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형석중학교(교장 김성배)를 찾은 것은 지난 4월 21일. 1교시 '세계시민교육' 수업이 있는 2학년 2반에서는 조금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선생님이 오시기 전, 24명의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책상을 모두 옆으로 밀어두고 교실 가운데에 모여있다. 선생님이 들어와 "인사합시다"하고 말하니 아이들이 두 손으로 삼각형을 만들어 이마에 갖다 댄 뒤 서로 마주 보고 이런 말을 한다.
▲ 뇌교육 기반 세계시민교육 수업에서 만든 형석중학교 2학년 2반의 지구시민인사. 표현법은 기발하고,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는 기특하다. [제공=이윤성 교사 블로그]
"장베르도스쿠테토~"
이게 무슨 말인고? '당신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뜻을 담은 '지구인 인사법'이라고 한다. 세계시민교육 두 번째 수업시간에 학생들끼리 치열한 토론 끝에 만든 인사법이라고 한다. 국적과 인종, 문화를 초월해 지구시민이라면 이런 인사가 좋겠다는 아이들만의 표현법이다.
이날 수업은 뇌교육 기반 세계시민교육의 다섯 번째 시간으로 난민 문제를 생각해보는 날이다. 지난해 시리아 난민 사태를 통해 시리아와 인접한 중동 및 유럽에는 난민 수용 여부가 국가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우리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난민 문제를 아이들은 어떻게 배우게 될까.
▲ 아이들은 의자 뺏기게임 중이다. 아이들은 의자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교실 가운데에 의자를 둥그렇게 만들고 사람 수보다 의자를 2개 적게 둔다. 시작된 게임은 '의자 뺏기게임'. 노래를 부르며 한 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게임은 진행된다.
탈락자가 늘어날수록 뒤로 빠져있는 아이들은 손으로는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불러주지만 표정은 시큰둥하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은 두근두근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마지막 한 아이가 살아남았지만 기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바로 이어진 게임은 '신문지 접기게임'. 커다란 신문지가 공책만큼 작아질 때까지 모둠별로 신문지 위에서 일정 시간을 버티면 이긴다. 신문지를 접을수록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진다. 서로 업고 안고 목말을 태우며 신문지 위에서 버티기를 수차례, 선생님의 "성공!" 외침에 시끌시끌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 점점 작아지는 신문지 위에 모둠원이 모두 올라서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아이들. 함께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면서 즐거워 한다.
의자 뺏기와 신문지 접어 살아남기. 이 두 게임을 통해 아이들은 무엇을 느꼈을까. 교사 이윤성 씨는 아이들을 편하게 자리에 앉힌 뒤 명상에 들어가게 한다.
"의자 뺏기게임을 할 때 의자에 앉지 못했을 때 여러분 기분은 어땠나요?
신문지를 접어서 모둠원들이 모두 살아남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뇌교육 기반 세계시민교육의 다섯 번째 수업은 이 두 게임을 통해 아이들이 난민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의자 뺏기게임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난민의 상황을, 신문지 접기게임으로 지구에서 안전하게 살 곳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래도 함께 극복해나가는 노력을 경험하게 된다.
게임 이후 이어진 명상은 이 경험을 스스로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지식적인 배움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난민 문제는 물론 이와 연결된 정치적, 경제적, 환경적인 상황을 느끼게 된다. 뇌교육 기반 세계시민교육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 두 가지 게임을 한 뒤 명상을 통해 게임을 돌아보고 의미를 정리하는 아이들. 매일 아침 10분 명상을 한 덕분에 명상에 임하는 아이들의 자세가 자못 진지하다.
명상을 마무리한 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난민 문제와 관련된 영상을 보여준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내전으로 난민이 된 시리아, 탄압을 피해 수개월째 바다에 표류하고 있는 미얀마 로힝야족. 뉴스를 지켜본 아이들의 표정이 자못 진지하다. 선생님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요?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은 모둠별로 둘러앉아 자유롭게 이야기를 펼쳐낸다. "IS를 없애야 한다" "PC방 갈 돈을 모아서 난민에게 기부하자" "우리나라에 난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주자"며 다양한 의견을 발표한다.
▲ 게임과 명상 다음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견을 모으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모둠원과 나눈 의견을 '지구 고민 상자'에 담는다.
수업을 마친 후 만난 아이들에게서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의자 뺏기게임에서 최후의 1인이 된 노지환 군(가명)은 "(의자 뺏기게임을) 할수록 마음이 점점 더 불편해졌는데 신문지 게임을 할 때는 정민이가 업어주고 서로 힘을 모으니까 재미있었다"며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지구시민 의식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혼자 행복한 게 아니라, 모두 행복할 때 진짜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다" (우정민 군, 이하 모두 가명)
"평소 뉴스를 봐도 난민을 별 생각하지 않았는데, 놀이와 토론을 하고 깊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수철 군)
"힘들게 사는 난민들을 보니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한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는 걸 느꼈다" (신우정 군)
"양심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배려하고 함께할 때 진짜 행복하다." (곽지민 군)
교사 이윤성 씨는 충북지역 세계시민교육 선도교사다. 형석중학교에서는 진로 담당 교사로 2학년 두 개반에서 세계시민교육 수업을 하고 있다. 이 교사는 "놀이와 명상을 통해 아이들이 자기를 성찰하는 힘이 많이 커지고 있다"며 "무엇보다 체험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수업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더 의미 있게 다가가는 것 같다"고 했다.
형석중학교의 세계시민교육 수업은 1학기로 마무리된다. 이때 모둠별로 UCC 영상을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구시민운동을 전개해나가는 동아리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뇌교육 기반 세계시민교육 15차시 교육 주제 (국제뇌교육협회 지구시민교육연구회에서 만든 커리큘럼)
1차. 내가 서 딛고 있는 지구 2차. 지구시민의 인사 3차. 내가 느끼는 평화 4차. 지구 되어보기 5차. 지구에서 살아가기 6차. 함께 사는 지구 7차. 다양성은 힘 8차. 지구인 정신 9차. 지구사랑 10차. 지구인의 꿈 11차-15차. 나는 지구 경영자 |
글.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
사진. 김진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