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리포트_ 명상의 과학, 지금은 마음경영시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적 영역에 들어선 동양의 명상
호르몬 및 심신 상태, 최근 뇌에 구조적 변화까지 다양해져
한국뇌과학연구원, 한국式 명상 연구 선도기관 자리매김
대한명상의학회 출범,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개소 등 국내 의학, 과학계 관심 증대
‘명상(meditation)’은 의식, 주의, 지각, 정서, 자율신경계 등의 변화를 포함하는 복잡한 정신 작용이다. 동양 정신문화의 자산인 명상은 여러 종교의 전통적인 수행 방법의 하나로 알려져 왔고, 서구 사회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초월명상(TM) 같은 동양의 명상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명상의 기반을 이루는 종교색은 최소화하고 명상의 정신적·신체적 효과를 강조하는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대중에 보급되었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IT기업을 중심으로 인간 내적역량을 높이는 인적자원계발법으로 확산되고, 디지털 문명 속에서 내면성찰과 심신관리법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추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건강법으로 일부에서만 행해지다가, 최근 들어서 심리적·의학적 치료 방법의 하나로 확산되고 있다. 2017년 대한명상의학회가 출범하는 등 의학계의 활용도 점차 증대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적 영역에 들어선 동양의 명상
▲ 2003년 타임지 커버스토리에 소개된 초월명상 창시자 마하리쉬 마헤시 요기와 초월명상자인 유명 여배우 헤더 그램
동양의 대표적 자산으로 손꼽히는 ‘명상’의 과학적 접근과 연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구에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동양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저변에는 서구 물질만능주의에 따른 정신적 가치의 하락, 그에 따른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정신 및 물질의 상호관계, 명상을 통한 내면적 성찰 등 복합적 요소가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에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 TM)이 널리 보급되고, 인도 요가, 참선, 기공 등이 알려지면서 명상의 효과와 기전을 밝히고자 하는 과학적 연구가 뒤따르기 시작했다.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다. 미국 하버드 의대 허버트 벤슨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벤슨 교수는 1967년 초월명상 수행자 36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명상 전후에 혈압, 심박수, 체온 등 생리현상의 변화가 뚜렷함을 밝혀냈다.
▲ 하버드대 허버트 벤슨 교수
1970년대 들어오면서 하버드 의대 그레그 제이컵 교수의 명상에 대한 뇌파 연구가 잇따랐고, 1990년대에는 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촬영(functional MRI), 단일광자 방출 단층촬영(SPECT),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PET) 등 뇌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정교한 장비들이 개발됨에 따라 명상할 때의 뇌 상태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졌다.
또한 뇌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도 넓고 깊어졌다. 미국에서 과학 및 의료 분야의 연구비를 대부분 지원하는 NIH(미국국립보건원)에서는 2000년대에 들어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연구비를 지원해오고 있다.
명상 연구의 전환점을 마련한 달라이라마
2005년 12월, 매년 2~3만 명의 전 세계 신경과학계 인사들이 참석하는 미국신경과학학회(Society for Neuroscience: SFN) 연례총회에 티베트의 정신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초대되었다.
당시 논쟁의 핵심은 바로 ‘명상瞑想’이었다. 달라이라마의 강연 주제는 ‘명상의 신경과학(The Neuroscience of Meditation)’. 명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예정된 강연에 대해 당시 일부 연구자들이 종교와 과학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며 다소 논란을 펼치기도 했다.
▲ 2005년 세계 최대의 신경과학 학회인 SFN(Society for Neuroscience) 연례총회에 티베트의 정신 지도자 달라이라마가 초대되어, ‘명상의 신경과학(The Neuroscience of Meditation)’ 주제로 발표하였다.
종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는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적극적 후원자로 손꼽힌다. 명상에 관한 신경과학적 연구는 실제로 1987년 달라이라마와 선구적인 뇌과학자들의 모임이 생겨난 이후부터 더욱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모임을 통해, 뇌과학자들은 명상을 하는 티베트 불교의 선승들을 대상으로 명상할 때 나타나는 정신 현상의 생물학적 기반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다.
