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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포커스 홍승연 실장 |
1980년대 Goldstar, KBS 등의 CI(Corporate Identity, 기업 아이덴티티)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0여 개 기업의 CI 프로젝트를 진행한 국내 최초의 CI 전문기업 디자인포커스(대표 구정순 www.designfocus.co.kr). 디자인포커스는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CI업계의 아름드리나무다. 그 나무는 디자이너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등걸이 되고, 더 큰 무대로 나가기 위해 숨을 고르는 그늘도 되어왔다. 독특한 감각과 냉철함,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정교한 디자인의 세계, 얼마 전 웅진의 독창적인 CI의 디자인을 총괄했던 디자인포커스 홍승연 실장과 함께 그 세계를 만나본다.
브레인(이하 B) 디자인포커스는 국내 CI업계의 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이 궁금하다.
홍승연(이하 홍) 우리 회사는 디자인 사관학교라고 할 정도로 업계의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배출한 곳이다. 업계 최초 회사였기에 설립 당시에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함께했던 이유도 있고, 많은 양의 일보다는 좋은 일을 집중력 있게 하는 것을 중요시해온 기업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남들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과감한 시도들도 역량과 재미를 더해준다.
그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우리 회사는 매출 목표도, 영업부도 없다. 모두 디자이너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을 위해서다. 우리는 그냥 일을 즐기면 된다. 일이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작품성과 창의성으로 사회·문화에 새로운 시선과 개념을 심어준다는 자부심도 중요하게 여긴다. CI 디자인에는 창의적인 감성과 사회적인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회사 자체에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B 감성과 이성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는 디자이너에게는 감성이 더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홍 비즈니스와 창의성, 예술성이 공존하는 것이 CI라고 본다. 순수 미술도 시대를 반영하며, 사회적 이슈나 문화 주기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산업이나 미술이나 변화와 같은 어떤 의도가 있다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그 속에는 이성적인 판단과 개념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좌뇌를 쓴다 우뇌를 쓴다 말하지만 실제로는 두 부분이 분리될 수 없는 것과 같다.
B 최근 작업 중에서 감성과 이성의 조화가 잘 이뤄진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홍 사실 지금까지의 CI는 기술적인 측면이 좀 더 부각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대적으로 예술적이고 감성적인 접근에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게 사실이다. 최근 웅진 CI의 경우,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요구사항의 전부였다. 동향 조사 등의 기존 과정을 배제하고 미술관을 찾고 예술 작품들의 디테일이나 색상 등을 보면서 창의적이라는 콘셉트에 감성으로 접근했다.
하지만 이렇게 감성으로 똘똘 뭉친 결과라도 그 속에는 독특하다는 반응을 유도하려는 이성의 치밀함이 숨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성과 이성이 조화된 창의성은 상품을 넘어 사회나 문화의 창의적인 생각과 시선에 영향을 주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B 디자인이 사회·문화에 창의적인 시선을 갖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홍 디자인은 선을 그리는 작업이지만 창의성은 선과 틀을 없애는 과정이다. 선과 틀은 나 자신 속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회와 문화 속에 존재한다. 그러한 틀을 깬 작업 중 하나가 바로 국민은행 KB, ‘별’ 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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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2002년 월드컵 바로 전이었다. 간판 가득한 글씨와 현란한 빛으로 밤을 비추는 간판 문화는 지금보다 더 심했었다. 틀을 깬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다. 그런데 휘황찬란한 간판들 속에서 밤하늘의 별처럼 떠 있는 작은 별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아주 조그만 로고 하나가 그 선을 깬 것이다. 그리고 이후 다른 기업들도 함께 그 선을 넘기 시작했다. 요즘 간판 문화의 사회적인 이슈화도 그것의 일환으로 나오지 않았나 자화자찬해본다. (웃음)
B 그렇다면 우리나라 전반의 창의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홍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창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밥상만 보더라도 다양한 색채의 반찬에 젓가락과 숟가락을 자유롭게 쓰며 국과 밥을 번갈아가며 먹는다. 이 얼마나 창의적인 밥상인가. 그리고 보통 아침에 일어나면 혼자가 아닌 주변에 두세 명의 가족이 존재한다. 이것도 충분히 창의적인 가족문화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혼자서 스테이크에 감자 하나 달랑 먹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창의적이다. 색색의 반찬을 먹고 가족과 함께하는 창의적인 생활 문화 속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실전에서는 창의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다. 교육이나 기업 그리고 부모님들의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 같다. 의무적으로, 말로만의 창의력이 아닌 틀을 깰 수 있는 진정한 창의력이 무엇인지 더 연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B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을 위해 뇌에 시동을 거는 방법이 따로 있나?
홍 주말에는 디자인 분야는 완전히 관심을 접고 경제, 문화, 패션 등을 읽을 수 있는 생활 잡지를 많이 본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픽 디자인을 하기 위해서 그래픽 디자인을 하면 안 된다. 모순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은 선입견을 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면 유사한 것밖에 나올 수 없다. 다양한 분야를 통해 큰 이미지를 그리고 난 후에야 그래픽 디자인을 본다. 우리 회사는 아이디어 회의에 사장님부터 행정업무를 보는 직원까지 회사의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한다. 사실 아이디어라는 건 누구에게서 나올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B 마지막으로 본인의 미래를 어떻게 상상하는가?
홍 디자인과 연관해서 경영 공부를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여든의 나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뇌가 굳어 있지 않아야 할 것 같다. 늙어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다. ‘안 하던 짓’을 많이 해서 뇌가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까.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한다. 사람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니만큼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도 인종이나 나라 등 한 그룹으로 묶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이렇게 살다 보면 말랑말랑한 뇌를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 | 사진·김경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