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신경외과가 드라마틱한 이유

[사이언스카페] 신경외과가 드라마틱한 이유

왕규창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학 교수

뇌2003년5월호
2010년 12월 08일 (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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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 중의 하나이다. 우리의 실체가 담겨 있는 곳이라고도 생각된다. 실제로 소아신경외과 의사로서 어린이 환자의 뇌를 만지면서, 때로는 그 일부를 도려내면서 ‘여기에 이 아이가 담겨 있다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신경외과는 방송 드라마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신경외과 질환은 어려운 것들이 많아 환자나 보호자들이 처한 상황에 극적 요소가 많다. 의사들의 성격 특징도 뚜렷한 편이어서 작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캐릭터가 되는 모양이다. 질환의 예후도 다양하여 사망하는 환자가 적지 않지만 극적으로 호전되는 경우도 상당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신경외과의사들의 성격은 유난히 꼼꼼한 사람과 무척 급한 사람으로 나뉘고, 그 중간은 별로 없다. 물론 짧은 시간에 양 극단을 오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뇌는 부위별로 역할이 다르고 그 중에는 매우 민감한 부분(뇌조직뿐 아니라 혈관도 이에 포함된다)이 있다. 병소가 이 부위에 자리 잡고 있으면 병소를 모두 제거하지 못하고 남길 가능성과 뇌 손상에 의한 기능적 장애를 남길 가능성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을 해야 한다. 나는 수술을 할 때면 지뢰를 제거하는 작업을 연상하곤 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적지 않게 수술자의 ‘감’에 의존하여야 한다. 대범해질 수가 없는 직업이다.

우리 몸은 뇌를 최우선적으로 배려하도록 되어 있다. 뇌는 그 자신의 무게와 부피에 비하여 훨씬 많은 혈액과 산소를 심장과 폐로부터 공급받는다. 또한 뇌는 포도당과 산소만 있으면 잘 유지된다. 뇌에 대한 이러한 조물주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뇌는 저산소증과 저혈당증에 가장 민감하다. 특히 산소는 우리 몸에 비축량이 적어 산소 공급이 수분만 차단돼도 뇌는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는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러한 현상은 조물주의 자비이다. 어떤 개체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여 부득이 생을 마감하여야 할 때 조물주는 우선 뇌의 스위치부터 내려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거기에 적당한 내인성 몰핀 등을 분비시켜 안락감도 준다. 만일 온몸이 망가지고 썩어 들어가도록 뇌가 멀쩡하여 사망에 임하는 개체가 동반되는 고통을 모두 경험하여야 한다면 너무도 가혹한 일일 것이다. 뇌의 취약성에는 성스러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조물주의 자비이지, 뇌를 보호해야 하는 신경외과 의사에게는 시련이다. 최악의 상태에서 수분이 경과하면 뇌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들어선다. 자연히 의사들의 성격은 급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의 급박한 업무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들이 야속해지고 이들에게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수술장 밖에서도 극적인 요소는 계속된다. 삶과 죽음, 건강과 장애를 교차하며 하루를 보낸다. 적당히 무뎌져 있어야 한다. 냉정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지 않으면 일이 안 된다.

그러나 간혹 갖는 한가한 시간에 장거리 여행을 하다보면 한 편의 영화와도 같던 환자들의 삶의 조각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나의 역할도 돌아보게 된다. 그들이 즐거워한 모습 보다는 괴로워한 모습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가슴 아픈 안타까움이 있었는가 하면 아름다운 이별이 있었다. 나이를 초월하는 놀라운 성숙함으로 삶을 정리하는 어린이, 그리고 그들을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도 보았다. 삶을 깊이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직업이 있다면 그 중에 신경외과 의사도 포함될 것이다.

글│왕규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외과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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