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에 무엇이 스쳐 지나가는가. 그림이 될 수도, 촉감이나 감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무언가가 분명히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세상의 신호는 늘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의 뇌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을 불러와 빈틈을 메우고 의미를 덧입혀 ‘지금, 여기’를 완성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상과 지각은 하나로 이어진다. 달리 말해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현실은 사실 뇌가 그리는 ‘제어된 환각’이다.
『상상하는 뇌』는 이 단순해 보이지만 복잡한 경험 속에서 뇌와 우리 사회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빛과 그림자를 파헤친다. 상상은 공상이 아니라 뇌가 세상을 직조하고 ‘나’를 완성하는 힘이다.
세계적 신경과학자가 파헤치는 상상의 기원과 진화 그리고 오류들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엑서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신경과학자 애덤 지먼이다. 그는 지난 30여 년간 의식, 기억, 심상의 신경 기제를 연구해 왔다. 2003년 뇌수술 후 머릿속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전혀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상태(아판타시아)에 있고, 어떤 사람들은 머릿속 이미지가 너무나 선명하고 생생한 상태(하이퍼판타시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먼은 이 두 개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며 상상이 뇌에서 어떻게 생성되고 변형되는지를 밝혀냈다. 그의 연구는 <BBC> <뉴욕타임스>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주요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상상 연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다.
학계는 그를 두고 “임상 신경학과 철학적 탐구를 잇는 가교”이자 “상상력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연 학자”라고 평가한다.
『상상하는 뇌』는 인간 상상의 전모를 해부하는 책이다. 과학과 철학, 진화를 가로지르며 상상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능력을 탐구한다. “우리의 뇌는 미래로 향해 있다. 인간의 시각 경험 대부분은 존재하지 않으면서 존재한다. 다시 말해 상상의 산물이다.” 저자의 이 선언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상상은 인간 사고의 중심축이며, 지각은 단순한 입력이 아니라 경험과 지식으로 현실을 재구성하는 적극적 행위다.
책은 상상을 다양한 실험과 사례를 통해 보여 준다. 우리 일상과 문화, 예술 속에 숨겨져 있는 상상의 쓰임과 창조의 원천을 파헤치고, 신경과학과 심리학, 뇌의 구조를 통해 상상의 기원과 진화그리고 발달 과정을 살핀다. 그리고 환각·환청·망상·트라우마·PTSD처럼 때로 현실을 왜곡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상상의 그림자까지 다룬다.
오늘날 인공지능과 딥페이크가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흔드는 시대,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보고 듣는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 책은 이런 맥락에서 지각과 상상이 어떻게 형성되고 확장되며 때로는 왜곡되는지를 과학적 언어로 보여주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시대에 사고의 기준점을 다시 세워줄 나침반이 되어 준다.
저자의 글은 뇌과학적 통찰에 철학과 문학의 깊이를 더해, 독자가 자신의 상상력과 현실 인식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그는 데이비드 흄, 윌리엄 제임스, 프랜시스 베이컨, 셰익스피어의 문장을 빌려 “감각은 이성이 판단하기 이전에 상상에 전달된다”는 오래된 직관을 최신 신경과학으로 재검증한다.
그래서 <가디언>과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책을 단순한 뇌과학 교양서를 넘어 ‘상상력 르포르타주’라고 평한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며 자신의 머릿속에 얼마나 생생한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경험하게 될 것이다.
혹시 당신도 머릿속으로 그림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일까. 혹은 잠수종에 갇힌 장-도미니크 보비처럼 몸은 갇혀도 마음은 자유롭게 떠도는 사람일까. 『상상하는 뇌』는 우리가 각자 어떤 방식으로 상상을 경험하고, 그 차이가 우리 삶과 현실 인식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고민하게 한다.
상상과 지각의 메커니즘을 밝혀낸 신경과학 보고서
『상상하는 뇌』는 총 3부 10장으로, 각 장마다 상상을 둘러싼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1부는 ‘상상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에서 출발한다. 1장은 상상이 어떻게 끊임없이 일상 속에 스며드는지를 살피며 우리가 회상하고 계획하고 공상하는 순간마다 상상이 어떻게 얼굴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어떻게 지배하는지를 보여 준다. 2장은 상상이 예술과 과학의 세계에서 창조적 원천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탐색한다. 소설과 예술의 비유적·상징적 언어, 실험실의 가설 속에서 상상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살펴보고 창조적 사고와 상상의 관계를 조명한다.
2부는 상상의 과학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3장은 눈앞에 없는 대상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재현적 상상’의 실체를 밝히며, 우리의 뇌가 어떻게 경험을 재현하고 시뮬레이션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4장은 뇌 속에서 상상이 발생하는 과정을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해 뇌의 네트워크가 어떻게 활성화되고 과거 경험·기억·예측이 상상을 구성하는지를 다룬다.
5장은 상상이 어떻게 진화의 긴 여정 속에서 우리의 일부가 되었는지를 탐구해 상상이 인간 종 전체의 적응과 발전을 이끈 문화적·생물학적 산물임을 보여 준다. 6장은 아동 발달 과정에서 상상력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나고 성장하는지를 다루며, 어린이가 상상의 세계를 탐험하며 인지·언어·사회성 발달을 이루는지, 그리고 상상력이 평생 학습과 창의성의 기반이 됨을 설명한다.
3부는 상상의 그림자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7장은 생생하면서도 두려운 환각의 세계를 여행하며, 환각이 우리의 지각을 왜곡하고 때로는 창의성과 맞닿아 있는지를 탐색한다.
8장은 ‘지나친 상상이 불러온 질병’이 어떻게 개인을 사로잡고 파괴하는지를 살핀다. 정신적·신체적 증상 속에서 상상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위험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 준다. 9장은 치료와 업무, 의사소통 속에서 심상이 지니는 놀라운 가능성과 위험을 탐구한다.
10장은 상상의 양극단에 선 사람들을 통해, 심상을 전혀 떠올릴 수 없는 아판타시아부터 실제 경험에 필적할 만큼 강렬한 하이퍼판타시아까지 ‘극단적 상상’의 스펙트럼이 인간 정신의 경이로움과 취약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애덤 지먼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상상은 공상이 아니라 뇌가 세상을 직조하고 ‘나’를 완성하는 힘이다. 나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당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그 상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 책은 과학, 예술, 철학이 만나는 경이로운 접점에서 탄생한 보고서이자 독자들에게는 ‘자신과 세계를 다시 보는 새로운 시선’ 그리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마지막 남은 영역, 상상력’을 되짚어보게 하는 지적 여정이 될 것이다.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