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과학기술원(GIST·지스트, 총장 임기철)은 의생명공학과 정의헌 교수 연구팀이 말초신경 손상 후 감각신경세포에서 증가하는 특정 단백질(IGFBPL1)이 신경병증성 통증의 발생과 지속에 관여하는 핵심 조절 인자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GIST 의생명공학과 엠마누엘 아쿠아(Emmanuel Acquah) 박사과정 연구원(제1저자), 정의헌 교수(교신저자), 김상성 연구부교수(공동 교신저자) [사진=GIST]
IGFBPL1(인슐린유사성장인자 결합단백질 유사 단백질)은 세포의 성장과 발달을 조절하는 IGF(인슐린유사성장인자)와 관련된 단백질로, IGF의 작용을 조절하는 결합단백질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그동안 뇌와 망막 등 중추신경계에서 신경 성장과 면역 조절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말초 감각신경에서 통증을 조절하는 역할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뇨병이나 항암 치료, 외상·수술 등으로 말초신경이 손상되면 가벼운 접촉에도 통증을 느끼거나 화끈거림, 저림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신경병증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 세계 성인 인구의 7~10%가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항우울제나 항경련제 등 기존 약물 치료만으로는 통증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치료 표적 발굴이 필요하다.
▲ 신경 손상 뒤 IGFBPL1의 증가와 억제 효과 [그림=GIST]
연구팀은 생쥐의 좌골신경을 느슨하게 묶어 압박하는 ‘만성 압박 손상 모델(CCI)’을 이용해 신경병증성 통증을 유발한 뒤, 척수 옆에서 감각 신호를 전달하는 중계소 역할을 하는 ‘후근신경절(DRG)’에서 IGFBPL1의 변화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IGFBPL1은 신경 손상 후 발현량이 증가해 7일째 최고치에 이르렀으며, 21일째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IGFBPL1을 발현하는 감각신경세포의 상당수는 통증을 감지하는 신경세포(통각 수용 뉴런)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좌골신경을 짓눌러 손상시키는 ‘좌골신경 압궤 모델(SNC)’에서도 IGFBPL1 발현이 증가했다.
이어 연구팀은 척수 양 옆에서 감각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세포가 모여있는 후근신경절(DRG)에 IGFBPL1의 유전자 발현을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짧은 간섭 RNA(siRNA·특정 유전자의 작동을 억제하는 짧은 유전물질) 조각을 직접 주입했다.
그 결과, 발을 누르거나 열을 가했을 때 나타나는 통증 과민 증상이 뚜렷하게 완화됐으며, 좌골신경의 일부 가지를 절단하고 나머지는 보존하는 ‘말초신경 부분 손상 모델(SNI)’에서도 손상 이후 6주까지 완화 효과가 유지됐다. IGFBPL1의 작용을 차단하는 중화항체를 주입했을 때도 통증 과민 반응이 일시적으로 줄었다.
반대로 IGFBPL1을 추가로 주입하자 신경 손상 생쥐의 통증 과민 반응이 더 심해졌다. 그러나 손상이 없는 정상 생쥐에서는 IGFBPL1을 주입해도 통증 반응에 변화가 없었다. 이를 통해 IGFBPL1은 정상 상태에서 통증을 일으키기보다, 신경 손상 후 통증 과민 반응을 증폭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이 작용 원리를 추적한 결과, IGFBPL1은 신경세포 표면의 수용체인 ‘IGF1R’을 매개로 세포 내 신호 전달 단백질인 ‘ERK’를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GF1R 역시 신경이 손상된 뒤 후근신경절에서 발현량이 증가했으며, IGF1R의 발현을 낮추거나 기능을 차단하면 통증 과민 반응이 크게 줄었다. 특히 IGF1R을 차단한 상태에서는 IGFBPL1을 주입해도 통증 과민 반응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으며, ERK 신호 경로를 차단했을 때도 통증 과민 반응이 크게 줄었다.
또한 연구팀은 IGFBPL1이 뜨거운 열이나 캡사이신 성분에 반응하는 통증 감지 통로인 ‘TRPV1’의 반응성을 높인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로 인해 감각신경세포가 통증 자극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연구팀은 IGFBPL1이 신경세포의 과흥분뿐만 아니라 후근신경절 내 면역세포인 대식세포(손상된 세포나 이물질을 제거하고 염증 반응에 관여하는 면역세포)의 유입과 염증 반응에도 관여해 만성 통증을 증폭·유지시키는 연계 구조도 확인했다. 후근신경절 내에서 IGFBPL1 발현을 억제하자 면역세포인 대식세포의 수가 줄고, TNF-α, IL-1β, IL-6 등 염증을 일으키는 신호물질(사이토카인)도 감소했다.
반면, 약물로 대식세포를 제거한 생쥐에서는 IGFBPL1을 추가로 주입해도 통증 과민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IGFBPL1에 의한 통증 증폭 과정에서 신경세포의 과흥분과 대식세포 관련 염증 반응이 기능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IGFBPL1의 발현을 억제한 생쥐에서는 신경 손상 후 나타나는 보행 이상 증상도 크게 개선됐다.
▲ IGFBPL1 억제에 따른 걸음걸이 회복 [그림=GIST]
정의헌 교수는 “이번 연구는 신경 손상 후 감각신경에서 증가하는 IGFBPL1이 신경세포를 과민하게 만들고 면역세포의 염증 반응에도 관여해 통증이 만성화되는 메커니즘을 밝혀낸 것”이라며,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후근신경절을 국소적으로 겨냥하는 새로운 치료 전략은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지 않는 신경병증성 통증 치료제 개발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연구가 수컷 생쥐를 중심으로 진행된 만큼, 앞으로 암컷 동물과 당뇨병·항암제 유발 신경병증 등 다양한 통증 질환 모델, 인체 조직을 대상으로 후속 검증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난치성 통증 치료의 표적 후보로 IGFBPL1을 새롭게 제시하는 동시에, 기존 통증 관련 표적들이 신경병증성 통증 발생과 지속 과정에서 어떻게 연결되어 작동하는지 확인했다.
이번 성과는 치료가 어려운 신경병증성 통증의 발생과 지속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새로운 치료제 개발을 위한 표적 발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GIST 의생명공학과 정의헌 교수와 김상성 연구부교수가 공동 교신저자로 연구를 지도하고, 엠마누엘 아쿠아(Emmanuel Acquah) 박사과정 연구원이 제1저자로 수행한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STEAM연구사업(미래유망융합기술파이오니어), 뇌과학 선도융합기술개발사업, 중견연구자지원사업 등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성과는 신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신경염증 저널(Journal of Neuroinflammation)》에 2026년 10월 8일 온라인으로 게재됐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