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 소리연구자 배명진 교수

대한민국 대표 소리연구자 배명진 교수

[두뇌 리더에게 듣는다]

브레인 16호
2013년 01월 14일 (월)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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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좋아하는 소리

대한민국에서 ‘소리’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TV 프로그램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가 욕설을 했다는 논란을 잠재우고, 소리 분석으로 범인을 찾아내고, 에밀레종에 담긴 부처 목소리, 공부 잘되는 자연의 소리 등을 분석하고 만들어내는 사람. 어릴 적 축음기를 가지고 놀며 소리가 나지 않는 광석 라디오를 붙들고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던 어린아이가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소리공학자가 되었다.

좋은 소리를 체험할 수 있는 ‘사운드 테마파크’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배명진 숭실대 교수를 만나 소리의 세계를 탐문했다. 그가 소장으로 재직하는 소리공학연구소에서는 현재 스물다섯 명 정도의 연구원이 소리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소리란 무엇이고, 소리공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우리는 늘 소리를 들으면서 살아가지요. 소리는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평소에는 잘 지각하지 못하지만 막상 듣지 못한다면 매우 불편해집니다. 산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호흡이 가빠져서 산소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것과 비슷하죠. 시각은 우리 의지로 차단할 수 있지만 소리는 계속해서 들을 수밖에 없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라는 속담도 소리공학에서 보면 맞지 않는 얘기죠. 특히 소리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지고, 맛보는 오감 중에서 두 개의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소리를 청각만으로 생각하는데 촉각도 소리 영역에 해당합니다. 촉각을 통해 진동이 전해지는데 진동에너지는 곧 소리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오랜 옛날에 제단을 만들 때도 소리가 잘 울려 퍼지도록 설계했을 만큼 소리공학의 역사는 오래됐습니다. 소리공학이란 바로 우리 주변의 소리를 분석해서 규명하고 실생활에 응용하는 분야를 말합니다.


>
얼마 전에 논란이 됐던 사이버 마약 ‘아이도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의 뇌는 특정 단순음(pure tone)의 반복을 싫어하는데 ‘아이도저’는 계속해서 이 소리를 내보냅니다. 그리고 인간은 양쪽 귀에 들리는 소리 주파수의 근소한 차이를 이용해서 소리가 나는 상하좌우 위치를 인지하는데, 이런 소리 현상을 바이노럴 비트binaural beat라고 하죠. 이런 청각 특성을 고려해 적절한 소리를 발생시켜 뇌파를 안정적으로 자극함으로써 학습 능력이나 집중력을 개선하는 데 이용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이버 마약으로 불리는 아이도저의 경우에는 바이노럴 비트 음을 이용해 뇌파를 교란시키고 공격적으로 유도한다는 점이 전혀 다릅니다. 양쪽 귀의 특성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하는 셈이죠. 특히 사이버 마약의 소리는 귀를 통해 뇌에 바로 전달되고, 반복적이며 단순한 소리는 청각세포와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흔적을 남기기 때문에 연상을 일으켜서 습관성이나 중독성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방어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은 특히 조심해야 하지요.

무엇보다 사이버 마약은 이런 효과를 높이기 위해 스피커나 이어폰보다는 헤드폰으로 청취하기를 권하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소리의 세기인 진폭의 강도에 문제가 있는 거죠. 소리가 클수록 잘 느끼는데 귀가 울릴 정도의 세기로 30분 이상 들으면 소음성 난청이 동시에 유발될 수 있어요. 문제는 소음성 난청이 단순히 소리를 듣는 데에만 장애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음성 난청이라면 높은 대역을 잘 듣지 못하는 증세인데, 이로 인한 다른 문제도 있나요?

