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정신질환자는 지난 30여 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한국 사회 역시 예외가 아니다. 5년 새 10대 우울증은 90% 급증했고, 청소년 마약 범죄는 14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단지 숫자의 증가만이 아니다. 가정환경도, 경제적 조건도, 자라온 배경도 전혀 다른 아이들이 놀라울 만큼 비슷한 방식으로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작은 자극에도 쉽게 불안해하고, 분노하거나, 극단적인 충동에 휩쓸리는 아이들. 지금 우리 아이들의 뇌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세계적인 발달심리학자 대니얼 키팅은 이 위기의 근원을 어린 시절 직접 목격했다.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제이슨, 그리고 유복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친구 데이비드. 두 아이의 환경은 전혀 달랐지만, 사소한 자극에도 갑작스럽게 분노와 공포를 터뜨리며 통제력을 잃는 모습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이 경험은 키팅의 평생을 사로잡았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비슷하게 ‘불안한 아이’로 만든 걸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20세기를 지배한 논쟁, ‘본성인가, 양육인가’의 문제로 돌아갔다. 그리고 캐나다고등연구소(CIFAR)에서 심리학·신경과학·사회역학 연구자들과 함께 수십만 명의 발달 궤적을 20여 년에 걸쳐 따라간 끝에, 그는 두 진영 모두 놓치고 있던 제3의 층위를 발견한다.
불안은 타고난 나쁜 유전자의 탓도, 자라온 환경이나 나쁜 부모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문제의 핵심은 인간의 생물학적 스트레스 시스템 자체에 있었다.
생후 첫 1년의 스트레스가 평생의 뇌를 바꾼다
대니얼 키팅은 그 메커니즘의 열쇠를 후성유전학에서 찾는다. 인간이 스트레스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과도하게 분비되고, 이 과정에서 스트레스 조절 유전자(NR3C1)에 메틸기(methyl group)가 달라붙어 기능을 억제하는 ‘스트레스 메틸화(stress methylation)’가 일어난다.
여기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가 바로 임신 중과 생후 첫 1년이다. 이 시기는 아기의 스트레스 조절 시스템이 형성되는 결정적 시기로, 부모가 극심한 스트레스 환경에 놓일 경우 그 영향이 태아와 영아의 유전자 발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결국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스트레스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생물학적 불안 스위치’가 켜진 상태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문제는 그 영향이 어린 시절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생애 초기에 불안 스위치가 켜진 아이는 또래 관계와 학교생활에서 더 쉽게 흔들리고, 성인이 된 뒤에도 불안과 우울, 중독과 번아웃에 더욱 취약해진다.
나아가 중년 이후에는 심장 질환이나 면역계 이상, 조기 사망 위험까지 높아질 수 있다. 결국 임신기와 생후 첫 1년이라는 짧은 시기에 부모 세대가 겪는 스트레스가 아이의 감정 상태를 넘어 학업, 관계, 건강, 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평생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불평등한 나라의 국민이 35% 더 일찍 사망하는 이유
그렇다면 인간의 ‘생물학적 불안 스위치’를 켜는 진짜 주범은 무엇일까. 키팅은 그 배후로 ‘사회적 불평등’을 지목한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불평등은 단순한 빈곤이 아니다.
극심한 사회적 격차 속에서 끊임없이 비교와 경쟁, 추락에 대한 불안을 경험하게 만드는 구조 자체를 의미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영국의 ‘화이트홀 연구(Whitehall Study)’다. 런던 공무원 수만 명을 20여 년에 걸쳐 추적한 이 연구에 따르면, 조직 내 지위와 통제권이 낮을수록 심장 질환과 우울, 조기 사망 확률이 4배 더 높게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가 최하위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위가 한 단계 낮아질 때마다 건강의 위험도 일정하게 높아지는, 이른바 ‘사회적 기울기(social gradient)’가 계층 전체에 작동하고 있었다.
이는 인간의 스트레스 시스템이 단순한 생존 위협뿐 아니라, 사회적 위치의 불안정성과 상실 가능성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키팅은 소득 불평등이 심한 미국의 평균 사망률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스웨덴보다 35% 더 높다는 점에도 주목한다. 극심한 불평등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추락할 수 있다’는 압박을 주고, 그 공포가 만성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서 키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임신 중인 여성이 계층적 지위가 급격히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면 코르티솔 분비량이 치솟고, 그것이 태아의 혈액으로 옮아가 스트레스 유전자를 잠가버린다. 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스트레스 메틸화는 더 많은 아이에게 각인되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다시 스트레스를 전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키팅이 “헬리콥터 부모가 괜히 생겨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며 실패를 막으려는 과잉보호는 단지 부모 개인의 성향 문제가 아니다. 한번 뒤처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자녀가 경쟁에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부모의 행동으로 표출된 결과에 가깝다. 결국 오늘날의 부모들 역시 가파른 계층 사다리 위에서 끊임없는 위협과 불안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불안의 악순환, 과연 끊을 수 있을까?
부모 세대의 만성 스트레스는 아이의 유전자에 직접 새겨질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스트레스에 과민한 몸으로 태어난 아이는 성인이 된 뒤, 다시 자신의 아이에게 비슷한 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이 커진다. 부와 기회, 계층뿐 아니라 이제는 불안까지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니얼 키팅은 이것이 결코 결정된 운명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매일의 스트레스가 자녀의 유전자에 새겨질 수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명료하게 짚어주면서, “동시에 그 대물림의 사슬이 끊어질 수 있는 지점들을 분명히 짚어준다.”(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천근아 교수)
안정적인 애착 형성, 일관된 돌봄, 학교 기반 자기조절 훈련 등 발달 단계마다 불안의 사슬을 끊을 수 있는 개입의 기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와 스트레스 시스템은 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 만큼, 다시 회복될 가능성 역시 품고 있다.
다만 저자는 그 책임을 부모 개인에게만 떠넘기는 시선에도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임신과 출산 시기의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제도, 실질적으로 보장되는 육아휴직, 극심한 소득 불평등을 완화할 사회적 안전망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스트레스는 계속 부모 세대의 몸을 거쳐 다음 세대의 몸에 새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불안하게 태어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축적된 후성유전학과 인간 발달 연구를 바탕으로 이 악순환의 구조를 낱낱이 파헤친다. 그리고 불안을 개인의 나약함으로 환원하는 대신,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있으며 그 사회가 다음 세대의 몸과 유전자에 무엇을 남기고 있는지를 정면으로 묻는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실패에 대한 날카로운 경고이자, 동시에 구조를 바꾼다면 다음 세대의 미래 역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의 선언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