달라이라마는 1987년부터 초청 인사 자격으로 과학자 모임에 10차례 참석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세계 최첨단 과학기술의 산실인 미국 MIT에서 신경생물학 연구소가 주최한 ‘정신연구회의’에 공동 후원인 자격으로 참석해 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2005년 신경과학학회 연례총회에서 열린 강연은 그러한 흐름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는 2008년 《달라이라마, 마음이 뇌에게 묻다》라는 책을 출간하며, ‘과연 마음이 뇌를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신경과학자들과 진행한 그간의 연구 결과를 제시했다. 또한 정서와 사고, 인지 활동 등 소위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이 뇌에서 형성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다시 뇌에 영향을 미쳐 뇌의 물질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과학적 증거들도 제시했다.
명상이 불러오는 다양한 심신의 변화
명상은 다양한 의학적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명상을 하면 혈압, 맥박 등 심혈관계 기능과 혈당, 혈중지질이 안정되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혈중 농도가 감소된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 신체의 일주기성 리듬과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진 멜라토닌의 경우, 명상 중에 혈장 멜라토닌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한 연구 결과가 보고 된 바 있다.
마음챙김 명상의 경우, 만성통증 환자에서 통증의 경감과 함께 통증 관련 약물 사용이 감소하고 자긍심이 향상된다는 보고도 있다. 또 초기 유방암과 전립선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실시했을 때 명상 전에 비정상적이던 인터루킨과 감마인터페론의 면역관계 지표가 정상화되고, 일반인들에게 단기간 마음챙김 명상을 수행하도록 했을 때 명상을 수행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인플루엔자 접종 후에 항체가 더 많이 만들어지는 등 명상이 면역학적 반응과도 관련이 있음을 알려주는 연구 결과들이 계속 보고되고 있다.
임상적인 측면에서도 명상이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었다. 구체적으로는 명상이 우울, 불안, 분노, 피로감, 스트레스 증상 등을 감소시키고, 활력감이나 긍정적인 정서를 증가시키며, 잠재력이나 창의력 개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보고되었다. 또한 명상이 재발성 주요 우울증 환자의 재발률을 절반으로 감소시켰다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최근 명상 연구가 주목 받는 이유는 인지 기능과 감정 조절에 파급되는 효과 및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을 시사 하는 뇌의 기능적·구조적 변화 때문일 것이다. 신경인지 기능과 관련하여 명상이 주의집중력(attention), 시각-운동 속도(visuo-motor speed), 단기 기억력(short-term memory), 작업 기억력(working memory), 집행 기능(executive function) 등의 다양한 인지 기능의 영역에서 향상을 가져온다는 결과들이 보고되어왔다. 최근에는 8주간의 요가 수련이 우울증 환자의 경계(vigilance), 기억력, 불안을 호전시키고, 수련 경험이 없는 정상 대조군들도 5일간의 짧은 명상수련만으로 주의력이 향상된다는 보고가 있었다.
뇌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명상의 효과
최근에는 이런 뇌의 기능적인 변화와 더불어, 구조적자기공명영상촬영(structural MRI)을 통해 명상을 통한 뇌의 구조적 변화를 시사 하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고 있다. 2005년 라자르Lazar 등이 시행한 연구에서 주의력, 감각 정보 처리와 관련된 뇌 부위인 오른쪽 전전두엽과 오른쪽 앞섬이랑의 회색질 두께가 명상 수련군에서 증가했고, 그 효과는 나이가 많고 명상 수련 기간이 길수록 더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fMRI(기능적자기공명영상)을 이용한 연구에서 집중명상 수행자의 지속적 주의력 관련 뇌 부위의 활성화에 대해 보고된 바 있다. 2007년에 발표된 이 연구에 의하면 대조군에 비해 평균 1만 9천 시간 명상을 한 수련자에게서는 지속적 주의력과 관련된 부위가 더욱 활성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수련 기간이 더 길어지면 오히려 이런 부위가 덜 활성화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명상 수련이 일정 기간 이상 축적되면, 적은 노력으로도 뇌를 효율적으로 활성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3년 이상 매일 수행한 참선 수행자의 경우, 정상적인 노화에 따른 뇌 피질 두께의 감소가 나타나지 않아 명상이 정상 노화에 따른 인지 저하를 막아줄 수 있는 예방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09년에는 호흡과 심혈관계 조절 기능을 하는 뇌간의 연수와 앞쪽 소뇌의 회색질 밀도도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져 호흡수 및 심박수, 혈압 등 자율신경계에 미치는 명상의 효과에 대한 기전에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최근 뇌과학 분야에서는 새로운 방향의 연구들이 계속 시도되고 있다. 특히 마음과 몸의 통합 관점에서 감정, 의식 등 인간의 정신 현상을 이해하려는 시도가 그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1993년 국립보건원(NIH) 산하 대체의학연구소(OAM)가 명상 연구에 공식적으로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활발해졌다. 매년 1,200편의 명상 관련 논문이 학술지에 발표되고 있을 정도이다
대한명상의학회 출범, 의학계 명상치료 및 활용 본격화
▲ 2017년 9월 출범한 대한명상의학회 홈페이지
국내 의학계에서도 명상의 도입 및 활용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2017년 9월 9일 대한명상의학회가 대한의사협회 후원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2013년 3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한 명상의학연구 소모임이, 2015년 7월 대한명상의학연구회를 거쳐 정식학회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국내 의학계에서 명상이 정식 학문적 위상을 갖춰 연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명상의학회 회장은 카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채정호 교수가 맡았다. 학회측은 그동안 서구에서 정신의학적 치료의 중요한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는 명상에 대한 이론 공부와 명상수련, 치료 경험 발표, 외부강사 초빙 세미나 및 매년 학술대회와 워크숍 개최해가고 있다. 정신의학 전문가들에게 명상의 저변 확대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온 결과 현재 200명 정도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관련학회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문학회로 발돋움한 상태이다.
