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이 무엇보다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이다. 국내에서도 개인적인 특성을 무시한 채 획일적이고 전문적이지 못한 현 교육 실정에 대한 인식의 반향으로 창의력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무슨 일을 하든지 창의력은 작업의 과정 및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창의력이 발휘 된 상태와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의 공부나 작업은 속도에서부터 엄청난 차이를 낳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이에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자연과 그리고 흙과 더불어 상상력과 창의력을 높이는 자연학습현장을 찾았다.
아이의 두뇌는 수많은 자극과 경험을 통해 풍부한 정서적 발달을 이룬다. 특히 초등학생 시기의 정신적, 신체적, 사회적 발달은 뇌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특히 모든 경험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이 시기에 체험하는 자연과의 교감은 아이들의 뇌가 유연하고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복잡하고 건조한 도시의 풍경보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자연의 풍경이 사람의 뇌를 이완하고, 더 활기있게 만든다. 따라서 이런 풍부한 정서적인 경험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데 더 없이 좋은 계기다.
도시 아이들에게 시골의 풍경이란 언제나 낯설다. 쭈빗거리는 아이들과 함께 도착한 흙피리 학습장은 아이들에게는 낯선, 그러나 기자에게는 간만에 느껴보는 편안한 정취를 자아냈다. 이번 체험을 지도할 흙피리 선생님으로부터 일단 흙피리의 종류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흙피리의 종류는 오카리나와 훈, 그리고 꾸룩이 등이 있어요. 오카리나는 리코더처럼 취구(입김을 불어넣는 구멍)와 혀(엣지)가 고정되어 청아하고 깨끗한 정확한 음을 내고, 훈은 단소나 대금의 취구와 같고, 부는 사람의 입 모양에 의해 바람소리, 꺾는 소리, 거친 소리, 청아한 소리 등 자유롭게 낼 수가 있습니다. 꾸룩이는 새나 개 등 동물을 부르는 휘파람과도 같은 신호음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기자 모두 신기할 뿐이다.
손이 느끼는 것을 뇌도 느낀다
본격적으로 흙피리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흙은 공기와 물을 많이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판치기(판에 흙 치기)와 정성스런 꼬막밀기(반죽)를 통해 점토에 공기를 빼내야 한다. 흙을 열심히 발로 밟고, 손으로 만지고, 쓰다듬고, 때리면서 흙을 아주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한다. 아이들은 흙공예 수업이나 되는 듯 신이 나서 흙으로 달려든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부드러운 흙과의 교감은 이루어졌다. 촉촉하고, 부드럽고, 차갑고, 끈끈하고 또… 마치 ‘똥’같기도 한, 밀가루 반죽 같기도 한… 흙에 대한 아이들의 표현은 끝이 없다.
아이들의 손길을 타 부드러워진 흙을 가지고 먼저 흙통을 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소리를 내려면 통이 있어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데 북은 북통, 장구는 장구통, 기타는 기타통, 피리는 피리통이 있듯이 모든 악기에는 통이 있어 그곳에서 소리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숨을 쉬면 공기는 코로 들어가 가슴을 통해 아랫배까지 가요. 그리고 다시 숨을 내 뱉을 때 배에서 가슴 그리고 목을 지나면서 목구멍의 발성기관을 건드리게 되는데 그 곳이 떨리면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이 과정을 흙피리의 경우 흙통이 담당하는 거예요. 쉽죠?”
아이들은 이 작은 악기에도 사람 인체와 비유같은 원리가 담겨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놓치지 않는다. 먼저 손으로 주물러 손바닥만한 만두피같은 원판을 만든 후 검지손가락에 둥글게 말아서 원통을 만든다. 그리고는 원통의 한쪽을 조심스레 막는데, 이때 두께가 얇고 일정할수록 공명이 잘 되므로 정성스레 다듬는다. 그리고는 나머지 반대쪽도 막으면 공기가 든 흙통이 만들어 진다.
