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4편] “우리 모두는 교육자다”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4편] “우리 모두는 교육자다”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브레인 77호
2019년 10월 25일 (금)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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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두 교육자다. 가정에선 내 아이를 가르치고, 사회에선 후배를 가르친다. 심지어 상사를 가르치기도 한다. 제대로 가르친다는 건 무엇일까?

진정한 교육은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거다. 주입식 교육만으로는 참 공부가 될 수 없다. 음악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엄마의 입 모양을 보고 따라하며 말을 배우듯 배움의 초기에는 모방이 최고의 선생이 될 수 있다. 모방이 스스로의 선택과 배움에 대한 갈증에서 시작한 거라면 더욱 그렇다.

특히 음악이나 예술 분야에서는 교육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주로 일대일의 교육이 많아서 교육자와 학생 상호간의 신뢰가 쌓일수록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자가 자신이 연주하는 스타일과 음악적인 해석을 그대로 쫓아하게 가르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매일 다른 반찬이 알아서 나와서 창의적인 다른 메뉴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이치와 같다.

음악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생각해야 할 일이 많다. 악상, 빠르기, 리듬, 페달, 전체적인 흐름 등을 계속해서 다듬어 가야 한다. 완성된 글을 쓰기 위해서 계속해서 읽어보고 수정하는 일과 비슷하다. 사람마다 글의 문체와 표현력이 다르듯 음악을 해석하고 연주하는 방식도 다르다. 글을 수정할 때 글쓴이의 문체를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음악도 각자의 고유한 음악적 해석과 표현을 무시하고 교육자의 해석대로만 만들어 갈 수는 없다. 그것은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가로 막는 일이다.

#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페달을 어디서 밟고 어디서 떼어야 할지 상세하게 악보에 표시를 해줘야 하고, 한 호흡으로 연주해야 하는 프레이즈(phrase)를 일일이 나누어주어야 할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가르쳐 주는 대로 해온 습관 때문에 알려줄 때까지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다.

교육자로서 주의해야 할 점이 바로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하고는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자각이다. 너무 친절하게 전부를 알려주려고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학생들이 호기심과 질문을 가질 수 있게 가르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혼자서 고민하고 실험해본 음악은 소리부터 다르다. 예를 들어 음악 용어 'espressivo'는 '표정을 풍부하게'라는 뜻인데, 이는 각자 해석에 따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대형 오케스트라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듯 큰 소리로 웅장하게 연주할 수도 있고, 플룻의 단선율을 눈물이 나도록 구슬프게 연주하듯 표현할 수 도 있다. 음악 용어가 수학처럼 정확한 답이 나오는 부분이 아니다 보니 'espressivo'도 저마다의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연주자가 혼자서 고민한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음악적 맥락 안에서의 espressivo는 어떻게 연주해야 할지 저절로 파악이 된다. 책을 많이 읽고 독후감을 많이 써 본 사람일수록 문맥이 자연스럽게 파악되는 것과 같다.

대입 시험에서 나온 시에 관련된 문제를 작가 본인이 풀었는데 겨우 60점을 맞았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이것은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시험 문제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재해석 되어 국어시간에 천편일률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토벤과 모짜르트의 곡을 작곡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교육자의 해석대로 학생들을 똑같이 연주 시키는 것과 같다. 음악도 AI가 더 잘하는 시대가 찾아왔다. 사람이 연주했을 때 뭔가 다른 음악을 해야 한다. 그것은 교육자가 해석해 놓은 세상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며 깨달아 가는 과정을 음악에 담는 일이다.

테크닉은 AI가 더 뛰어날 수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철학, 감성, 표현은 모방할 수 없다. 교육은 스스로 찾을 수 있게 물음표를 던져주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 이후는 바로 직접 찾아가며 깨닫게 되는 과정이고 그 과정이 철학으로 승화될 때 예술은 완성된다. 이 때 교육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다. 예술 작품을 완성 시킬 수 있는 당신은 진정한 교육자인가!

글. 이지영 leemusiclab@gmail.com | www.leemusiclab.com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University of Wisconsin 에서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지영은 피아니스트, 음악방송인, 공연기획자, 콘서트가이드, 음악큐레이터 등의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삶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삶’이라는 화두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2019년 한국뇌과학연구원 발행 <브레인>에 기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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