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은 뇌의 딸국질?

강박증은 뇌의 딸국질?

닥터 브레인

뇌2003년11월호
2010년 12월 08일 (수)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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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30대 후반의 회사원인 P씨가 클리닉을 방문하였다. 그는 매우 피곤해 보였고 지쳐있었으나 누가 보아도 깨끗한 차림의 외모는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이었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자신의 증상을 힘들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위하여 그가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은 평균 3시간 이상이었고, 어떤 날은 5시간이상을 소모하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9시까지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그가 일어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 3~4시경이다. 이러니 출근 후에는 항상 졸리고 피곤하여 맑은 정신으로 지내 본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가 화장실에서 보이는 행동을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먼저 용변을 보기 위해 변기 전체에 지저분한 것이 묻어 있는가를 관찰하여 휴지로 변기를 깨끗이 닦는 데만 약 30분 이상 소모하며, 그후 손을 5분 이상 씻고, 면도와 양치질도 각각 20~30분씩 한다는 것이다. 이후 머리 감고 비누칠하고 샤워하고 수건으로 닦으며, 머리 손질, 로션 바르기 등을 반복적으로 오랫동안 해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는 이외에도 의자에 앉을 때 항상 더러운 것이 묻어 있는지를 몇 번씩 확인한 후에야 앉을 수 있으며,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에도 숟가락, 젓가락을 꼼꼼히 살펴보고 몇 번씩이나 휴지로 닦은 다음에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P씨의 이런 증상은 본인의 기억으로는 고등학교 시절 몸에 조그마한 벌레에 물린 것인데도 불구하고 걱정이 되어 온몸에 약을 몇 번씩 바르곤 한 이후부터 조금씩 심해졌다고 한다. 군대 생활을 할 때에는 행정병을 하면서 도장을 찍을 때마다 인주가 손에 뭍을 것 같아 손을 반복해서 씻었다. 이후 샤워나 세수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점차적으로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해진 것이다.

떠나지 않는 생각, 원치않는 행동

강박증은 영어로 obsessive-compulsive disorder라고 하는데, obsession(강박생각)과 compulsion(강박행동)이 나타나는 일종의 불안장애이다.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도 마음 속에 어떠한 생각이나 장면 혹은 충동이 자꾸 떠올라 이로 인해 불안을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일정한 행동을 하는 병이다. 위의 P씨는 더러운 것을 참지 못하고 더럽다는 생각이 들면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하여 지나칠 정도로 오랫동안 씻음으로 자신의 불안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더럽다’는 생각은 강박생각이며 ‘손을 씻거나’ 혹은 ‘샤워를 하거나’ 하는 것은 강박행동이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더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며, 청결하고자 하는 욕구 역시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다. 인간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떠한 생각이 머리 속에 떠오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이 불안을 일으키고, 그 불안을 대응하는 각각의 태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씻고 또 씻고, 보고 또 보고

강박증상 중 가장 많은 증상이 더러운 것에 대한 공포와 걱정, 이에 따른 청결행동이다. 위의 예를 든 P씨가 여기에 해당된다. 손님이 왔다가면 그 사람이 지나간 자리는 모두 깨끗하게 청소를 해야 하기도 하고 심지어 매번 카페트를 세탁하는 경우도 있다.

의심과 이에 따른 확인행동도 많은 데 문을 잠궜는 데도 안 잠근 것 같아 몇 번씩 확인하고, 그래도 안심이 안 되어 가던 길을 되돌아가서 다시 확인한다. 학생들인 경우 답안지에 답을 쓴 후 실수하지 않았나 하여 같은 문제를 몇번씩 확인하기도 하며, 자신의 수험번호를 정확하게 쓰지 않은 것 같은 불안 때문에 확인하느라 정작 시험을 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다음으로 흔한 행동은 대칭에 대한 강한 욕구와 이에 따른 반복적 행동이다. 모든 것을 대칭으로 두어야 안심이 되는데, 책도 책상에 직각으로 놓아야 하고, 목욕실에 수건도 늘 같은 길이로 나란히 펴져 있어야 하며, 식탁 위에 반찬그릇도 똑바로 줄지어 놓여져야 편안하다. 숫자도 대칭이 되는 8자를 가장 좋아한다. 만약 직각과 대칭이 되지 않으면 뭔가 나쁜 일이 일어 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견딜 수 없다. 또 근거없는 믿음에 자신이 갖혀 있는 경우도 많다. 왼손으로 하는 모든 일은 재앙이 따를 것이라는 믿음으로 왼손은 항상 안 보이게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든지 심지어 왼손을 절단해 버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폭력적인 생각의 강박증상도 비교적 흔한 편이다. 자신의 아이를 해칠 것 같은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어 아이를 돌볼 수가 없는 경우도 있다. 주위의 칼이나 연필 등 뾰쪽한 물건이 있으면 그 물건으로 아이를 찔러 죽일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기도 하고, 또는 아이를 데리고 높은 곳에 올라가면 아이를 밀어 버릴 것 같은 충동이 들어 항상 아이가 안전한가 혹은 죽은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며 확인한다.

