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줄기, 의식의 뿌리 뇌간

생명의 줄기, 의식의 뿌리 뇌간

Body and Brain

브레인 7호
2010년 12월 23일 (목)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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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뇌수두증(hydranencephaly)을 가지고 있는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을 때 의사들은 그녀가 길어야 2년 남짓의 여생을 식물인간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뇌의 80%이상이 손상되어 뇌의 바깥쪽인 대뇌피질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 살이 된 이 아이는 갓 태어난 동생을 안겨주면 입을 크게 벌리며 기쁨과 흥분에 찬 표정을 지을 줄 안다.

의식의 중심이라고 여겨졌던 대뇌피질 없이도 어떻게 이처럼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특이한 사례와 관련해서 생명 활동의 중심으로만 생각되던 뇌간이 기존의 생각과는 다르게 기초적인 인간의 의식을 형성하는 역할도 한다는 주장들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생명의 줄기이자 의식의 뿌리로도 주목받고 있는 뇌간의 역할과 의식과의 관계, 뇌간을 통해 생명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자.
 


▲ 무뇌수두증 환자의 MRI사진. 대뇌 부분이 없어 검은색으로 나타난다

없이는 못 사는 생명의 핵심 포인트, 뇌간

호흡을 잠시 멈춰보자. 멈추자마자 답답한 느낌이 들고 숨을 참는다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를 느끼게 된다. 산소 농도가 낮아지고 탄산가스의 농도가 높아지는 것이 감지되면 뇌간에서 가슴과 배 사이의 횡격막과 가슴의 근육을 움직여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숨을 쉬게 만든다. 격한 운동을 한 후 호흡을 조절하려 해도 잘 되지 않는 것은 뇌간이 산소 섭취를 위해 강제적으로 가쁜 숨을 쉬게 만들기 때문이다.

뇌간은 호흡뿐 아니라 잠시도 멈추지 않는 심장의 박동도 조절한다. 또 혈관의 수축과 이완, 내장운동, 하품, 기침, 재채기, 딸국질, 구토와 같은 생명 활동의 기초적인 반사작용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생명 활동과 관련된 여러 중추들이 모인 뇌간을 ‘생명중추’라고 부른다. 대뇌나 소뇌 부위에 있는 뇌혈관이 터지는 경우에는 비록 장애가 있더라도 살아날 수 있지만 뇌간에 출혈이 있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평소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적지만 생명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작용을 하는 곳이 바로 뇌간인 것이다.

생명의 파수꾼, 뇌간 트리오

뇌간은 우리 뇌의 가장 아래 부분에 위치해서 대뇌반구와 척수를 연결한다. 척추를 따라 내려오는 척수와 말초신경들을 뿌리로 보고, 대뇌를 꽃으로 본다면 뇌간은 대뇌를 받치고 척수와 연결시켜주는 줄기라고 할 수 있다.

뇌간은 중뇌(midbrain), 뇌교(pons), 연수(Medulla oblongata)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호흡중추와 더불어 심장을 비롯해 각종 불수의운동과 내장운동을 주로 조절하는 회로들이 뇌교와 연수에 위치한다. 중뇌는 뇌간의 가장 위쪽에 있는데 시각과 청각의 반사작용을 처리한다. 특히 중뇌의 윗둔덕(superior colliculus)은 원시 포유류들뿐 아니라 시각피질을 따로 갖는 인간에게도 중요한 시각처리 영역이다. 눈이 목표물을 향해 제대로 움직이고 빛의 세기에 따라 조절되는 등의 기능은 모두 중뇌에서 처리된다. 또 뇌간은 척수를 통해 뇌간으로 전달되는 몸 전체의 정보들을 대뇌와 소뇌로 전달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감정과 의식의 제1주자

기본적인 반사 외에도 뇌간은 스트레스와 공포, 욕구, 쾌락과도 관련이 깊다. 좀 더 복잡한 감정반응을 처리하기 위해 전문화된 변연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감정을 처리한다. 뇌간의 청반(locus ceruleus)은 뇌 전체로 뻗어나가는 노르에피네프린성 뉴런들이 모인 곳으로 만성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REM 수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과잉행동장애(ADHD) 등과 관련해 뇌과학자들이 주목하고 있는 부위다. 중뇌에 있는 복피개부(ventral tegmental area)는 쾌락의 호르몬 도파민을 통해 욕구와 성취의 기쁨을 느끼고 동기를 부여하는 보상회로의 일부를 이룬다. 이 때문에 코카인을 비롯한 중독의 직접적인 표적이 되는 부위이기도 한다.

