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리터러시(literacy) 역량이 점차 강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리터러시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해력을 넘어 습득한 정보를 평가하고 활용하는 능력까지를 가리킨다.
이러한 정의는 곧 정보의 표면에 나타난 언어적 구조나 의미와 더불어, 그 이면에 숨은 목적과 맥락, 의도는 무엇인가에 관한 비판적 분석을 전제로 한다. 리터러시의 개념은 사회의 변화와 필요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영역을 점차 확장해 왔다. 그리고 대상에 따라 텍스트, 미디어, 컴퓨터, 문화 등 다양한 수식어로 모습을 바꾸면서 오늘도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제4차 산업혁명의 선포는 빅데이터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연결되면서 데이터가 정보를 표현하는 새로운 언어로 부상했고, 그 양은 지금도 급증하는 중이다.
그만큼 거대해지는 데이터의 밀림 속에서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기란 점차 쉽지 않은 일이 되어 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모두 저마다의 주관적 현실 속에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에 있다. 우리의 인식 세계는 이따금 사실을 왜곡하며, 이는 데이터 생산자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의 배경 아래 탄생한 《직관과 객관》은 통계와 데이터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기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책은 단순한 현상의 기술에만 그치지 않고, 숫자의 세계를 넘어 궁극적으로 객관성을 지향하는 태도와 데이터 리터러시의 중요성 및 기법을 이야기한다.
동물의 생태에서 스포츠, 게임, 세계사, 정치, 문화 등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사례는 데이터가 오래전부터 일상 전반에 스며들었음을 시사하며, 세계의 장엄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깨닫게 한다. 이때 내면에서는 우리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불확실한 상황에도 빠르게 결론을 내리도록 유혹한다. 사실로 위장한 직관의 판단은 편향과 오류로 이어진다.
그러나 저자는 데이터의 냉정함을 바탕으로 성급한 확신을 경계한다. 숫자와 통계는 진실을 증명하는 수단일 뿐 그것 자체로 진실은 아니다. 따라서 복잡성과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태도, 데이터를 다루는 자세, 그리고 인간을 향한 의사 결정이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발휘해야 할 이성의 힘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데이터의 가능성과 한계를 조명하며, 정보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도록 더 넓고 깊게 사고하는 길로 독자를 안내한다.
숫자와 판단이 맞물리는 데이터의 세계, 직관의 유혹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라
저자는 뱀장어의 생태에서 세계사, 정치, 스포츠, 게임 등 광범위한 사례를 통해 직관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가 선형적인 양상을 이루리라는 착각에서부터 타인의 숱한 실패에도 자신만큼은 예외이리라는 믿음으로 뛰어드는 무모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직관은 우리를 끊임없이 속인다.
결과적으로 우리 안의 편향과 논리 오류는 불확실성을 배제한 채로 자기만의 생각을 그럴듯한 현실로 오인하게 한다. 이처럼 우리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세상을 선택적으로 바라본다.
이른바 ‘팩트 지상주의’ 사회에 접어든 오늘날, 누구나 사실 검증을 위해 통계 자료를 제시한다. 하지만 그마저도 일부에서는 ‘과학적 거짓말’이라 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추론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근거로 제시된 정보가 생산자/제공자의 의도에 따라 취사선택되었거나, 팩트와 가치 판단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한 수용자의 오류일 수 있다. 이처럼 세상에는 잘못의 원인을 명확하게 가릴 수 없는 일이 많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탓할 대상을 찾는다. 그런가 하면 타인의 편향은 잘 보면서도 정작 자신은 편향에서 자유롭다고 믿는다.
한때는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그 진위를 가려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검색 한 번으로 우리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를 헤엄칠 수 있지만, 그곳에서는 양이 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습득한 정보에서 신뢰해야 할 내용과 경계해야 할 부분을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인지는 본질적으로 편향에 취약하다. 우리의 안팎에서 사실과 해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 그 취약함을 자각하는 태도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일 것이다.
인간을 향한 온기 어린 시선이 바로 데이터 리터러시의 미덕
이 책의 저자 키코 야네라스는 사람을 향한 고려가 결여된 이성은 인간과 사회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저자의 관점대로라면, 결국 정량적 관점의 퍼즐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은 인본주의이다.
그리고 인본주의가 단순한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에 작용할 확실한 개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정량적 관점이 필수적이다. 인간의 이성이 이룩해 온 수많은 성과가 인간을 향할 때, 이성은 인간을 대체하는 도구에서 세상을 이해하는 ‘우리의’ 언어로 다가올 것이다. 이에 《직관과 객관》은 숫자와 데이터의 세상에 관한 이해를 통해 이성의 본질과 진정한 합리성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