숫자에 대한 강박관념을 가진 사람은 특정 숫자에 개인적인 의미를 두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4는 저주받은 숫자이며 한문의 죽을 사死자와 같기 때문에 4자와 관련된 일을 할 수가 없다. 줄을 설 때나 의자에 않을 때도 4번째는 항상 피하고, 4각형의 도형을 보면 연필로 둥글게 만들던지 삼각형, 또는 오각형으로 바꾸어 버려야 안심이 된다.

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병

위의 열거한 증상들은 꼭 병원에 오는 환자에서만 볼 수 있는 증상들은 아니다. 실제 생활이나 주위 가족, 친구들에게서도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우리가 그저 ‘저 사람은 좀 별나’, ‘좀 유난스러워’ 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강박증은 일반 인구의 약 2~3%정도가 되는 흔한 병이고 인간에게 장애를 가져오는 10번째의 질환으로 WHO에서는 보고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사람이 치료가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또한 환자의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고, 철저하게 감출 수 있다는 속성 때문에 본인은 물론 주위에서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강박증의 원인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어릴 적 항문기(anal stage)에 엄격한 대소변 가리기 훈련을 받았다든지, 초자아(superego)의 힘이 과도하게 커져 강박증상이 생긴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일반인은 물론 정신과 의사들에게조차 이해하기 힘든 설명이다.

다음으로 학습이론에 의한 것으로, 강박증환자들은 정상적으로 아주 짧은 시간에 나타나는 공포나 불안을 일으키는 생각 혹은 충동이 있을 경우 그 생각이나 충동을 없애기 위한 행동을 한다. 아무리 심한 공포나 불안을 일으키는 자극이라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불안이 없어진다. 그러나 강박증환자들은 불쾌한 자극을 빨리 피함으로서 당장 불안은 급속하게 없어지지만 그 다음 자극을 경험하게 되면 다시 회피하는 반응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즉, 자극을 피함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불안의 감소를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됨으로서 강박증상이 계속된다는 이론이다.

강박증은 정신병 아닌 뇌의 ‘딸꾹질’

최근 실제 환자의 뇌를 영상화할 수 있는 도구인 양전자단층촬영(PET), 자기공명영상(MRI)으로 검사를 해보면, 전두엽과 미상핵에 이상이 있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폰 이코노모 뇌염’을 앓고 난 환자의 후유증으로 강박증상을 보였다는 것을 관찰하였고, 뇌손상이나 뇌종양에서도 강박증상이 관찰된다는 사실은 분명 뇌의 신경회로의 이상과 관련이 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에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이라는 것이 있는데, 강박증은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에서 나타난다. 전두엽 및 미상핵 부위에 세로토닌 신경계가 특히 많이 분포되어 있다. 강박증에 사용하는 약물은 대부분 세로토닌의 기능을 증가시키는 효과 때문에 증상이 좋아진다.

강박증은 뇌가 딸꾹질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위험이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위험신호를 보내게 됨으로서 항상 불안하고 성가신 컴퓨터인 것이다. 만약 뇌를 컴퓨터에 비유한다면 강박증은 계속해서 잘못된 메시지를 다른 부분으로 보내는 작은 컴퓨터의 칩chip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뇌의 한 부분에서 생각, 충동, 그리고 공포 등을 나머지의 뇌 부분에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약간의 공포 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아주 큰 공포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예를 들면, 공중 화장실에 갈 때 강박증환자의 뇌는 몇 번이고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이것이 강박사고이다. 다음은 이러한 메시지에 대하여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반복적으로 손을 자꾸 씻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강박행동이다.

지나친 책임감이 문제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잘못된 평가를 한다. 엄습하는 생각에 대해 자기자신이 이러한 생각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단순히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 위험에 대해 적절히 평가를 한다면, 단지 우울이나 불안만 나타난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대해 자신이 완벽하게 조절하고 책임을 느낀다면, 이것을 억누르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억누르려고 하면 잠깐동안에는 가능하나, 곧 그 생각이 오히려 더 강하게 들게된다.

또한 강박증환자들은 잘못된 가정을 많이 한다. 어떤 행동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곧 실제 행동을 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생각과 행동은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어떤 생각이 든다고 하여 그것이 곧 자신이 그러한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아이를 죽일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든다고 하여, 곧 자신이 실제 아이를 죽이는 행동을 한 것은 아니다. 생각은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렇다고 생각이 곧 행동은 아닌 것이다.

글│권준수 kwonjs@snu.ac.kr
서울의대 정신과학교실 부교수.
국내 최초로 서울대병원에 강박증클리닉을 개설하여 운영중이다. 저서로는 <나는 왜 나를 피곤하게 하는가>가 있다.
http://plaza.snu.ac.kr/~o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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