사람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20에서 2만 헤르츠예요. 나이가 들면서 청력이 약해지면 점차 고주파음을 못 듣게 되죠. 예를 들어 20대는 1만8천 헤르츠, 30대는 1만6천 헤르츠, 40대는 1만4천 헤르츠, 50대는 1만2천 헤르츠 이상은 잘 못 듣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고주파음을 못 듣는 것은 정상적인 노화라고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소음을 많이 듣거나 이어폰, 헤드폰 등을 통해 큰 소리를 많이 들으면 달팽이관 입구의 신경세포가 손상돼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빨리 고주파음을 못 듣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리 귓속의 고막에는 청신경전달계인 달팽이관이 연결되어 있는데, 그 입구에서 고주파를 감지하고 점차 안쪽으로 갈수록 저주파를 감지하죠. 그래서 큰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소음성 난청에 걸리는 것입니다.

소음성 난청이란 소음에 자주 노출되어 청력이 제 나이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문제는 청력 저하뿐만 아니라 소음성 난청자의 경우 주변의 소리 중에서 저주파음만 주로 듣게 돼 음향심리학적으로 답답함이나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정 대역의 소리만 듣다 보니 심리적·행동학적으로도 편향적인 상태가 되는 것이죠. 소리는 우리가 의식하는 것보다 정신 건강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특정 대역을 자극하는 소리가 아닌, 전체 대역을 자극하는 ‘백색 사운드(white sound)’를 많이 듣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바로 자연의 소리죠.


>자연의 소리는 어떤 특별한 효과가 있습니까?

무지개 색깔이 모두 합쳐지면 백색광이 되듯이 ‘백색’은 모든 것을 포괄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늘 들리는 일상적인 소리는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컬러 톤color tone이 아니고, 비교적 넓은 대역을 갖춘 백색 사운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백색 사운드가 바로 자연의 소리인데요, 자연의 소리는 특히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죠.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밤에 잠도 잘 오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데, 실제 파도 소리에는 저주파에서 고주파까지 자연계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소리 성분이 다 포함돼 있습니다.

어느 한 주파수만 강조돼 있는 소음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과는 달리 백색 사운드라고 불리는 이 같은 소리는 안정감을 가져다줍니다. 특히 3~5초에 달하는 파도 소리의 주기는 우리의 심호흡 간격과 비슷해 파도 소리를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숙면을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우리 안에서 동조현상이 나타나고, 뇌파가 거기에 맞춰지면 깊은 잠을 잘 때 나타나는 델타파가 발생하죠.







>자연의 소리가 학습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데 어떤 원리로 그런 효과가 나타날까요?

공부할 때 보면 볼펜을 돌리거나 다리를 흔들고, 뭔가 먹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도서관 앞에 있는 커피 자판기는 늘 붐비죠.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학습할 때 기본적으로 시각에 과도하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공부할 때 오감 가운데 가장 자극이 없는 곳은 청각이죠. 이러한 적막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다른 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관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학습 효과를 높이려면 오감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학습할 때 청각의 적막감을 해소하는 데 가장 알맞은 소리가 바로 자연의 소리입니다.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나뭇가지에 바람 스치는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뇌가 평상시에 듣고 지내는 일상적인 소리로 인식하기 때문에 별로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안정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따라서 공부할 때나 뭔가에 집중해야 할 때는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사용하지 말고 자연의 소리 같은 백색 사운드를 들으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사운드 테마파크’는 어떤 곳인가요?

우리 주변엔 너무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소리가 많습니다. 건강에 있어서 소리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지금 추진하고 있는 ‘사운드 테마파크’는 도심에서도 숲 속을 거니는 것처럼 새소리, 종소리, 폭포 소리, 시냇물 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산책할 수 있는 체험 공간입니다. 이런 테마파크가 서울에서 먼저 만들어지면 그 후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서울시와 협의를 계속해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내내 ‘소리’라는 단어가 수없이 반복됐다. 소리라는 것이 이토록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중요한 것임을 새롭게 느낀 시간이었다. 단지 소리 연구를 넘어 일상의 영역에서 실용화하고, 나아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킬 가능성까지 탐색하는 연구자의 열정이 귓가를 울린다.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 | 사진·박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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