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할 때 상대가 내 속마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솔직해지기 두렵다면?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것보다는 혼자 있는 게 편안하다면? 누군가에게 상처 받을까봐 마음의 빗장을 닫고 있다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다만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은 마음의 문제가 아닌 바로 뇌의 문제이다. 뇌 속 정보처리 방식을 이해하면 뇌앓이 커맹(커뮤니케이션맹盲) 탈출, 이제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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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10억 모으기 노하우’에 대한 강의가 진행중이라고 하자. 아마 대다수 사람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메모까지 하며 들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별반 필요 없다고 생각되는 정보라면 아무리 들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이것을 뇌의 입력과 출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입력은 정보를 뇌에 넣는 것이고, 출력은 그 정보에 대한 반응이다.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뇌는 왜 귀를 막을까?
오감으로 입력하여 출력하는 과정에서 뇌는 입력된 정보를 어떻게 뇌 속에서 작동시킬까? 일본의 신경의학자 요로다케시는 정보의 입출력 과정을 방정식으로 정리했다. 즉 정보의 입력을 x, 출력을 y라고 가정한다. 그러면 y=ax라는 일차방정식 모델이 나올 것이다. 어떤 입력 정보 x에 대하여 뇌 속에서 a라는 계수를 곱했을 때 나온 결과, 즉 반응을 y라고 가정하는 모델이다.
이 a라는 계수는 뇌의 구성 원리로 볼 때, 어떤 입력이 있으면 거기에 대해 적절한 무게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 즉 정보를 판단하는 관념, 감정 상태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입력을 해도 출력이 없는 ‘a=0’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머니의 잔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자식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방 좀 치우랬지!”, “게임 그만 하고 공부해!” 등의 잔소리에 자식은 고개를 끄덕이는 척할 뿐, 사실은 하나도 듣고 있지 않다. 그 다음 날도 집에 오자마자 게임부터 시작한다.
이런 잔소리는 a=0이기 때문에 아무리 입력을 해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반대로 a는 무한대가 될 때가 있다. 이 경우 대표적인 예가 어떤 종류의 신념이 절대적인 현실로 작용하여 그것이 그 사람의 행동을 지배하는 경우이다. 갓난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의 경우를 보자.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신념이 a=무한대의 계수로 작용한다. 그리하여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아이의 눈빛만 바라봐도 그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a가 제로보다 크면 감정이 좋다는 것이고, a가 제로보다 작으면 싫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를 보았을 때 그 시각 정보 x가 입력되고 a가 플러스가 되면 y 행동도 플러스가 된다. 누구나 친한 사람이나 애인에게는 기쁜 표정으로 웃으면서 다가설 것이다. 그러나 싫은 상대가 오면 a는 마이너스가 되고, 결과적으로 y도 마이너스가 된다. 그 사람에게는 싫은 표정을 짓든지, 말을 해도 귓등으로 넘겨듣든지, 피하든지 어쨌든 마이너스 행동을 취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행위 의도를 인식하는 거울상뉴런
고차적인 기관이라고 생각해 온 뇌를 일차방정식으로 설명하니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의 입출력 과정에서 뇌의 작동 방식은 계산기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인간의 사회성이란 어떤 자극에 대해 적절한 계수 a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계수 a를 유연하게 컨트롤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계수 a의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아야 한다.
첫째, 나는 스스로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둘째,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 대학의 약학부에서 임신에서 출산까지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다. 이 비디오를 보고 남녀 학생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남학생과 여학생이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여학생 대부분은, “정말 좋은 공부였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반응을 보인데 반해, 남학생들은 “그런 내용은 고등학교 수업에서도 모두 배웠다”고 말했다.
이런 반응의 차이는 주어진 정보를 대하는 계수 a의 차이이다. 즉 여학생은 언젠가 자신도 아기를 낳으리라는 필요성 때문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로 생각하며 보았고, 남학생에게는 그 정보가 현실적으로 필요한 정보라기보다는 그 정도는 벌써 알고 있는 지식의 한 단면으로만 받아들인 것이다. 남학생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정보를 지식으로만 여기는 한 여학생과의 대화는 더 깊어지기 힘들다. 이런 상태에서 여학생이 ‘열심히 성의를 다해 이야기하면 통할 거야’ 생각하고 대화를 더 지속하려 한다면 그건 착각이다.
그러나 만약 ‘나도 언젠가 아버지가 되겠지’라는 현실을 인식하며, 여성의 출산 경험을 이해하고자 하는 계수 a를 가진 남학생이 있다면 그는 여학생과 대화를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뇌에는 ‘타인이 나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인식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바로 대뇌피질에 있는 거울상뉴런. 이 뉴런은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생리학자인 지아코모 라졸라티가 발견한 것으로 대뇌피질로부터 운동감각적 언어중추, 즉 우리가 말을 할 때 사용하는 근육을 발달시킨다. 이 거울상뉴런은 타자와 의사소통할 때 작동하며 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행위 의도를 인식하려 할 때 움직이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사람은 이 거울상뉴런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거울상뉴런이 발달되어 있는 사람의 특징 중의 하나는 상대의 단점에 대한 정보를 약점으로 감싸 안는다는 것. 과연 단점과 약점의 차이는 무엇일까? 비슷해 보이지만 인식의 차이가 있다. 단점이라고 하는 것은 정보, 판단일 뿐이다. 그러나 약점은 상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감정이 개입된다. 이때 계수 a는 플러스로 상승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반응이 나타난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보 처리 할 수 있는 뇌가 타인의 약점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잊지 말자. 우리 뇌는 다른 뇌에게 이해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인식할 때 무한 가동한다.
글│곽문주 joojoo@powerbrain.co.kr도움 받은 책│<바보의 벽│요로다케시>, <어떻게 세계가 머리 속에서 생겨나는가│마르틴 우르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