동물들의 전형적인 행동들인 보행, 수면, 식사, 배설, 성행위를 조절하는 망상체(reticular formation)는 망상활성화 시스템(Reticular activating system)과 더불어 깨어 있는 각성상태를 유지하고 감각의 종류를 느낄 수 있게 한다. 만약 이 부분이 손상되면 의식이 없는 혼수상태(coma)에 빠진다. 또 어떤 학자들은 외향적, 내향적 성격의 구분도 망상체의 자극 특성에 따라 구분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대뇌피질이 없어도 존재하는 의식

지난해 스웨덴의 뇌과학자 비요른 메르케르Bjorn Merker의 연구논문 발표 이후 뇌간과 의식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우리들은 그간 대뇌피질이 없으면 생각할 수도 없고 인간적인 행동을 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뇌간만 남은 무뇌수두증 환자라도 사람을 알아보고 감정을 표현한다. 비록 시각에 결함이 있고 말을 못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아채고 웃음을 지으며, 즐거운 노래에는 행복해하고 슬픈 노래에는 우울해한다. 주목할 점은 그들의 행동이 동물적이기보다 인간만의 특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보여주는 웃음과 슬픔, 행복, 흥분의 반응은 영장류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행동들이다. 즉 우리의 뇌간은 오래전에 진화를 멈추고 자동적인 반응만을 처리하는 ‘파충류의 뇌’가 아니라 인간에게 맞춰 진화된 ‘인간만의 뇌간’이라는 것이다. 메르케르의 결론은 인간의 뇌간과 다른 하위 기관들은 대뇌피질 없이도 주변 환경에서 감각을 종합하고 동기, 정서, 행동을 연결하는 ‘일차적인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 인식과 같은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뇌피질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러나 사물을 감각하고 동기와 감정을 느끼고 행동하는 이상, 나를 ‘나’라고 인식하고 사과를 ‘사과’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해서 의식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뇌간과 마음

이처럼 생명의 중추이자 의식과 감정처리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뇌간은 대뇌와 변연계를 비롯한 다른 뇌영역과 어떻게 작용하는 것일까? 우리가 ‘심장아 느려져라’라고 주문을 한다고 해서 심장박동이 느려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해녀들과 세계적인 다이버들은 다년간의 실행과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심장박동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동작하는 뇌간이라도 생각과 감정에 의해 영향을 받고 회로의 특성이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뇌간은 뇌의 내외부의 신호들과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두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동시에 대뇌와 변연계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품 같은 단순한 생리현상에서부터 고차원적인 의식 활동 전반에 이르기까지 뇌간은 다른 영역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 하나의 영역이 아니라 여러 영역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병렬적인 처리를 해내어 나의 마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생명과 의식의 뇌간 깨우기

이러한 뇌간과 의식의 메커니즘을 생각하면 뇌간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약물뿐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과 행동을 통해서 조절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서는 뇌도 건강해야 한다. 건강한 뇌는 단순히 충분한 산소와 영양, 질병의 예방 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체와 정신활동을 충분히 효율적이면서도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 처리해낼 수 있는 회로를 갖춘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건강한 뇌간은 그 자체의 건강뿐 아니라 적절한 정보처리 회로를 갖추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다양한 수준에서 연결되어 있는 전체 두뇌의 정보처리 회로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얕은 호흡, 긴장된 어깨와 목의 근육, 불규칙한 수면, 욕구와 감정의 처리 방식, 사물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고 과정. 이 모두가 뇌로 공급되는 혈류 상태와 같은 직접적인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결국에는 뇌간의 회로 특성도 좌우할 수도 있다.

걷기와 달리기처럼 뇌혈류량을 증가시키고 심혈관계를 튼튼하게 만들어 뇌간에 전달되는 정보들을 바꿀 수도 있다. 또 명상이나 인간 본래의 안정된 에너지 파동을 회복하는 뇌간 운동도 뇌간의 활동을 의식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 중 하나다. 좀 더 간단하게 천천히 숨을 쉬어보자. 깊은 한숨 한 번에도 뇌간에 전달되는 정보가 달라진다. 의식을 자신의 내부에 둔다고 상상하면 더욱 좋다. 심장박동도 편안해지고 감정과 생각도 가라앉는다. 이처럼 의식적인 선택 하나가 뇌간의 생명 활동에도 영향을 미친다. 뇌간의 상태에 따라 편안한 감정과 생각이 만들어지고 다시 뇌간에 영향을 미친다. 뇌간을 조용히 깨워보자. 그러면 생명과 감정, 의식이 함께 건강해질 것이다.

글·김성진
daniyak@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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