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파병과 용병

[칼럼] 파병과 용병

장영주의 파워브레인

▲ 1965년 부산항 파월장병 환송식


 1964년 9월 11일, 신생국 대한민국이 베트남 전쟁에 1차 파병을 거행한다. 베트남 전에서 오랫동안 고전을 면치 못하던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우방국에 지원을 호소한다. 

파병결단을 위한 마지막 밤, 박정희 대통령은 밤새 줄담배를 피우며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다. 우리와 미국정부는 파병의 보상조치에 관해 많은 회담을 벌린 끝에 '브라운 각서'를 맺는다. 그 결과 '월남 특수'를 통한 고용증대와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거국적인 선순환효과를 가져 온다. 

우여곡절 끝에 파병은 시작되고 첫 전투부대를 실은 군함이 출항하는 부산부두에는 대규모의 성대한 환송식이 열린다. 이때 청룡과 맹호부대가 1차로 출정하여 이미 파월된 건설지원단 비둘기부대와 합류한다. 1년의 복무를 마친 귀국길에도 성대한 환영행사가 열리고 공훈용사들의 초청 강연회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개최된다. 

1973년 철군할 때까지 8년 5개월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이 참전함으로써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다. 약 5만 명의 한국군은 머나먼 이국땅 베트남의 여러 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치른다. 

경이로운 한국군의 전투력에 미군은 ‘아시아에 또 하나의 이스라엘이 있는 줄 몰랐다.’며 탄복한다. 이에 ‘베트민(월맹)’수반인 호치민은 “한국군과의 교전은 피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수군을 만나면 싸우지 말고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린 것처럼 한민족의 내밀한 전투본능이 제대로 발현된다. 그러나 전사자 5천여 명, 부상 1만 5천여 명, 고엽제휴유증 등의 큰 희생과 대가를 치른다.  

 수많은 병사들의 땀과 눈물과 선혈이 응결된 전장에서는 탄식 같은 노래와 신음 같은 기록이 핏빛 강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1951년 가수 신세영이 부른 '전선야곡'은 온 국민의 심금을 울린다. 

가랑잎 휘날리는 한반도 전선의 달 밝은 어느 골짜기! 잠 못 이루는 아들에게 ‘장부의 떳떳한 길’을 일러주신 꿈속의 어머니! 공교롭게도 이 노래를 녹음한 날 신세영의 어머니께서 눈을 감는다. 

1969년, 신중현의 ‘김 상사’가 월남에서 돌아온다. 동네 말썽장이 ‘김총각’이 월남전에서 새까맣게 타서, 훈장타고, 의젓하게, 폼 잡으며 돌아 왔다고 김추자가 경쾌하고 신명나게 불러 크게 히트한다. 

듣도 보도 못한 남의 땅, 남의 전쟁터, 야자수 사이로 빛나는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고국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던 ’김상사 세대’가 돌연 나타난 것이다. 불과 18년 만에 ‘신음 소리’처럼 암울했던 탄식사회가 ‘하면 된다.’는 희망사회로 급선회한다. 

 문학은 어떠했는가? 2차 세계대전 후 유럽에서는 레마르크의 ‘개선문’등 세계대전을 개인적인 눈으로 성찰하는 사조가 나타났다. 우리에게도 베트남 전 이후 황석영의 ‘탑’,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안정효의 ‘하얀 전쟁’, 남일우의 ‘파라미타 모드’등 참전용사들이 자신의 뼈에 피를 칠해 써내려간 걸작들이 백골 탑처럼 솟아났다. 

불과 십여 년 전, 우리 땅에서 우리끼리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의 참극을 겪은 감수성 예민한 전쟁터의 작가들이다.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를 또 긁어댄 상처가 겹겹이 쌓여 옹이로 굳어 마침내 찬연한 화광이 되었다. 

고구려의 귀향 군들은 전장의 살기를 씻어내기 위해 일정기간의 격리수행 후에야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을 소재로 한 우리의 수많은 노래와 작품들은 바로 고구려 전사들의 격리수행처럼 진동하는 피 내음을 정화하는 향불이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으로 확인된 한민족의 전투DNA는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 한류로 승화된다. 

 자신의 운명을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고 스스로 참전하여 생사를 넘는 전투에 동참할 때 ‘파병’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은 전원이 스스로 참전한 파병이었다. 

병사들은 개인의사에 따라서 복무기간을 연장 할 수도 있었다. 용사들의 핏 값은 국가발전의 거룩한 종자돈이 되었다. 베트남전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단군이래의 저주 같은 가난의 굴레를 단박에 끊어냈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베트남 전 이전과 이후로 대별되고 국가전체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용병은 누구인가? 돈에 팔려 남의 싸움에 끼어든 전투요원이다. 당연히 지휘권이 없고 자신의 무기와 자신의 국기와 표식이 붙은 군복을 착용하지 못한다. 

최근 대규모의 북한특수군단이 러시아의 전선인 쿠르스크에 집결하였다. 쿠르스크가 뚫리면 곧장 모스크바까지 직격당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쿠르스크는 ‘고기 분쇄기(meat grinder)’에 병력을 갈아 넣는 것 같은 격전지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도 러시아군의 전술은 일본의 ‘반자이 돌격전’같은 ‘우라 돌격전’으로 1차 세계 대전과 흡사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에서 탁월한 ‘중대전술기지’개념을 발전시켜 전장을 압도한 대한민국 국군의 현대적이며 창조적인 자체전략을 북한군은 결코 펼칠 수 없을 것이다. 

용병으로 팔려 이역만리 남의 땅에서 한 송이 꽃처럼 덧없이 스러져 갈 북녘 청춘들의 운명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불쌍하고 가여워라! 부디 귀하고 귀한 하나뿐인 목숨, 스스로 적극 보중하길 바랄 뿐이다. 

글.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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