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10년(Decade of the Brain)’을 선포한 미국, 21세기를 ‘뇌의 세기’로 명명한 일본… 20세기 후반부터 뇌의 시대가 예고되고, 선진 각국은 앞다투어 뇌 연구 지원책을 마련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1998년 세계 최초로 뇌연구촉진법을 통과시키며 ‘뇌 연구 전선’에 뛰어든 이후 최근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뇌 연구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도체’ 시대가 끝나면 우리 나라는 무얼 먹고 살까? 요즘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는 이 고민에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일이십 년 전 정책적으로 투자한 반도체가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면, 앞으로 10년 뒤에 세계를 선도할 만한 새로운 초일류기술을 발굴해야 하기 때문이다. IT산업은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증한 반면 시장 포화와 후발국의 추격 등으로 성장 속도가 줄어들 전망이라고 한다. 얼마 전 과기부는 포스트 반도체 기술이 될 만한 미래전략 신기술 50가지를 발표했다. 옷 겸용 컴퓨터, 가정용 수소 발전기, 해커 차단 암호장치 등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뇌질환 치료나 뇌기능 활용기술, 인공지능 로봇 등 뇌 연구와 관련된 기술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 뇌 연구과제를 추가로 선정
뇌 연구 성과에 대한 이런 기대를 반영하듯 최근 대규모 연구지원책인 21세기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이하 프론티어사업)의 새 과제로 ‘뇌질환 치료 및 뇌기능 향상’이 선정되었다. 프론티어사업은 10년 후 선진국과 경쟁 가능한 미래 전략기술을 집중 개발하기 위한 중장기 대형 국가연구개발 프로젝트다. 사업단별로 10년간 8백억~1천3백억 원이 지원되는데, 지난해까지 18개 사업단이 선정됐으며 최근 4개가 추가되었다. 새로 선정된 과제는 지능형 로봇, 뇌질환 치료 및 뇌기능 향상, 유비쿼터스 컴퓨팅, 수소 에너지 저장장치 등 미래 유망기술들이다. 2013년까지 10년간 매년 1백억 원씩 지원되는 프런티어사업단의 출범은 우리나라 뇌 연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연구지원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앞으로 사업단장이 선정되면 9월말 세부 사업단 구성을 확정하여 10월부터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렇듯 큰 투자를 감행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미래 과학 기술의 키워드가 ‘융합과학기술’이기 때문. 미래에는 생명과학기술(BT)이나 나노기술(NT), 정보기술(IT) 등이 단독으로 성과를 내기보다는 NIT, NBT 등의 융합과학기술이 대두될 전망이다. 이런 융합과학기술의 총화가 뇌연구이므로 핵심지원분야로 뇌과학이 지목된 것이다. 뇌연구 분야에서 성과가 나오면 산업적으로도 부가가치가 아주 높다.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반도체 이후 ‘나라를 먹여 살릴’ 주력 산업으로의 성장을 기대할 만하다.
‘선택과 집중’ 통한 부가가치 창출 기대
지난 해 뇌 연구 분야에 투자된 비용은 약 2백60억 원. 올해는 프론티어사업단 출범으로 1백억 원이 추가되어 총 3백85억 원의 연구지원금이 집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뇌 연구에 연 6조 원 이상 투자하는 미국과 3천5백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는 일본에 비하면 매우 적은 비용인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원 정책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이 더욱 강조된다. 많은 분야보다는 성과를 낼 가능성이 높은 과제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98년 뇌연구촉진법을 제정한 이후 정부는 뇌신경생물학, 뇌신경정보학, 뇌의약학, 인지과학 등 4개 분야에 꾸준히 투자해오고 있다. 이 중 국책연구개발사업은 뇌 연구의 기초를 다질 목적으로 뇌질환 치료를 위한 뇌신경생물학연구사업단과 뇌의약학연구사업단, 인공두뇌를 개발하는 뇌신경정보학연구사업단을 구성하여 각 20억 정도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은 노벨상 도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노벨상은 응용 분야가 아닌 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거나 메커니즘을 규명했을 때 주어진다. 따라서 이런 기준에 따른 과제를 제시한 연구자에게 약 6년 동안 6억 원의 연구비를 지원하여 기초 연구가 진행되도록 하고 있다. 현재 창의사업단 중 뇌관련 연구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사업단은 9개로, 이전에 기초 연구에 투자된 비용이 5천만 원에도 미치지 못했음을 고려하면 창의사업이 매우 획기적인 투자정책임을 알 수 있다.
이밖에도 국가지정연구실사업과 기초과학연구사업 등 과기부에서는 다양한 뇌 연구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교육인적자원부, 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자원부 등도 과기부와 긴밀한 협조 하에 뇌 연구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과기부의 뇌 연구지원정책 담당자는 “이제껏 정부에서 뇌 연구에 투자한 비용에 비해 연구 성과는 그 이상으로 나오고 있다고 본다”며 “우리나라 연구인력은 매우 우수하고 성장 속도도 빠르다. 그 척도인 SCI 등재 논문수도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직 1%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뇌’. 나머지 99%를 밝혀내는 것이 뇌과학자들의 숙제이다. 뛰어난 인재와 의지를 갖춘 한국 뇌과학계가 세계가 함께 수행하고 있는 이 숙제를 해결하는 데 큰 몫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글│정호진 hojin@powerbr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