은 옥시토신이 분비된 당사자인 ‘나’는 상대를 전적으로 믿지만, 상대는 내게 분비된 옥시토신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실험에서 수탁자는 자신을 믿고 투자하는 투자자에게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가끔 균형이 깨진 사랑을 목격한다. 어머니와 자식의 사이에서,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 친구와 친구, 형과 동생 사이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는 일들은 너무도 흔하다. 그렇다고 서로의 사랑을 자로 재면서 살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혜롭게 사랑하기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오래도록 신뢰하며 사랑하기 위해 우리는 가끔 객관적인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의 ‘묻지마’식 사랑이 상대를 어리석게 만들지 않도록, 나의 신뢰가 지뢰가 되어 돌아오지 않도록 생활 속 옥시토신의 힘을 조절해보자.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
참고도서 《호르몬은 왜?》(마르코 라울란트 저, 프로네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