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브루스 후드 브리스톨대학 교수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철저하게 뇌의 작용으로 결정된다. 현대인의 많은 질병이 뇌를 더 잘 이해한다고 해서 답을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뇌 연구는 인간의 교육, 멘탈헬스, 행복 등 다양한 분야에 연결될 수 있기에 충분히 연구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브루스 후드(Bruce Hood·51) 브리스톨대학 사회발달심리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영국문화원이 주최하고 한국뇌과학연구원이 후원한 '2013 지식강연시리즈' 연사로 초청돼 한국을 찾았다. 강연에 앞서 영국문화원(서울 종로구)에서 만난 후드 교수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뇌'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을 이해하고 어떤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는 것은 결국 뇌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과 EU에서 뇌과학연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투자 대비 가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지난 10년 동안 정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뇌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뇌는 인간의 의식, 마인드(mind)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교육, 멘탈헬스, 행복 등에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뇌 연구에도 관심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후드 교수는 스코틀랜드 던디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신경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뇌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버드대에서 심리학 교수를 거쳐 지난 1999년 브리스톨대학 발달심리학과장으로 취임해 2001년 브리스톨 인지학 센터를 설립하였다.
2009년에 성인의 초자연적인 믿음의 발달 기원을 다룬 <Super Sense: 왜 우리는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가(Harper One)> 저서를 미국과 9개의 나라에서 발행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는 대중이 과학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여러 과학 대중화 활동에 기여하였다. 특히 2011년 BBC “Meet Your Brain”으로 방영된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시리즈'는 400만 명 이상이 시청해 대중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그는 최적의 뇌 발달을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환경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문제를 주변 환경 하나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뇌의 기제, 즉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기질도 틀림없이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분석하면 아이의 기질에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 학교폭력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현재 교육제도가 아이들에게 성공을 강요하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압박이 폭력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후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만난 한국 학생들이 동기 부여가 잘 되어 있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교수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뇌 발달에 가장 좋은 환경은 '예측성'이 보장되는 환경이다. 스트레스가 없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풍부한 환경이 제공되고,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사회적 소통이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성인의 뇌는 어떻게 계발할 수 있을까? 교수는 쉽고 명쾌한 방법을 제시했다.
"성인은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보길 권한다. 여행을 가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취미활동을 통해 유연한 사고능력을 기를 수 있다. 자기 방식만 고집해서는 창의성을 키우기 어렵다"
또한, 그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모여 논의를 하면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해결방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 교류할 수 있는 장(場)이 필요하다. 엔지니어, 예술가, 의사 등 각기 다른 전문가들이 모여 의견교류를 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과학 페스티벌, 특정 주제에 대한 심포지엄 등이 필요하다."
교수는 최근 인간의 두뇌 활용에 많이 활용되고 있는 명상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뇌과학에서 명상은 흥미로운 연구 분야다. 명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몸을 릴랙스(relax: 이완)해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 준다. 이 자체가 우리의 의식을 바꾸고, 뇌의 작동 기제를 바꾸는 것이다. 명상하는 사람은 그런 효과가 있다고 적극 지지하는데 나도 그런 점에서 명상을 한번 해보고 싶다."
▲ 지난 22일 서울 창동고등학교에서 열린 브루스 후드 교수 강연
인터넷·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술에 우리 뇌가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후드 교수는 저서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모두 가짜라면: The Self Illusion(영문명)>에서 인간에게 자유의지(free will)는 없다고 주장했다. 사고와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결정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 혹은 ‘나’라고 생각하는 정체성은 결국 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후드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범죄자들이나 비도덕적인 행동에 관한 사회적 책임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처벌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벌이라는 것 자체가 범죄자들이 범죄를 ‘할까? 말까?’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없으며, 인간의 행동은 철저하게 뇌의 작용으로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우울증과 같은 현대인의 멘탈헬스 문제는 뇌를 더 잘 이해함으로써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아가면서 물질적인 것 못지않게 정서적 균형이 중요하다. 감정적 측면, 특히 어린 시절에 이런 문제는 중요하다. 물질만능주의가 반드시 행복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부를 축적하고, 소유하는 물건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경쟁심도 높아지고 허무감도 커질 것으로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후드 교수는 최근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을 긍정적으로 본다고 밝혔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큰 문제다. 그러나 대상이 무엇이든 지나치게 많이 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아직 우리 뇌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도구에 적응할 충분한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의 어마어마한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제는 그 모든 정보를 기억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찾고자 하는 답을 어디서 어떻게 찾으면 되는지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나이 들수록 기억력 감퇴에서 오는 문제를 디지털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브루스 후드 교수는 한국에 오기 전 이미 덴마크 중국에서 뇌 관련 특별 강연을 했다. 한국에 이어 스웨덴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본업이 교수이기에 4월에 모든 강연이 끝나면 교수로 돌아가 학생들 가르치며 과제물 체크하고, 지금 집필 중인 책도 마무리 지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사진. 신동일 기자/ kissmesdi@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