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마, 안녕"

[칼럼] "엄마, 안녕"

장영주의 파워브레인

 생명은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진실한 마음을 내뱉는다. 아무도 들은 바 없는 가시나무새의 노래는 마지막이기에 가슴을 적신다. 그것은 노래일까? 비명일까? 더 이상 울 수도 없고, 들을 수 없는 마지막 힘을 쥐어짠 단말마일까? 

남의 나라, 남의 땅, 남의 민족 간의 전쟁이건만 사람은 모두 같기에 어느 청년들의 마지막이 가슴을 친다. 

  최근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군 단 두 명의 목숨을 건 백병전 영상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영상은 무너진 건물 안에서 불시에 마주친 적군 병사간의 각개전투 장면이다. 

전투 개시부터 숨이 끊어지는 순간까지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폭탄과 드론을 피해 몸을 숨기던 우크라이나 병사의 바디캠에서 실시간으로 촬영된 영상이다. 이미 건물 안에 매복해있던 러시아군과 조우한 두 병사는 총격전 이후 육박전에 돌입한다. 우크라이나 군은 “넌 우리나라를 침략했어.”라고 절규하며 러시아 군의 단검을 막으려하지만 곧 땅바닥에 쓰러지고 끝까지 사투를 벌인다. 땅바닥에는 핏방울이 고이고, 바디캠은 서서히 푸른 하늘로 고정된다.

치명상을 입은 우크라이나 병사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당신은 세계최고의 전사”라며 조용히 숨을 거두고 싶다고 러시아군에게 부탁한다. 역시 한쪽 귀에 큰 부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러시아 병사는 “안녕. 넌 편안해 질 거야.”라며  자리를 피해준다. 

우크라이나군은 “엄마, 안녕” 짧은 인사를 남기고 수류탄 핀을 뽑는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사라진 것이다. 백병전에서 살아남은 러시아군은 시베리아 야쿠티야 출신의 청년이다. 그는 마지막에 일격을 가하지 않고 작별 인사를 나눈 데 대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으로 남아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누구로 부터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마지막 남은 숨을 모아 불러보는 전사의 ‘엄마, 안녕’이라는 한마디는 수천, 수만 권의 책과 영화를 압도한다. 그리고 스스로 생명을 거두도록 시간을 보장해준 침묵의 적수도 왠지 거룩해 보인다. 

같은 전장 터에서 우리의 핏줄인 북한병사들도 수없이 죽어 나가고 있다. 하지만 풀 수 없는 물음은 여전히 남는다. 누가, 왜, 알지 못하는 시간에,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알지 못하는 사람끼리 엄마가 주신 가장 고귀한 것을 뺏고 빼앗게 했는가. 
 

▲ 그림 = 원암 장영주


 ‘말’은 엄마가 뱃속부터 가르쳐주신 ‘마음의 알’이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우리나라 국민들이 애용하는 카톡을 검열하는 법을 만들겠다는 정치권 인사의 서슬이 시퍼렇다. 

그러자 ‘나를 가두어라.’는 자원취수(自願就囚)운동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자원취수 운동은 127년 전인 1898년, 한양의 만민공동회에서 벌어진 민초들의 자유로운 언로의 대향연 핵심코드였다. 

장작불을 피워놓고, 장국밥을 먹으며, 기생부터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생각을 쏟아놓는다. 그중에 소학교 학생인 태억석, 장용남은 어리지만 당당하고도 인기 있는 연사였다. 직접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물품과 돈을 제공함으로써 시위대에 동조를 표하니 수많은 말이 넘쳐나는 현장을 각 신문들은 다투어 중계하였다. 

이렇게 신문에 실린 뉴스는 소문과 풍문으로 대한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일제와 조정은 강압적으로 해산시켜 버린다. 어쩐지 지금의 국민집회와도 같은 역사적 유전자가 느껴진다. 우리민족은 압제가 강할수록 관리들은 몸을 사리고 민초들이 더욱 강렬하게 뭉쳐 결국 해결하여 왔다.

 우리의 엄마나라인 대한민국의 자유체제가 위로는 대통령부터 아래로는 민초들의 언로까지 막힐 위태로운 지경이다. 

도대체 총칼을 맞댄 것도 아닌데 무엇을 위해 이처럼 나라가 뒤흔들리고 있는가. 누가 흔들고, 누가 흔들리고 있는가? 이것을 해결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소학교 학생만큼의 뱃심도 없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청년들의 기개의 근처에도 못 미치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끝없는 추태에 민초들은 가슴만 칠뿐이다. 

오직 자식들이 잘 살아가라고 엄마가 당신의 몸을 헐어 조건 없이 내어주신 우리의 모국(母國)에 미증유의 위험이 가해지고 있다. 

이 나라 대한민국은 어떻게 독립하고, 어떻게 키워왔고, 어떻게 민주화를 이룬 나라인가! 우리의 운명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 위해 국민들은 더욱 거세게 일어서야 한다. 

‘엄마나라, 안녕’ 이란 말은 설날을 맞아 절대로,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

글.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선도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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