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1편] 몰입 Flow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1편] 몰입 Flow

이지영의 음악 속의 삶

브레인 74호
2019년 03월 30일 (토)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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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감정을 억누르는 자제력보다는 감정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빨리 깨닫고 원래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는 자기인식(self-awareness) 능력이다.“

음악에서 리듬(rhythm)은 생명이다. 맥박이 뛰듯, 심장이 뛰듯 규칙적인 음의 흐름이 필요·하다. 연주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울 때 그 흐름 속에서 연주자와 관객은 하나가 된다. 몰입(flow)이 된다.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몰입했을 때의 느낌을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라고 했다. 물 흐르듯 편안한 연주는 연주자가 자신이 연주하는 곡과 하나가 된 듯한 일체감을 느낄 때 이루어진다. 온전히 음악과 하나 되는 시간.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은 연습과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과연 몰입을 연습할 수 있을까?

# 지금 이 순간도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돈다. 어제 미팅에서 내 생각을 충분히 전달했는지, 오늘 새로운 이들과 만나서 어떤 얘기를 나눌지,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연습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손가락은 연습을 하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다. 생각의 여행을 멈추고 의식을 한 곳에 머물게 한다면 연습의 효율성은 극대화된다.

타임워치는 고마운 친구다. 몰입을 연습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연습 도중 딴 생각이 들 때마다 타임워치의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다. 멈춘 시간은 연습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목표한 연습량에 도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다.

삶에서도 타임워치가 필요하다. 몰입된 삶, 물 흐르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는 삶은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몰입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걱정, 두려움, 후회 같은 감정이 올라오면 몰입감은 떨어진다. 감정에 사로잡히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이 떨어지면서 심리적 균형감각, 즉 자신의 리듬을 잃게 된다.

# 일상 속에서 타임워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수단은 호흡이다. 호흡은 자신의 의지로 상황에 맞게 조절할 수 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긴장된 상황일수록 좀 더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다 보면 잠시나마 자신의 상태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생각과 감정에 빠져 있는 마음을 추스릴 수 있다.

호흡은 타임워치의 일시정지 버튼처럼 나의 일상에 쉼표를 찍어 준다. 하루에 5분이라도 잠시 눈을 감고 편히 앉거나 서서 호흡에 집중해 본다. 숨을 크게 내쉬면 부정적인 감정이 떠나가고, 들이쉬면 긍정적인 생각이 들어온다고 상상한다. 날숨과 들숨에 따라 나의 의식도 명료해진다. 실제로 생각이나 감정에 빠질 때마다 이렇게 호흡을 하면 내가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호흡은 표현력과 전달력을 키우기 위해 음악가들에게 꼭 필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 선율을 세분화해서 다양하게 연주하는 기법)을 살려서‘, '프레이징(phrasing, 한 호흡으로 연주할 수 있도록 그룹화하는 기법)을 사용해서’라는 표현에는 어디까지 호흡을 이어가고, 어디서 호흡을 끊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음악언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호흡이 반드시 필요하다. 말을 할 때도 어디서 끊어주느냐, 얼마나 쉬었다가 다시 말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전달력이 달라지듯 음악도 그렇다. 호흡이 자연스럽고 편안할 때 연주자는 자기 자신과 연주에 몰입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좀더 명확하게 손끝으로 전달할 수 있다. 물 흐르듯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주를 관객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

물론 연주자가 호흡을 통해 감정을 다스릴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특히 복잡하고 어려운 선율을 연주할 때에는 충분히 연습을 했음에도 무대 위에서 괜히 마음이 조급하고 불안해진다. 흐름이 깨진다. 불현듯 ‘혹시 틀리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찾아와서 집중력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두려움이 꼭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다. 두려움은 반복 연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해 준다.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는 자제력보다는 그러한 감정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빨리 깨닫고 심리적인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는 자기인식 능력이다. 호흡을 통해 자신이 두려움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게 되면 그러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힘, 자신감과 평온함을 빨리 되찾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몰입은 호흡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는 반복적인 연습으로 얻게 된다. 물이 흐르는 듯한 자연스러움은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있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 긍정적인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힘에서 나온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에 빠져 있음을 스스로 깨닫고 심리적인 안정감과 균형을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삶의 리듬을 잃지 않는 비결이다.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몰입의 시작이다.


글. 이지영 leemusiclab@gmail.com | www.leemusiclab.com

음악인문학자 이지영은 피아니스트, 음악방송인, 공연기획자, 콘서트가이드, 음악큐레이터 등의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삶 속의 음악, 음악 속의 삶’이라는 화두로 대중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브레인>을 통해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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