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한 교육장, 땀을 뻘뻘 흘리며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아이들, 심지어 물구나무서서 걷기까지 한다. 무슨 일일까? “저희 졸업식 준비하는 거예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경기남부학습관 손민형 군의 답이다.
▲ 지난해 11월 미래교육 포럼에서 벤자민12단 물구나무서서 걷기를 선보이는 벤자민학교 학생들.(사진=전은애 기자)
우리나라 학교현장에서 체육수업이 오랫동안 소홀히 되었다. 체육은 뛰어난 자질이 있어 운동선수로 활약할 운동부 학생이 하고, 대부분의 학생은 주1~2회 체육시간에 차례를 기다렸다가 잠시 움직일 뿐. 입시위주의 교육 속에 그마저도 수능중심의 교과목 수업으로 대체하는 파행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체력이 많이 떨어져 무기력한 청소년이 많아졌다.
그러나 한국 최초의 자유학년제 대안고등학교로 설립된 벤자민학교에서는 조금 남다르다. 아이들은 1년 동안 꿈을 찾기 위해 스스로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모두 각자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철저히 자기주도적으로 도전한다. 그 과정 중 빠지지 않는 필수 활동이 벤자민12단 이다. 벤자민12단을 성공한 아이들이 졸업식에 물구나무서서 걸어 김나옥 학교장에게 졸업장을 받는다. 벤자민학교에서 벤자민 12단을 하는 이유는 이 아이들이 인성영재로서 대한민국을 넘어 지구와 인류를 위한 인재로 성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벤자민12단은 푸시 업을 시작으로 단계별로 체력과 유연성, 균형감을 키워 최종적으로는 물구나무서서 걷기까지 도전하는 독특한 수업이다. 친구들끼리 함께 돕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넘어가는 의지는 철저하게 본인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체력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성장을 한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 벤자민 학교 학생들은 각종대회에 나가서도 시범을 보인다.(사진=전은애 기자)
처음 듣는 칭찬과 응원으로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 전북학습관 황의정
황의정(18) 군은 지난 해 벤자민학교 입학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 게임으로 지새고 아침에 잠들어 오후 1시에 겨우 깨어 또다시 게임을 하는 생활을 했다. 중학교 때 늦잠 때문에 지각을 자주했고 삶의 의미나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생활을 했다. 평소에는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고 밖에 나가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아 게임에만 몰두했다. 입학 후에도 한동안 습관은 바뀌지 않아 부모님과 선생님의 고민이 많았다.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해보니 의정 군은 신체지능이 월등히 높았다. 선생님은 벤자민 체조를 통해 의정 군을 깨워 내기로 했다.
4월 워크숍에서 의정 군은 처음 해본 물구나무서서 걷기임에도 8걸음, 12걸음, 16걸음을 걸었다. 다음날에는 50걸음으로 단번에 12단을 해냈다. 청소년의 경우 12단까지 통상 1달 반 이상, 아무리 빨라도 1주일은 걸리는데 황 군은 천재적인 신체지능을 가졌다. 황 군은 “얼마 전 오현호 멘토콘서트 때 멘토께서 자신은 한 번도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고 했는데, 제가 그랬어요. 저를 칭찬해 주는 사람도 없었고 제가 그럴 만 하지도 않았죠. 그런데 처음 물구나무서서 걷기를 하면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멋지다, 잘한다.’고 계속 응원해주는 것이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요. 그때부터 나도 뭔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라고 했다.
지난해에는 마라톤대회에도 도전해서 하프코스에서 완주도 했다. 물구나무 서서 150 걸음을 걷는 황 군은 올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마라톤에 다시 도전할 예정이다. 이제는 생활리듬도 회복해서 늦게 일어나는 습관을 떨치고 아침에 일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도전을 통해 활력을 찾은 황 군은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한지 알았으니 다른 청소년에게도 알려주고 싶다. 모든 청소년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했다.
▲ 벤자민학교 경기남부학습관에서 12단 동아리를 이끄는 손민형 군(맨 앞). (사진=손민형 군)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할 수 있어 야죠” 벤자민12단 동아리를 만든 손민형 군
경기남부학습관 손민형(18) 군은 현재 물구나무서서 몇 걸음을 걷는지 모른다고 했다. 지칠 때까지 걷는다고. 손 군은 “벤자민 12단을 하면서 힘들었지만 점점 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12단을 하면서 달라진 점은 몸에 변화도 생겼지만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라고 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말부터 기계체조 선수를 했던 경험을 살려 같은 학습관 친구들이 12단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9월에 동아리를 만든 후 매주 1번씩 2시간 동안 유연성과 균형감을 찾을 수 있도록 연습 또 연습을 한다. 민형 군은 “모두 형, 누나들인데 빠짐없이 출석해서 잘 따라주니 제가 감사하죠. 벤자민학교 입학 전에는 제가 누군가를 지도하거나 지휘한 적이 없었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리더가 되는 법도 알게 되었어요.”라고 했다.
척추측만으로 힘들던 물구나무서서 걷기, 이제 태권도장 아이들에게도 전파
송민형 군이 이끄는 벤자민12단 동아리에 있는 송민근(20) 군. 학생들이 흔히 겪는 척추측만으로 물구나무를 서도 한쪽으로 치우쳐 버렸다. 민근 군은 벤자민체조 4단(머리대고 물구나무서기)을 넘지 못하고 안되다 보니 “나는 여기까지인가 보다”하고 한계점을 만들었다. 자신감도 떨어져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 좌절해서 연습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미국 세도나에서 열리는 지구시민캠프에 가서 친구들과 어울리며 쉬는 시간, 식사시간까지 연습했다. 한번 균형이 잡히고 나서 넘어지고 다시 넘어지고 하다 보니 감이 잡혀 몇 걸음 걷게 되었다. 그 순간 “노력하면 다 되는 구나”하는 기쁨이 올라왔다. 송 군은 12단 연습을 하면서 “몸이 가벼워지니 어떤 일을 할 때도 고민하는 시간이 짧아져서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보컬부, 댄스부, 중국어부 등 동아리 활동만 10개가 넘었고 직접 국학기공팀을 꾸려 대회에도 참여했다. 특히 독도지킴이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100여 명을 모아 서울 광화문, 인사동 등에서 플래시 몹을 선보여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또 태권도, 합기도 유단자의 특기를 살려 태권도장의 사범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초등학생들은 송 군이 벤자민12단 연습하는 모습에 반해 따라하고 싶어 했다. 본인이 연습을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주기 시작했고 이제 아이들 중 물구나무서서 걷는 아이도 나왔다.
▲ 경기남부학습관 송민근 군.(사진= 이효선 기자)
벤자민학교를 졸업해도 우리의 도전은 계속된다
벤자민 12단으로 자신감과 도전의 용기를 체험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그 경험을 나누고자 동아리를 결성하기도 한다. 1기 김상훈 군은 졸업 후 복학하여 자신이 찾은 심리상담가의 꿈을 위해 전교1등을 놓치지 않는 학생으로 유명하다. 김 군은 올해 자신이 다니는 영천 영동고등학교 내에 벤자빈 12단 동아리를 만들어 자신이 느꼈던 성취감과 기쁨을 친구들과 함께 나눈다. 벤자민 학생들의 도전이야기는 '몸의 중심이 서면 마음의 중심도 바로 선다'편으로 이어진다.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 사진. 이효선 전은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