1990년 설립 한국뇌과학연구원, 한국式 명상 연구 선도
늦었지만 과학계의 발걸음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초월명상, 마음챙김명상 등 서구에서의 동양 명상에 대한 연구 대중화와 달리, 한국식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1990년 한국뇌과학연구원(구 한국인체과학연구원) 설립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1999년 과학기술부 재단법인 인가를 받은 한국뇌과학연구원은 민간연구기관으로서 2010년 서울대학교병원과 공동으로 《뉴로사이언스레터Neuscience Letters》지에 ‘뇌파진동명상’ 효과를 처음 게재한 이후, 《eCAM》, 《STRESS》, 《SCAN》 등 국제 신경과학 및 저명학술지에 잇따라 연구 결과를 제시하며 한국식 명상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 한국식 명상 연구 대표기관인 한국뇌과학연구원은 2010년 한국식 명상으로는 최초로 국제학술지 뉴로사이언스레터에 게재했다
뇌파진동명상(BWV)은 한민족 고유의 선도 수련 원리에 기반한 훈련법으로 동적 명상과 정적 명상이 혼합된 형태의 명상으로 한국뇌과학연구원이 체계화했다. 선도 단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기체조, 호흡․행공, 명상 단계로 훈련을 진행한다.
한국式 명상은 오랜 반만년 문화유산 속에 내재된 심신 단련의 역사와 마음 기제의 총사령탑으로 밝혀진 뇌 자산이 만나면서, 인간 뇌의 올바른 활용과 계발을 이끄는 뇌교육(brain education) 학문화로 발전된 것이 특징이다.
작년 KAIST 명상과학연구소 개소 등 국내 과학계 관심 증대
2018년 3월에는 KAIST 명상과학연구소가 개소되며 국내외의 주목을 받았다. KAIST가 'Vision 2031'을 선포하고 21일 명상과학연구소를 전격 출범시킨 것. 초대 소장으로 부임한 미산 스님(김완두)은 하버드대 세계종교연구소 선임연구원 출신으로 '하트스마일 명상 프로그램'을 창시한 인물. KAIST 명상과학연구소는 SK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으며, SK 설립재단인 플라톤아카데미(이사장 최창원)와 명상과학연구소 설립·운영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 2018년 3월 KAIST는 명상과학연구소를 개원했다 (출처=KAIST)
KAIST 명상과학연구소 홈페이지에는 “이미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 기업에서는 오래전부터 명상을 도입하여 효과와 영향력을 입증하고 있으며, 그에 따른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어 있다”며, “KAIST 명상과학연구소는 그동안의 집적된 방법과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명상의 효과성의 검증은 물론이고 명상의 구성 요소들의 메카니즘을 면밀히 검토하여 명상 공학(Meditation engineering)의 지평을 선도적으로 열어가겠다”는 비전을 밝히고 있다.
서구에서 명상은 이미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단순한 동양의 심신 수련을 넘어 의학, 교육계로까지 확대되고 있고, 그 저변에는 서구의 합리적 이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이뤄온 많은 우리의 정신적 자산들을 소중하게 지켜내고 더 이상 신비주의나 비과학적 대상으로 치부해서는 안 될 것이며, 열린 사고와 더불어 끊임없는 과학적 연구로 아시아적 가치들을 더욱 발전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글. 브레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