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정보 조작이 가능하다

뇌의 정보 조작이 가능하다

가상현실과 뇌

뇌2002년12월호
2010년 12월 23일 (목)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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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임포스터>


<마이너리티 리포트> <블레이드 러너> <토탈 리콜>의 작가인 필립 K. 딕의 또 다른 작품을 영화화한 것으로 시간적 배경은 2079년이다. 주인공인 올햄의 연구결과는 최근 십여년 동안 외계인과 전쟁 중인 지구를 방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날 그는 외계인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고 수사관들의 추적 대상이 된다. 비밀경찰의 주장에 의하면 진짜 올햄은 이미 살해당했고 현재의 올햄은 그의 외모와 기억을 갖고 있는 사이보그라는 것이다. 전도 유망한 과학자에서 공공의 적이 된 올햄은 자신이 사이보그 스파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올햄은 경찰이 주장하는 ‘진짜’ 올햄의 살해 장소에 가서 그 말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만 그곳엔 ‘진짜 올햄’이 죽어 있었다. 


 


영화 <토탈 리콜>


미래의 어느 도시, 노동자 크웨이트는 밤마다 화성 꿈을 꾼다. 그러던 어느날 화성으로 가상여행을 하려고 마음먹는다. 가상 여행은 머리 속에 여행에 대한 기억을 입력시키는 것이다. 실제 여행에 비해 모든 것이 쾌적하다. 그러나 그의 기억이 저항을 시작하게 되고 이에 당황한 여행사에서는 여행사를 방문했다는 기억 자체를 지워버린다. 사실 현재의 기억도 조작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자 자신에게 총질을 해대는 사람은 8년간 함께 산 아내,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크웨이트의 기억을 조작한 사람들)은 당신의 기억을 지운 다음 다른 사람의 기억을 입력시켰어. 나는 당신에게 주입된 기억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려고 부인으로 입력됐지. 미안해 크웨이트 지금까지의 당신 인생은 모두 꿈이야”


 


<공각기동대>


한 청소원이 이혼을 강요하는 아내의 고스트를 해킹하기 위해 엑세스를 하고 있는 장면이 있다. 형사인 쿠사나기는 격투 끝에 이 청소원을 붙잡는다. 그러나 청소원에게는 아내가 애초에 없었다. 청소원이 가진 아내의 불륜, 이혼, 딸과 같은 모든 기억들이 의사체험임을 알게 된다. 그 청소원이 끔찍이 사랑하는 딸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진에는 그 자신과 개 한 마리만이 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구성하는 큰 요소다. 사람들은 내가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어디서 살았으며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하는 기억을 중심으로 사회적인 나를 구성한다. 그런데 이런 기억이 조작된다면. 위의 영화들은 뇌의 정보를 통째로 가져다가 새로운 몸(사이보그)을 입혀 나의 정체성을 갖게 하거나 뇌의 기억을 지우거나 새로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상상해내고 있다.

미래 사회를 이처럼 디스토피아적으로 그린 이 영화들은 뇌가 ‘해킹’당함으로써 인간의 정체성이 어떻게 해체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것은 뇌가 다른 장기처럼 인간을 물질적으로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존재감과 정체감을 구성하는 곳이고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감각과 정보들을 통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보체인 인간이 뇌를 바꾸면 자신도 변화할 수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뇌를 해킹하는 방법이 아닌 오감을 이용해 뇌의 정보를 바꾸는 방법이 현재 이용되고 있는 가상현실이다. 물론 컴퓨터나 다른 인터페이스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고도화되면 뇌가 직접 조작되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현재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설계나 의료 그리고 교육, 예술과 과학, 게임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주어진 오감에 의존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주로 차량과 건물의 충돌실험 등 현실에서 행하기 어려운 각종 실험과 위험한 곳으로의 여행 등 오락 분야, 북극의 펭귄을 구경한다든지 하는 교육 분야 등에서 가상현실이 이용되고 있다. 가상현실을 체험하기 위해서 널리 쓰는 방법은 특수하게 제작한 고글형 안경을 쓰는 것이다. 현재 가장 성공적이고 평가받는 시스템은 일리노이대 가시화연구소에서 만든 케이브(cave)시스템이다. 전방과 좌우측면, 밑면에 까지 스크린을 두어 실제 현실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현실은 특히 의료와 교육 분야에 유용하다. 공포증이나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상현실을 이용해 그 기억을 바꾸어주는 것으로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고 위험한 비행교육에도 가상현실이 활용되고 있다. 가상현실을 이용한 운전교습소는 이제 흔히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것들은 가상현실을 이용해 뇌 속의 정보를 바꾸어 자아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가상현실을 이용할 때 발생하는 신체적 부작용도 있다. 시각기관으로 들어오는 입력과 전정기관으로 들어오는 입력 사이에 불일치가 발생하고 이러한 불일치 때문에 일어나는 사이버 멀미가 그것이다. 이쯤해서 외부의 정보를 기계적 인터페이스를 통해 받아들여 그 정보를 이용하는 현재의 가상현실이 아닌 무공해 가상현실이 떠오른다. 가상현실이 뇌 속의 정보를 바꾸어 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상상하기나 꿈꾸기도 이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상상하기와 꿈꾸기 만큼 능동적인 뇌 조작이 어디 있겠는가.


글. 지은주 기자 assac@powerbr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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