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뇌 과학 분야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신경세포인 뉴런의 구조가 밝혀지고 신경전달물질의 경로를 확인하기까지 새로운 발견이 끊이지 않는다. 뇌과학 연구 중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신경가소성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 뉴런의 연결을 강화하거나 그 배열을 달리하는 우리 뇌의 능력에 주목하는 분야다. 특히 성장기 이후에도 경험에 따라 뇌의 기능이 변화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불변이라 여겼던 뇌를 유연하게 바라보고 회복불능이라 여겼던 뇌에게 치유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뇌 과학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미 훌쩍 다가와 있다. 2000년 에릭 캔델(Eric Kandel)은 ‘학습이 일어날 때 신경세포 사이의 관계가 증가함’을 밝힌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심지어 ‘신경 구조를 바꾸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켤 수도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신경세포는 재생되지도 않으며 최초 연결된 배선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는 지금까지의 통념을 완전히 깨뜨린 것이다.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는 진화하고 있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원제: The Brain’s Way of Healing)의 저자 노먼 도이지(Norman Doidge)는 신경가소성 연구와 그 가능성에 오랫동안 주목해온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가이다. 저자의 전작 『기적을 부르는 뇌』(원제:The Brain that Changes Itself)는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수많은 대중들에게 신경가소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 우리 뇌의 가소성이 불치와 난치의 질환들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집중했다. 관련 분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음에도 의료 현장에서는 전혀 인정받지 않고 있는 현실을 문제 삼으며 그 실례들을 직접 증명한다.
즉 “신경가소성이 과학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면, 그를 활용하는 임상적 접근들이 왜 보다 널리 사용되지 않고, 주류가 되지 못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고 있는 것이다.
뇌가 치유될 수 있다는 주장은 지금까지의 패러다임을 뒤집는다. 저자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기존의 패러다임에 늘 도전을 받기 마련이며, 이런 연구들이 어떤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다면 더 깊이 파고들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난치성 신경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치료법을 안내할 책무를 갖고, 대담하고도 도전적으로 신경가소성을 연구한다. 우리는 지금 ‘임상적 신경가소성’이라는 학문이 탄생하는 치유 과학의 변곡점을 맞고 있는지도 모른다. 관련 연구가 말하는 대로 이제 뇌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새로운 관점과 확장된 시각으로 “스스로 치유하는 뇌”의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해볼 때다.
“스스로 치유하는 뇌”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
불치라는 멍에를 쓴 뇌에게 회복을 허하다
인간과 동물의 뇌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신경과학자들은 둘의 가장 큰 차이로 신경가소성을 꼽는다. 대다수 포유류는 태어나자마자 걷거나 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만 인간은 오랜 시간의 양육 기간이 필요하다.
대신 인간은 어떤 동물보다 유연한 학습능력을 갖고 있다. 다른 동물의 뇌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프로그래밍 되어 있는 반면 인간의 뇌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주변과 상호작용하며 발달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류가 만들어낸 문화와 문명 그리고 지속적인 발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강력한 뇌의 신경가소적 특성에 기반하고 있다.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뉴런) 그리고 교세포로 구성된 우리 뇌는 각종 정보를 뉴런의 신호 전달을 통해 받아들인다. 각각의 뉴런은 시냅스를 사이에 두고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함으로써 연결되며 반복된 정보 처리는 시냅스의 연결을 강화한다.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면 신경세포들이 다르게 묶여 ‘재배선’되기도 한다. 이처럼 뇌가 활동과 정신적 경험에 반응하여 제 구조와 기능을 알아서 바꿀 수 있는 속성이 신경가소성이다.
신경가소성의 기본 발상은 200년 전 미켈레 빈첸초 말라르네(Michele Vincenzo Malacarne)에 의해 이미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하지만 20세기에 중반까지도 과학계와 의학계에서 이 개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뇌의 구조와 패턴은 아동기 이후 불변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연구들이 이어지며 도그마는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환경적인 변화에 따라 인간의 뇌는 성인이 되어서도 가소성을 발휘하며, 새로운 뉴런의 연결과 신경조직발생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이 밝혀진 것이다.
뇌의 회로는 얼마든지 재배선될 수 있다. 문제가 생긴 회로를 끌 수도, 다시 연결된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을 강화할 수도 있다. 노먼 도이지가 수년간 찾아내고 확인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노먼 도이지는 이 책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직접 보고 들은 신경가소성이 이끌어 낸 극적인 치유 사례들을 소개한다. 하지만 사례 소개 그 자체보다 이런 회복이 얼마나 과학적인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엄밀하게 검증하는 것에 더욱 집중한다.
어떻게 회복되었는지, 같은 방법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하는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런지,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꼼꼼히 분석하여 각 사례에 근거를 제시한다. 상세한 병력, 기초가 되는 과학 연구, 집단연구는 각 치유 사례에 신뢰를 더한다.
여러 사례를 찾으며 그들의 회복과 치유, 성장 과정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저자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준다. 신경가소성의 힘을 체험하며 만성질환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노먼 도이지는 기꺼이 친구이자 동료가 되고자 한다. 애정 어린 태도는 엄밀하고도 따뜻한 서술을 가능하게 했다.
사례 속 주인공은 눈앞에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며 그들의 감정까지 느껴질 듯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이야기는 읽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스스로를 더욱 가치 있게 대하게 만든다.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이유다. 그가 소개하는 신경가소성의 사례들에서 영감을 얻고 실천해 본다면 지금 여기의 독자들도 풍요로워진 삶을 책 너머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