이제 각자의 개성대로 아이들이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기 시작한다. 흙통의 공기는 유지시키면서 겉모양은 새나 물고기 등 마음껏 만든다. 새모양 흙피리를 만드는 아이들은 머리와 가슴 꼬리 부분이 되게 흙을 밀고 당기고 눌러준다. 이렇게 전체 모양을 대강 새로 만들어 주고 나서 세밀한 작업을 하니 마술처럼 새모양이 되었다. 신기해하는 아이들은 이제 물고기 모양도 시도해본다. 머리와 몸통이 붙어 있는 물고기는 새 보다는 만들기가 수월한지 금새 만든다. 상상한대로 마음껏 흙피리가 만들어지는 기쁨에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신이 난 아이들에 비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오히려 기자다.
초벌구이가 끝나고 그야말로 인내심을 요하는 ‘문지르기’ 작업이 시작되었다. 소리라는 것은 조그마한 틈을 잘도 비집고 나가기 때문에 문지르기를 통해 구멍들은 메워주고 촉감을 부드럽게 해주는데 끈기를 갖고 열심히 문질러야 반짝반짝 윤이 나는 멋진 흙피리가 된다. 자신의 얼굴이 비칠 정도로 열심히 문지르는 아이들, 문지를수록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흙, 학습장은 쥐죽은 듯 고요하다. 아이들은 흙피리와 하나가 되어 버린 것 같다.
보고 느끼고 체험하는 오감자극 교육
이제 모닥불을 피울 시간.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아이들은 산에 올랐다. 높이 올라 갈수록 나뭇가지와 마른 잎사귀들을 많이 모을 수 있다. 바삭거리는 낙엽 위를 걸어 청량한 공기속을 한겨울에도 땀까지 뻘뻘 흘리며 나뭇가지를 모아오는 아이들.
이제 흙피리를 모닥불 중간에 놓고 연기만으로 살짝 구어 낸다. 흙은 갑자기 불로 때우게 되면 표면이 굳어져 속 공기가 열을 내어 팽창하여 터지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천천히 조심스레 구워야 한다.
모든 일에 그렇듯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조심스레, 그렇게 귀하게 대해야 하는 것을 체험하고 있음을 아이들은 알까?
열의 온도가 4백도 정도 되면 수분은 95%가 나간 것이다. 그러면 흙피리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불꽃이 직접 닿으면 흙피리 안으로 불이 들어가 빨갛게 달구어진다. 불이 흙피리 안으로 들어가 춤을 추기 시작하니 아이들도 덩달아 신이난다. 신이 나서 폴짝 폴짝 뛰는 아이들. 처음에는 빨갛던 흙피리가 누렇게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이제는 흙피리 보다 더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이 또 한번 나섰다. 흙피리를 물들이는데 필요한 솔잎을 모아오기 위해서다. 빨갛게 달아오른 흙피리를 차가운 솥단지 안에 넣으니 금새 굳어버린다. 흡사 매직쇼를 보는 듯, 모두 함께 주문을 외우는 아이들. 수리수리 마하수리, 흙피리가 되어라 펑~! 솔잎의 향긋한 연기를 흡수한 흙피리는 아름다운 소리를 얻는다. 드디어 요술피리 흙피리가 완성되는 순간, 아이들은 온몸으로 체율 체득한 이 기쁨을 평생 뇌에 각인하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 흔히 보던 흙과 나무가 피리로 변할 수 있다는 상상은 쉽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직접 흙을 빚어 보고, 불에 구워내어, 흙피리를 부는 체험까지, 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흙에서 새로운 마술피리로의 탄생을 경험하게 된다. 훗날 이러한 풍부한 작업들은 아이들의 뇌 속 신경세포를 다양하게 자극해 창의력과 상상력 그리고 정서적인 인성 발달로 이끌어준다.
인간은 평생에 걸쳐 새로운 기술을 배운다. 하지만 뇌 속의 신경회로가 다듬어지고 솎아지는 사춘기 이전은 그야말로 뇌가 세상을 향해 활짝 열려있는 시기, 그래서 모든 것을 쉽게 배우고, 빠르게 습득하는 ‘은총의 시기’라 한다. 즉, 만 일곱 살에서 열두 살까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저런 경험과 재능을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손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 이런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 숨쉴 수 있는 시간을 통해 자유롭고 유연한 창의력의 세계를 키워주자.
글·사진 | 안정희 ajhee@powerbrain.co.kr
도움말 | BR교육 www.brainedu.com, 흙피리 www.hrgpi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