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5편] 음악을 연주하며 배우게 되는 것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5편] 음악을 연주하며 배우게 되는 것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브레인 78호
2019년 12월 17일 (화)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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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리지 않지만 보려는 마음이 커진다

악보는 작곡가의 음악언어가 쓰여진 책이다. 음표는 작곡가가 들려주는 줄거리고 음악용어, 악상기호는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표현수단이다. 연주자는 음악언어들의 몸짓을 작곡가가 의도한대로 전달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다.

연주자와 작곡가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동시대인이 아닌 이상 서로의 커뮤니케이션은 오로지 악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연주자가 악보를  보는 순간 음악언어가 소리로 들리기 시작하는 정도라면 꽤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차적인 단순 해석을 넘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작곡가의 진짜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상을 예로 들자면 "어디야?", "지금 뭐해?"라는 질문은 "보고 싶어", "네가 궁금해"라는 다른 표현 방법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능력 말이다. f(포르테, 크게)라 적어놓았지만 단순히 큰 소리를 원하는 건지, 앞에서부터 점점 쌓아올린 음들의 폭발적인 충만감을 표현하는 건지, 작은 소리들의 행진에서 나오는 소심한 포르테인지를 알아 차려야 하는 것과 같다.

연주자는 작곡가와 끊임없는 대화가 필요하다. 연주는 들리지 않는 그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상대방의 언어를 보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도 보인다. 무덤에 있는 모짜르트, 베토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보려는 마음을 가지면 들리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2 감각을 깨우는 연습이 된다

연주자는 늘 감각을 깨우는 연습을 한다. 피아노 연주의 고수가 되어 갈수록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사이를 '찾아가며' 치지 않는다. 이미 건반 2개, 3개, 4개의 간격을 정확히 짚을 줄 아는 감각이 발달 되어 있다.

음과 음 사이의 거리 뿐 아니라 음을 동시에 칠 때 고르게 소리를 내는 방법이 몸에 배어 있다. 힘이 더 들어가는 손가락은 힘을 빼고 덜 들어가는 손가락은 힘을 주며 균형 감각을 키우기 때문이다. 손가락의 힘 조절이 가능해지면 음의 세기를 성부에 따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멜로디 성부가 여러 성부와 동시에 나와도 도드라지게 들리게 연주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힘의 조절은 음악의 빠른 진행 중에 순간적으로 적용되도록 연습한다. 찰나에 대한 빠른 대처는 감각이 깨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감각이 깨어 있으면 부분에 대처하는 능력 뿐 아니라 전체적인 흐름에 대한 안목도 커진다.

#3 태도(매너)를 배울 수 있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무대 매너이다. 무대로 걸어 나갈 때의 태도, 인사하는 방법, 연주가 끝난 후의 표정 같은 것을 알려준다. 처음엔 연주 자체에만 신경 쓰다 보니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무대로 첫 발을 떼어 걸어 나가는 순간 연주가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태도는 그 사람의 향이고 습관의 엑기스다. 무대를 서는 경험이 많아질수록 태도는 걸음걸이와 표정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연주를 보러 온 사람들을 포용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러나는 모습이 매너로 나타날 때 그 연주는 더 감동이 된다.


글. 이지영 leemusiclab@gmail.com | www.leemusiclab.com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University of Wisconsin 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지영은 피아니스트, 음악방송인, 공연기획자, 콘서트가이드, 음악큐레이터 등의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삶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삶’이라는 화두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2019년 한국뇌과학연구원 발행 <브레인>에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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